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총파업 쟁의권 확보"…민주노총 몰려 노동위 '업무 폭증'
민주노총이 지난 3일부터 2주간의 총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소속 노조들이 쟁의권 확보를 하기 위해 노동위원회로 몰리면서 지방노동위들이 '업무 폭증' 상태에 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가 쟁의권이 확보되지 않은 노조의 파업은 불법으로 간주하고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반복적으로 밝히면서다.

충남지노위, 총파업 앞두고 민주노총 조정신청 18배 '폭증'

11일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이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앙노동위에선 올해 한달 평균 2건에 불과하던 민주노총 노조의 조정 신청이 5월 7건에서 6월 25건으로 급증했다. 한국노총 등 다른 소속 노조의 조정 신청은 제외한 숫자다.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인 '쟁의권'은 노조와 회사의 임단협 교섭 과정에서 노동위에 조정을 신청하고, 노동위서 중재가 원활하지 않다는 내용의 ‘조정 중지’ 결정이 나와야 가능하다. 실제 파업에 돌입하려면 조합원들의 쟁의행위 찬반투표도 필요하다. 쟁의권 없는 파업은 현행법상 불법이다.

다른 지노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울지노위도 민주노총 소속 노조의 조정신청이 5월 2건에서 6월 16건으로 8배 증가했다. 부산지노위도 올해 월 평균 1~2건의 조정신청이 접수되는 수준이었지만 5월 5건, 6월 15건으로 급증세를 나타냈다. 충남지노위도 올해들어 월 평균 1건 수준이었지만 6월 18건으로 폭증했다.

이 덕분에 지난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조정회의만 20건에 달한다. 서울지노위도 11일에만 10여개사의 노조가 신청한 조정 회의가 4건 잡혀 있다. 한 공인노무사는 "자문 기업 노조의 파업 이슈로 지방노동위를 방문했는데, 담당자들이 평소보다 많이 버거워하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이는 민주노총 총파업에 참여하려는 노동조합들이 쟁의권을 확보하기 위해 한꺼번에 몰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노동계에 따르면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12일 총파업이 예정돼 있다. 13일에는 보건의료노조, 사무금융노조, 전교조, 화섬노조 등이 순차적으로 총파업을 벌인다. 최근 이정식 장관이 현대차 노조(금속노조 현대차 지부)를 정면으로 겨냥해 “명백한 불법”이라고 경고한 것도 결국 쟁의권 확보 문제와 맞닿아있다.

현대차지부는 현재 쟁의권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12일 금속노조 총파업 참여가 예정돼 있다. 정부 관계자는 "총파업에 참여한다면 파업 종료 이후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는 금속노조 총파업을 두고 불법과 명분을 운운하지만, 금속노조 총파업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는 것"이라며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조합원 쟁의행위 찬반투표에 붙였고, 7일 89.1%가 찬성해 압도적으로 가결됐다"고 강조했다.

조정신청 건수 분석해 보니…보건의료노조가 총파업 주도

노동위원회 조정 신청 자료를 산별노조 별로 분석해 보면 어떤 노조가 총파업을 주도할지도 대략 파악이 가능하다. 전국적으로는 보건의료노조의 조정 회의 신청이 가장 많다. 보건의료노조는 과거 총파업에서도 집단 조정신청을 통해 쟁의권을 확보하곤 했다.

중앙노동위원회에는 지난 6~7월기간 동안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가 각각 8건씩 조정회의를 신청했다. 같은 기간 서울지노위에서는 공공운수노조가 8건, 보건의료노조가 6건을 신청하고 있다. 경기지노위에서도 보건의료노조가 6건으로 가장 많은 조정신청을 했다. 수도권 지역 총파업은 보건의료노조가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조업체가 몰려 있는 경남지노위와 울산지노위에서는 금속노조가 각각 6건과 5건의 조정회의를 신청했다. 부산지노위는 민주일반노동조합연맹만 9건을 신청한 점이 눈에 띈다. 보건의료노조도 5건을 신청했다.

충남지노위에서는 보건의료노조와 공공운수노조, 화학섬유식노조가 골고루 4건씩 조정 회의를 신청했다.

보건의료노조는 10일 서울 영등포구 노조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7일까지 127개 지부, 145개 사업장 6만4257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 투표한 결과 가결돼 13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부터 동시 쟁의조정에 돌입했다는 설명이다.

"파업이 목적…조정회의 진행 의미 없어"

노조들이 쟁의권 확보가 목적인만큼, 조정 희의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지방노동위 조정위원은 “(노조들이) 파업권 확보를 위한 요식행위로 들어왔기 때문에 조정회의를 열어도 별다른 타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경총 관계자는 “교섭이 갓 시작되는 등 노동쟁의 상태가 아닌데도 부랴부랴 조정을 신청한 사례도 많다”며 "조정 회의를 두 번 열었다는 이유로 노동위를 성토한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개별 사업장 별로 노사 협상 일정이 다른데도 이를 총파업 시기에 맞춰야 하다 보니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노총 산별노조의 한 관계자는 “윤정부의 노동탄압 분쇄가 목적이라면 (총파업을) 더 일찍 했어야했다"며 "하반기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를 위한 세몰이 차원에서 일정을 정했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 노무 담당자들은 "노조가 연례 행사처럼 진행되는 총파업 일정에 교섭을 맞추려는 모습을 보이다 보니, 멀쩡히 잘 진행하던 개별 사업장 임단협에도 긴장감이 감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일 시작된 총파업이 아직까지는 별다른 충돌 없이 진행되는 가운데, 주요 산별노조 총파업이 몰려 있는 13일을 지나면 '총파업 최종 성적표'가 나올 전망이다. 추후 노동계의 정책 향방을 가늠할 자료가 되는만큼, 노동계와 정부 모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