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림길서 다시 한번 선택해야…양국관계 위해 역할해 달라"
시진핑, '핑퐁외교' 美키신저에게 "역사적 공헌 잊지 않을 것"(종합2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1970년대 미중 양국 사이에서 '핑퐁외교'를 주도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향해 "중·미 관계 발전을 추진하고 양국 인민의 친선을 증진하기 위한 역사적 공헌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일 중국 중앙TV(CCTV)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키신저 전 장관을 만나 "중국인은 정의를 중시한다.

우리는 '라오 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는 뜻)를 잊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중국은 신뢰하는 외국의 고위급 인사를 지칭할 때 라오펑유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시 주석은 2021년 독일을 16년간 이끌고 퇴임을 앞둔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를 향해 중국·독일 관계와 중국·유럽연합(EU) 관계 증진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이 표현을 사용했다.

시 주석은 키신저 전 장관이 최근 100세 생일을 맞았고 중국 방문이 100회가 넘는다는 점을 언급한 뒤 "두 개의 100을 합하면 이번 중국 방문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덕이 있는 사람은 장수한다는 의미의 '대덕필수'(大德必壽)라는 성어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어 "52년 전 마오쩌둥 주석, 저우언라이 총리, 닉슨 대통령, 당신은 탁월한 전략적 안목으로 중미 협력이라는 정확한 선택을 했다"며 "중미관계 정상화 과정을 열어 양국을 행복하게 했고 세계도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또 "현재 세계는 100년 동안 없던 큰 변화를 겪고 있으며 국제구도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중미 양국은 다시 한번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갈림길에 있고 양측은 다시 한번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제안한 미중관계의 3대 원칙(상호존중, 평화공존, 협력상생)을 강조한 뒤 "이 기초 위에서 중국은 미국과 함께 양국이 서로 잘 지낼 수 있는 올바른 길을 모색하고 중미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라며 "이는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세계에도 복지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당신과 미국의 지식인들이 중미관계를 올바른 궤도로 되돌리기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키신저 전 장관은 자신이 1971년 처음 중국을 방문해 중국 지도자를 만난 댜오위타이 국빈관 5동에서 시 주석을 만날 수 있도록 한 배려에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미중관계는 미중,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매우 중요하다"며 "현재 상황에서 '상하이 코뮈니케'(공동성명)가 확정한 원칙을 준수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의 중요성을 이해하며 미중관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미중 양국 국민의 상호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면담에는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함께했다.

중국을 찾은 키신저 전 장관은 18일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른 리상푸 국방부장을 만났고, 전날에는 중국 외교라인 1인자인 왕이 위원과 회담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양국 간 교류의 물꼬를 튼 인물로서, 미국 외교가의 최고 원로로 꼽힌다.

키신저 전 장관 주도로 지난 1971년 미국 탁구팀이 중국을 방문하며 양국 간 교류가 시작돼 이를 '핑퐁외교'라고 부른다.

이듬해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 당시 주석과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고, 이때 두 정상은 공동성명인 '상하이 코뮈니케'에 서명했다.

이것은 이후 1979년 양국 공식 수교의 발판이 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키신저 전 장관의 방중이 최소 두 달 전 계획됐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날 보도했다.

소식통은 키신저 전 장관이 중국 지도부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개인 자격으로 베이징을 찾았고 현지서 받은 인상을 미국 정부와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중 정치권에서 모두 존경받는 그가 개인 자격의 여행을 통해 공식 방문에서는 거론하기 어려운 대화를 중국 지도자들과 나누길 기대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날 시 주석과 키신저 전 장관의 면담은 최근 중국을 찾은 미국 고위인사들이 시 주석을 만나지 못한 것과 대비된다.

전날 중국을 떠난 존 케리 기후변화특사와 6∼9일 방중한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시 주석을 만나지 못했다.

키신저 전 장관의 방중은 이번 주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소식통은 "키신저의 방중은 개인 자격이고, 미국 정부의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며 "중국을 방문할 때면 현지 고위관리들로부터 초대받고, 그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면서 키신저의 의견을 구한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 매슈 밀러 대변인은 18일(현지시간) 키신저의 방중은 개인 자격으로 이뤄졌고 미 정부를 대표해서 간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국무부는 지난달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측으로부터 키신저의 방중 계획을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