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의 흥겨운 사운드가 폭풍우를 뚫고 나왔다 [클래식 리뷰]
지난 1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지휘자 토마시 네토필이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국립심포니 제공

지난 1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공연장 로비와 프로그램북 표지에 붉은 색감의 장미 그림이 눈길을 끌었다. 국립심포니와 협업하는 미술작가 이혜인의 그림이다. 이 작가는 드보르작 교향곡 6번을 듣고 이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안내서에는 "어둠이 찾아와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강렬한 색채의 꽃송이들을 화폭에 담았다"는 설명이 적혀있었다.
보헤미안의 흥겨운 사운드가 폭풍우를 뚫고 나왔다 [클래식 리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드보르자크 교향곡 6번 공연 포스터

이날 열린 국립심포니 공연에서는 그림의 정취가 그대로 느껴졌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궂은 날씨 탓에 관중석이 가득 차지는 않았지만, 열정적이고 흥겨운 보헤미안의 음악은 강렬한 색체를 내뿜으며 관중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이날 프로그램은 체코를 대표하는 두 작곡가 스메타나와 드보르작, 그리고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쇼팽 협주곡은 피아니스트 윤홍천(41)이 협연자로 나섰다. 이번에 국립심포니 객원지휘자로 처음 내한한 지휘자 토마시 네토필은 명랑한 발걸음으로 무대 위에 등장했다.

스메타나의 오페라 '팔려간 신부' 서곡으로 예열에 성공했다. 이 곡은 1860년대 부상한 체코의 민족주의 정서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네토필은 우중충한 날씨를 뚫는 에너지로 보헤미안의 오밀조밀한 선율과 정겨운 민속 리듬을 기민하게 표현했다. 그는 종종 춤을 추듯 점프하며 자유로운 동작을 선보였는데 현악 파트는 그에 맞춰 볼륨과 음색을 세밀하게 조정하며 체코 음악의 흥취를 느끼게 했다.
보헤미안의 흥겨운 사운드가 폭풍우를 뚫고 나왔다 [클래식 리뷰]
피아니스트 윤홍천이 지난 11일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을 연주하고 있다. 국립심포니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당연히도 윤홍천의 시간이었다. 그는 다이내믹의 폭이 대단히 넓기보다는 정제되고 사색적인 쇼팽을 들려줬다. 이 곡은 최근 조성진, 선우예권 등 정상급 피아니스트들이 잇따라 무대에 올린 곡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번민하던 쇼팽의 감성을 표현한 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뛰어난 감정 표현력과 화려한 음형이 두드러진다.

윤홍천은 열병처럼 뜨겁거나, 애절하기 보다는 여운이 진한 첫사랑을 표현했다. 화려한 스타일의 연주자는 아니었지만, 수수하면서도 깊이있는 음색이 장점이었다. 그래서 테크닉적이고 장식적인 1악장보다는 서정적인 멜로디가 중심이 되는 2악장에서 진가가 드러났다.

2부에서는 보헤미안의 정체성을 음악으로 구현한 드보르작 교향곡 6번으로 흥취를 극대화했다. 1악장 도입의 당김음 리듬부터 4악장까지 늘어지지 않고 음악적 긴장감을 팽팽하게 이어갔다. 특히, 푸리안트가 활용된 3악장에는 대조적인 두 가지 음형을 활용해 '내적 댄스'를 유발했다. 푸리안트는 빠른 3박자 계열의 보헤미아의 민속 춤곡이다. 드보르작은 피아노 퀸텟 등의 레퍼토리에도 푸리안트를 활용했다. 4악장 후반의 프레스토(매우 빠르게) 부분에서는 악센트와 스타카토로 맹렬히 달려다가다 현악 파트의 고음역대 트레몰로(동음 혹은 복수의 음을 반복해서 연주)로 흥의 대미를 장식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