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자 증여, 유류분으로 인정할 수 있는 조건 충족 못해
사망 시점 이르거나, 늦게 수익자 변경했다면 상속받아
치과의사인 A씨는 총 9개의 생명보험에 가입했다. A씨는 18년 동안 매달 2000만원씩 보험료를 납입했다. 하지만 그는 유일한 공동상속인이었던 아내 B씨가 아닌 동거인 C씨를 보험 수익자로 지정한 뒤 사망했다. 사실혼 관계의 동거인 C씨는 약 12억80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받았다. A씨가 남긴 재산은 전세보증금 3억원과 병원을 운영하면서 부담한 채무 5억원이었다. B씨는 빚을 더 많이 물려받을 판이어서 한정승인을 신청했다가 뒤늦게 C씨가 거액의 보험금을 받아간 것을 알게됐다.
B씨로선 C씨가 받아간 보험금 중 자신이 최소한 상속받아야할 몫(유류분)이 있다고 주장할만한 상황이다. 현행 민법상 배우자와 직계비속(자녀 등)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을, 직계존속(부모 등)과 형제·자매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보장받고 있다. 피상속인이 “가족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재산을 모두 물려주겠다”고 유언을 남겨도 상속인은 법으로 보장된 유류분만큼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B씨는 법정에서 이 보험금을 유류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타이밍이 가른 보험금 상속
대법원은 지난해 8월 B씨가 C씨를 상대로 제기한 유류분 반환 청구소송에서 C씨가 수령한 보험금의 일부가 B씨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포함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대법원은 “피상속인이 보험수익자로 지정한 제삼자가 생명보험금을 받아 간 경우, 피상속인은 제삼자에게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포함되는 증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위헌 논란 끊이지 않는 유류분 제도
유류분 제도는 상속 과정에서 상속인들 중 상대적으로 약자인 사람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1979년 시행됐다. 하지만 “민법의 기본원칙인 유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유언을 통해 상속받을 사람과 재산규모를 결정하더라도 이를 이를 법률로 막을 수 있어서다. 인연을 끊고 지낸 가족이 장례식 후 나타나 유산을 받아가는 부작용을 양산한다는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가수 구하라씨가 사망한 뒤 20년 넘게 왕래가 없던 친모가 나타나 재산을 상속받은 일이 대표적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불효자나 자녀의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가족이 유류분 상속을 받는 것이 타당한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라며 “구하라 씨 사건처럼 오랫동안 연락도 안하고 살던 가족이 갑자기 나타나 상속분을 주장하는 경우가 늘고있어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