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등(等)이 사라지고 있다"는 공무원들의 푸념
윤석열 정부의 ‘덩어리 규제’ 혁파를 주도하는 국무조정실 규제혁신추진단이 8월 1일로 출범 1주년을 맞는다. 대통령이 의장인 규제혁신전략회의가 규제 혁신의 컨트롤타워라면, 한덕수 국무총리가 단장을 맡은 추진단은 손발 역할을 하는 핵심 조직이다.

국조실은 추진단이 지난 1년간 1027건의 규제를 개선했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한 경제 효과는 약 7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근로자 수 기준으로 지급했던 중소기업 보조금 규제 완화, 항만물류 입력 시간 단축(2시간→10분), 알뜰폰 규제 개혁 등을 대표 성과로 꼽았다.

국조실은 추진단이 인적 구성이 뛰어나고 그 덕분에 상당한 성과를 냈다고 강조했다. 추진단은 전직 공무원 90명, 경제단체·연구기관 34명 등 140여 명으로 구성됐다. 자문단에는 조원동 전 경제수석,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등 33명의 장차관급 인사가 포진해 있다.

윤 대통령이 7월 초 ‘킬러 규제’ 완화를 주문하면서 정부의 규제 완화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하지만 공직사회에선 복지부동과 보신주의가 여전하다. 정책이 잘못되면 감사나 검찰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관가에선 “등(等)이 사라졌다”는 말까지 나온다. ‘기타 등등’을 얘기할 때 그 ‘등’ 말이다. 규제개혁을 담당하는 한 중앙부처 간부는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은 사과, 딸기, 배 등으로 만들 수 있다는 규제가 있을 때 기업들은 키위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도 되는지 문의한다”며 “요즘 ‘키위도 가능하다’고 답하는 공무원은 많지 않다”고 했다. 공무원들이 혹시 나중에 탈이 날까 봐 규제에 대한 유권해석을 유연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신껏 일하다 말이 나오는 공무원이 나중에 승진에서 불이익받는 경우도 있다 보니 그냥 무난하게 가자는 보신주의가 만연하다는 지적도 있다. 규제 완화를 둘러싸고 부처 간 갈등을 빚는 바람에 국조실 주재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협약서를 쓰고 난 뒤에야 규제 개선이 추진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

기업들은 킬러 규제 때문에, 때론 손톱 밑 가시 같은 규제 때문에 사업에 차질을 빚는 일이 많은데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하는 건 문제다. 법적 과실이 없는데도 규제를 풀기 위해 발로 뛴 공무원에게 불이익을 주는 건 더 문제다. 규제개혁을 하려면 공무원을 복지부동하게 만드는 분위기부터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