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로 사진이 찍고 싶어서 무작정 김태형에 전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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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구본숙의 Behind the Scenes
슈만 카니발에 영감 받아 음악가들과 작업한 시리즈
두 번째 소품 '피에로' 역에 김태형 피아니스트
섬세하고 우아한 연주만큼이나 깊고 슬픈 피에로 표현
슈만 카니발에 영감 받아 음악가들과 작업한 시리즈
두 번째 소품 '피에로' 역에 김태형 피아니스트
섬세하고 우아한 연주만큼이나 깊고 슬픈 피에로 표현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지인이 점차 늘어갔다.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면 아무래도 문화 관련 비용부터 줄이기 마련이다. 쓰면 좋지만 안 써도 살아가는 데 별문제는 없는 돈이니까. 나라고 다를 이유는 없어서, 전보다 일감이 많이 줄었고 결국 작업실에서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시간을 그동안 내가 해왔던 작업 전체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에 예술가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는 어떤 자세로 작업에 임해야 하는가. 하지만 이런 질문은 쉽게 대답이 나오는 게 아니었고,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으로 내면으로 틀어박히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음악 관련 작업을 오래 해서 그런지 몰라도 평소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의 영감을 얻는 경우가 있다. 별생각 없이 틀어놓은 슈만의 피아노곡 ‘카니발’(Carnaval, Op. 9)을 듣는 순간 뭔가가 머리를 스치는 것 같았다. 슈만은 평생 양극성 성격 장애, 쉬운 말로 조울증에 시달렸고 결국 정신병원에서 일생을 마쳤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정신상태를 극도로 민감하게 자각했던 인물이었다. 그가 평생에 걸쳐 쓴 작품 태반은 그가 자신의 정신상태를 외부로 투사해 쓴 것이었다.
‘카니발’처럼 슈만 주변의 지인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는 작품을 특히 그렇다. 일종의 군상극 같은 이 작품에서, 슈만은 자신이 생각하는 지인들의 모습을 그린 다음 다시 그 지인들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숙고해봤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었다. 내 작업의 방향을 찾으려면 ‘예술가로서 나’는 과연 누구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했고, 그러려면 일단 나 자신을 외부로 투사해야 했다. 그 매개체로 무엇이 좋을까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내게 이런 깨달음을 준 슈만의 ‘카니발’ 외에 무엇이 더 적합했겠는가.
슈만의 ‘카니발’은 모두 20곡으로 이루어진 성격 소품집이다. 성격 소품이란 특정한 성격이나 분위기를 주제로 잡아 쓴 짤막한 곡들을 가리킨다. 슈만의 ‘카니발’은 곡마다 각각 다른 제목도 있고 해서 사진 이미지를 떠올리기에 좋았다. 그 가운데서도 두 번째 곡 ‘피에로’가 특히 마음을 끌었다. 카니발의 정신은 해학과 풍자이다. 그렇다면 어릿광대 피에로만큼 카니발의 정신을 잘 구현한 캐릭터가 또 어디 있겠는가? 다른 캐릭터는 몰라도 피에로만큼은 이 작업에 반드시 등장시켜야 했다. 내가 잘 아는 누군가를 피에로로 분장시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누구한테 그 역할을 맡겨야 할까? 이걸 정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연극배우나 뮤지컬 배우 가운데 적임자를 고르려 했다. 하지만 딱히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은 없었고 시간은 자꾸만 흘렀다. 결국 다시 최초의 영감을 준 슈만에게 기대기로 했다. ‘카니발’은 피아노 독주곡이고, 이 곡을 쓴 슈만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다. 그렇다면 피아니스트에게 맡겨보면 어떨까 싶었다. 음악과 사진의 콜라보는 내가 평생 이어갈 작업 주제이기도 하니 무척이나 적절해 보였다.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무작정 전화기를 들고 김태형 피아니스트에게 전화했다. 일단 대강의 작업 취지를 설명했는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좋다고 하는 것이었다. 과연 그다운 반응이었다. 서로 알아온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내가 바라본 김태형 피아니스트는 새로운 모험과 경험을 겁내지 않고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해온 사람이었다. 구상뿐이었던 전시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흔쾌히 믿고 수락해 줘서 고마웠다.
