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고두현

남녘 장마 진다 소리에
습관처럼 안부 전화 누르다가
아 이젠 안 계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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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의 아침 시편] 아 이젠 안 계시지…
원래 30행짜리였는데 줄이고 줄였더니 3행이 됐습니다. 제목도 수식어 없이 한 단어로 줄였지요.

이 시에서 ‘안 계시지……’의 주인공은 어머니입니다. 외환위기 때 먼 길 떠나고 난 이듬해 여름이었죠. 남부 지방에 큰비 오고 장마가 진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지역 번호 055를 누르고, 다음 번호를 누르다가 생각이 났지요. 아, 참, 이젠 안 계시지…….

어머니의 부재를 통해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빈자리가 커 보일수록 애틋함도 커진다고 하지요? 어머니의 삶이 그랬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우리 가족은 남해 금산 보리암 아래의 작은 절집 곁방에서 살았습니다. 어쩌다 절집으로 들어가게 됐을까요.

아버지가 북간도부터 시작해서 객지로 떠돌다가 병을 얻은 뒤 식구를 이끌고 귀향했기에 궁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몸도 편한 날이 없었지요. 온 가족이 벼랑 끝에 몰렸습니다. 우연히 금산 절에 갔던 어머니가 생기를 회복한 것을 계기로 아예 삶터를 옮기게 됐지요.

어머니는 한동안 허드렛일을 겸하는 공양주 보살로 살았습니다.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어중간한 삶이었지요.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에 입학한 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처의 고등학교로 떠나자 어머니는 이제 됐다 싶었던지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셨습니다. 이후 남해 물건리에 있는 미륵암에 자리를 잡았지요. 물건리는 지금의 ‘독일마을’입니다.

그곳 암자는 방풍림과 너른 들판 가운데에 있습니다. 저는 방학 때마다 기숙사에서 이곳으로 ‘귀가’했습니다. 어렵사리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이곳에서 ‘어머니 스님’이 보내 주는 쌀로 자취생활을 했지요.

신문사에 취직해 햇병아리 기자 때 받은 ‘늦게 온 소포’도 이곳에서 어머니가 보내 준 것이었습니다. 이미 속세를 떠난 사람이 속가의 아들에게 사사로이 보낸 소포와 편지, 사회 초년병으로 아등바등하던 그때, 남해산 유자 아홉 개를 싸고 또 싸서 서울로 보낸 속 깊은 마음이라니!

그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제 곁에 현재형으로 살아 계시며 자주 등을 다독거려 주십니다. 한 편 한 편 살아있는 시를 쓰라고, 향기 깊고 여운이 오래 남는 글을 쓰라고…….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