원자력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저장할 시설을 짓기 위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이 국회에서 끝없이 표류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해 말 관련 3개 법안을 심사소위원회에 회부했지만, 지금까지 심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년 4월 총선 일정을 감안하면 오는 10월 국정감사가 열리기 전이 입법을 위한 골든타임이지만, 소위원회 법안 심사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어 21대 국회에서 좌초할 가능성이 크다.

법안 심사가 부진한 것은 더불어민주당의 지연술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때만 해도 민주당은 방폐장법에 적극적이었다. 김성환 민주당 의원은 맨 먼저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탈원전에 따라 기존 원전의 퇴장을 위해서도 영구 방폐장 시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180도 달라졌다. 윤석열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자 소극적으로 돌아선 것이다. 영구 방폐장 건설이 원전 부활을 뒷받침해줄 것이라는 계산이 작용한 것이다. 몽니가 따로 없다.

고준위 영구 방폐장 건설은 한시가 급한 문제다. 지금 국내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내 습식 저장시설에 보관하고 있다. 주요 원전별 포화율은 한울 91.4%, 고리 87.6%, 한빛 78.7%, 신한울 1호기 76.3% 등이다. 현 정부의 친원전 정책으로 포화 시점은 1~2년 앞당겨져 2028년부터 차례차례 다가올 예정이다. 영구 방폐장 건설이 늦어지면서 원전 내 건식 저장시설을 추가로 지을 수밖에 없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이 크게 반발해 어려움이 예상된다. 자칫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하지 못해 원전 가동과 신규 건설을 중단해야 하는 사태에 이를 수도 있다. 게다가 영구 방폐장은 부지 선정 절차에만 13년, 최종 완공까지 37년이 걸리는 사업이다.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도 방폐장 건설은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민주당은 국가 대사를 진영 논리에 휘둘리는 무책임한 일을 그만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