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티콘과 자작시를 그림 안으로 ... 마틴 그로스 개인전[전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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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그로스 한남동 파운드리갤러리 전시
All in Cold, 2023
파란 점이 가득 찍힌 캔버스, 그림 위엔 검은 바탕에 빨간 글씨로 알 수 없는 글이 쓰여 있다. 자세히 읽어보면 한 편의 시다. 시를 쓴 사람은 작가 본인. 그림을 그리며 느낀 감상이나 메시지를 시로 풀어냈다.
그림과 글을 캔버스에 함께 담은 독일 작가 마틴 그로스의 작품들이 서울 한남동 파운드리갤러리에서 한국 관객들을 만난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아시아 전시로는 두 번째다. 열두 점의 회화와 한 편의 영상 작품을 선보인다.
Time To Go, 2023
그는 작품에 그림 뿐 아니라 문장, 단어, 이모티콘 등 '텍스트'를 사용해 이름을 알린 작가다. 이번 전시에 걸린 대다수 작품들도 글씨와 그림을 한 프레임에 세웠다. 그로스는 일반 글 뿐 아니라 지도나 엽서 심지어 CCTV 화면에서 쓰인 텍스트를 잘라낸 뒤 캔버스에 조합한다. 이 과정에서 글의 의미가 달라진다. 여기에 지금 유행하는 광고나 휴대폰 이모티콘, 그리고 밈을 함께 녹여낸다.
Oh Sega Sunset, 2023
마틴 그로스가 이번 전시를 위해 선보인 5분가량의 대형 애니메이션 작품 '오 세가 선셋'은 7m 높이의 벽에 쉴새없이 단어와 문장들이 등장한다. 매 초마다 글씨는 형태와 색을 바꾼다. 그가 직접 작성한 문구부터 가벼운 농담까지 다양한 글이 오르내린다. 별 의미 없는 텍스트들이 흘러가는 걸 넋 놓고 봤더니, 금세 5분이 지났다.
그는 "검정 배경과 완벽히 대비되는 선명한 주황색 글씨를 사용했다"며 "마치 광고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그로스가 처음 시도한 대형 미디어 작품이다. 효과음까지 넣은 게 특징이다.
Grey Skies Turquoise Days, 2023
영상 작품 맞은 편엔 수십 마리의 갈매기가 석양이 지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의 붉은 색 회화 '그레이 스카이, 터콰이즈 데이즈'가 걸렸다. 이 작품에는 어떤 글도 없다. 그로스는 "이 작품에선 그 어떤 메시지도 글로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며 "로맨틱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만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첨단 기술이 집약된 영상 작품 바로 앞에 이 그림을 배치한 건 무미건조한 기술과 로맨틱한 인간의 감정을 극명하게 대비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했다. 이렇게 그는 이번 전시에서 낭만주의와 기술의 대비를 주요 주제로 삼았다.
갤러리 내부는 매우 어둡다. 영상을 틀어야 하기 때문이다. 프레임이 없는 탓에 작품을 그냥 벽에 붙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불친절한 것도. 작품 옆에 설명은 물론 작품 이름조차 없다.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도록이나 전시 설명을 같이 봐야 한다. 전시는 9월 16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