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하는 ‘사법 정비 법안’이 24일(현지시간) 의회에서 가결됐다. 전날부터 시민들이 의회 앞에서 밤샘 농성을 벌이며 강력 반발했지만 사법부 권한 축소를 막아내진 못했다. 네타냐후 정부에 맞서기 위해 병역 거부 운동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어 이스라엘이 건국 이후 가장 큰 격랑에 휘말렸다는 평가다.

이날 이스라엘 크세네트(의회)는 집권 연정이 발의한 ‘사법부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2~3차 심의를 거쳐 표결 끝에 법안을 가결 처리했다. 여당이 만장일치 찬성한 가운데 야권이 표결에 보이콧을 선언하며 찬성 64표에 반대 0표로 가결됐다.

이 법안에는 총리의 장관 임명 등 행정부 결정을 사법부의 판단으로 뒤집을 수 있는 견제 장치를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헌법재판소 기능을 담당하면서 행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이번 법안 개정으로 이 역할이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평가다.

의회에선 전날 오전 10시부터 이날 밤 12시까지 26시간 릴레이 토론이 이어졌다. 여당은 선출된 행정부의 권한을 공무원인 판사가 과도하게 제한하지 못하게 해 민주주의를 강화하겠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그러나 야권과 시민단체는 이 법안이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 원리를 훼손해 네타냐후의 독재로 이어질 것이라고 반발해왔다.

네타냐후 총리는 1996년 처음 집권에 성공한 뒤 27년간 이스라엘 정계에서 중심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엔 민족주의 극우 세력과 손잡고 세 번째 집권에 성공하는 등 지금까지 16년간 총리로 재임했다. 다만 재임 기간 부정 청탁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2019년 뇌물, 사기,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재판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번 법 개정에 대해 ‘방탄입법’이란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네타냐후 정부에 반발한 시민들은 전날 의회 앞으로 집결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이날 이스라엘 전역에서 시위에 참여한 국민은 25만 명으로 추정된다. 가입자 수가 80만 명인 이스라엘 최대 노조도 사법 정비에 반발하며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예비군 1만여 명은 복무 거부를 선언하기도 했다. 150여 개 대형 기업과 은행 등이 참여하는 이스라엘 비즈니스 포럼도 이날 하루 총파업 선언으로 반정부 시위대에 힘을 실어줬다.

오현우/이현일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