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찬 한국경제신문 기자가 경기 여주 신라CC 남코스 5번홀(파3)에서 티샷하고 있다.  /여주=임대철 기자
조희찬 한국경제신문 기자가 경기 여주 신라CC 남코스 5번홀(파3)에서 티샷하고 있다. /여주=임대철 기자
2015년 9월 당시 남자골프 세계랭킹 1위이던 제이슨 데이(36)가 인터뷰에서 밝힌 파3홀 공략법은 “그린에 깃대가 없다고 생각하고 쳐라”였다. 그린에 공을 올리려면 핀을 직접 노리지 말라는 뜻이다. 데이뿐만 아니라 여러 프로선수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조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파3홀만 가면 그린 위 핀만 보였고, 매번 핀을 향해 쏘다가 낭패를 보기 일쑤였다.

경기 여주 신라CC의 시그니처 홀인 5번홀(파3) 티잉 구역에 올랐을 때 불현듯 데이의 조언이 떠올랐다. 캐디로부터 홀 공략법을 듣고 난 뒤였다. 설명은 이랬다. “일단 그린이 티잉 구역보다 10m 낮기 때문에 실제 거리(블루 티 164m, 화이트 티 159m, 레드 티 139m)보다 짧게 쳐야 하지만, 우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세다 보니 바람 계산도 잘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길게 치면 핀이 2단 그린 앞에 꽂혀 있기 때문에 어려운 내리막 퍼트를 해야 할 수도 있어요.”

도대체 어떻게 치라는 건지. 박형식 신라CC 대표는 “5번홀 앞 5000㎡에 달하는 호수에서 수거하는 공이 한 해 3만 개에 달한다”고 했다. 1년에 약 10만 명이 이 코스를 찾는다고 하니, 10명 중 3명꼴로 물에 빠뜨린 셈이다. 좌측 숲이나 우측으로 휘어져 나간 공은 뺀 숫자니까, 실제 미스샷은 훨씬 더 많았을 거라는 얘기다.

○안양CC 느낌 나는 신라CC

신라CC는 국내 골프장 7개를 위탁 운영 및 소유하고 있는 KX그룹이 ‘얼굴’로 내세우는 골프장이다. KX그룹이 운영하는 골프장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골프장인 클럽72(옛 스카이72)도 있고, 세계 유명 골프코스의 홀들을 비슷하게 구현한 알펜시아700GC도 있는데 말이다.

골프장을 만든 과정을 보면 왜 그런지 짐작할 수 있다. 이 골프장을 만든 사람은 재일동포 출신인 홍준기 전 삼공개발 회장이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친분이 있었던 그는 신라CC를 국내 최고 명문 골프장인 안양CC처럼 만들고 싶어 했다.

골프장 이름에 ‘신라’를 붙인 것도 삼성과 연관이 있다. 홍 전 회장이 신라호텔에서 운영하던 제과업을 인수해 신라명과로 제과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골프장 이름에 신라를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신라CC 페어웨이에는 주로 삼성 계열 골프장에서 볼 수 있는 안양중지가 식재돼 있다. 안양중지는 “한국 지형에 맞는 튼튼하고 빽빽한 잔디를 만들어보라”는 이병철 회장의 주문에 따라 삼성물산 잔디환경연구소가 개발한 품종이다. 강한 직립성 덕분에 페어웨이에서도 짧은 티를 꽂고 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특징이다. 난도가 그리 높지 않고 적당한 변별력을 갖춘 점도 안양CC가 추구하는 바와 비슷하다.

소나무 4500그루를 곳곳에 심어 마치 나무들이 홀을 감싸는 듯한 아늑한 느낌을 주는 것 역시 안양CC와 닮은꼴이다. 박 대표는 “소나무 관리에만 1년에 2억원을 쓴다”고 했다. 아늑한 분위기가 풍긴다고 골프장이 좁은 건 아니다. 구겨 넣으면 36홀을 지을 수 있는 부지(175만㎡)에 27홀만 들였다. 그래서 홀 간격이 넉넉하고 페어웨이도 넓은 편이다. 골퍼들이 마음껏 티샷을 휘두를 수 있는 홀이 여럿 있다.

홀과 홀 사이에 시야를 방해하는 고압선 같은 게 없는 것도 골퍼가 경기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돕는 요소다. 그 덕분에 신라CC는 골프 예약 대행업체들이 선정하는 ‘소비자 만족 10대 골프장’에 여러 차례 선정됐다. 설계는 화산CC 지산CC 등을 만든 임상하 씨가 했다.

신라CC는 처음 회원제로 출발했다가 2013년 모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대중제(2015년)로 전환해 지금의 주인인 KX그룹 품에 안겼다.

○‘열혈 골퍼’ 위해 27홀 상품도

넋 나간 기자의 표정을 봤는지 캐디는 “물수제비를 해서 그린에 공을 올리는 경우도 있고, 해저드가 꽝꽝 어는 겨울에는 종종 튕겨서 공을 그린에 올리는 분도 봤다”며 “그러니 마음 편하게 먹고 치라”고 말했다. 데이의 조언을 되새기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다. 핀은 그린 왼쪽 앞. 감기면 숲에 들어가고, 밀려도 코스 밖으로 나가는 상황. 그린 한가운데를 노리고 쳤다.

공은 힘차게 그린 한가운데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강한 맞바람을 맞은 공은 더이상 뻗어나가지 못하고 해저드에 빠졌다.

벌타를 받고 세 번째 샷 만에 그린에 공을 올렸는데 너무 길어 2단 그린 위로 올라갔다. 네 번째 샷은 퍼터로 툭 건드리기만 했는데도 홀을 2m나 지나쳤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과감하게 오르막 퍼팅을 했더니 그제야 공이 홀로 사라졌다. 박 대표는 “해저드 등 주변 요소 때문에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홀이 아니다”며 “홀인원도 한 달에 한 번꼴로 나온다. 자주 오는 골퍼일수록 확실히 유리한 홀”이라고 했다.

서울 강남에서 1시간20분, 경기 성남시 분당에선 1시간 정도면 닿는 거리에 있다. 국내 골프장 가운데는 매우 이례적으로 코스관리팀장 출신을 대표에 앉힐 정도로 코스 관리에 진심이다. 그린이나 페어웨이 관리 상태를 보면 알 수 있다. 18홀로 만족 못하는 ‘열혈 골퍼’를 위해 ‘27홀 예약’도 받아준다. 18홀 그린피의 50%를 더 내면 된다. 7월 주말 기준 그린피는 24만원이다.

여주=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