지체 없이 만나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김태형은 내게 두 번째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아직 피에로를 누구한테 맡길지 얘기하지 않았는데, 본인이 하고 싶다고 자청했던 것이다. 이런 걸 두고 ‘불감청고소원’이라 하던가. 조심스럽게 권유해도 ‘날 광대 취급하려는 거냐’는 반응이 나오지는 않을까 내심 두려웠던 터라 무척이나 놀랍고 반가웠다. 갑자기 눈앞이 탁 트이는 듯했다. 익살스럽지만 왠지 사색적이고 쓸쓸한 피에로의 모습을 담고 싶었는데 더할 나위 없는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한 듯한 섬세한 눈매도, 긴장감 있는 표정과 말투도 좋았다. 이렇게 가장 큰 고비를 무난히 넘기자 추가로 7명의 피아니스트도 일사천리로 섭외가 되었다. 컨셉트에 어울릴 만한 연주자에게 직접 섭외도 하고, 소속 매니지먼트사의 허락 및 더불어 다른 모델 추천도 받았다. 급하게 적은 짧은 기획안을 보냈음에도 100퍼센트 참여하기로 결정이 나니 행복했고 기대감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초기 구상은 서양 축제인 카니발이었지만 중간에 기획을 바꿔 한국식으로 번안해 보기로 했다. 축제란 어느 나라에도 있겠지만, 우리네 한민족 역시 익살과 해학, 풍자, 신명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민족이다. 모티브는 서양에서 따더라도 이걸 우리 식으로 소화해 보기로 했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내 전시를 본 사람들이 축제라는 일탈을 통해 삶의 이면을 돌아볼 수 있다면 내 목표는 이루어진 셈이다.
이제 표현 방식이 문제였다. 축제는 일상에서 벗어난 일종의 긍정적 일탈이고,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했다. 이왕 우리 식으로 하기로 했으니 색동이 어떨까 싶었다. 명절이나 혼례 등 경사스러운 날에 착용하는 게 색동옷 아니었던가. 한데 색동을 포인트로 쓰고자 하니 한복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다. 나라고 평소에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새로 알아야 할 게 많았다. 한복의 변천사를 간단하게나마 공부하고, 그림(풍속화)속에서도 찾아보고, 한복 용어도 익혀야 했다. 이해를 하다 보니 이왕이면 조선 초기 악공이 착용한 복두를 머리에 씌우고 싶었다. 그런 다음 종로의 광장시장 내 원단 가게들이 즐비한 곳에 가서 하나하나 물어가면서 색동천이며 온갖 소품을 구입해 바느질도 하고 구슬도 꿰었다. 도저히 서툰 바느질로 만들 수 없는 것들은 사극 의상 대여점에서 빌렸다. 하나씩 일정에 맞추어 제작 및 대여 일정을 조율하고 사진 컨셉에 어울리게 가면 및 부채에 털 장식을 붙이는 등 액세서리를 갖추다 보니 생각보다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모든 인물의 피부를 흰색으로 칠하고자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정했다. 흰 얼굴 자체가 가면이 되고 점차 표제 속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진은 기획(구상)에 힘이 많이 든다. 기획을 다 하고 나니 연주자와 스타일리스트 스케줄을 조정하여 촬영에 들어가게 되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최선을 다했다.
김태형 피아니스트를 새해의 시작인 2022년 1월 첫날(신정)에 작업실에서 만났다. 전시회 ‘카니발’ 촬영의 시작이었다. 바쁜 연주자가 유일하게 쉬는 때 내게로 와줬다. 촬영이 진행될수록 욕심이 생긴다. 떨리듯 입술은 살짝 웃음을 머금어야 하며, 점점 입술은 벌겋게 눈은 어둡게 변해가며 슬픔과 긴장감이 감도는 눈물도 좀 흘려줘야 한다. 김태형은 내가 원하는 피에로의 모습으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눈물이 볼 위로 흐르는 이 순간 셔터를 누르며 갑자기 궁금해졌다. 무대 위가 아닌 이 공간에서 이 피아니스트는 다른 역할로 해방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어떤 생각을 하며 감정을 잡고 있을까? 의상 표현을 위해서는 목 부분에 색동 러플(ruffle)을 둘렀다. 사진마다 색동 포인트가 하나씩 들어가야 했다. 색동천 위에 희고 투명한 레이스를 어설픈 손바느질로 덧대어 살짝 톤을 죽이고, 배경이 된 블랙 블라우스는 피에로의 지혜를 상징하는 의미로 선택했다. 이렇게 촬영하고나니 세 신(scene)의 피에로가 탄생했다. 만족스러웠다. 촬영을 마치고 거울 앞에서 피에로로 변한 김태형은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 컷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진짜 피에로 같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귀여운 매혹적인 악동 피에로의 모습이랄까.
이에 더해 김태형 피아니스트는 오프닝 당일에 멋진 연주와 함께 전시를 더욱더 빛나게 해주었고, 난 속으로 감동이 벅차올랐다. 그간 추위에 마스크에 소품을 넣을 배낭을 멘 채 시장통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간 고생했던 것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나는 나중에 어떤 인터뷰에서 음악가로서 피아니스트 김태형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섬세하고 우아한 연주자, 또 명랑하면서도 깊은 철학과 슬픔도 살짝 보이는… 피에로 역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다. 그래서 맘에 쏙 드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고, 훌륭한 인성을 가진 연주자이다.”
이 작업이 없었다면 나는 그를 피에로에 빗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나름대로 찬사를 보내긴 했겠지만 말이다.
17년에 걸친 우리의 인연이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낸 순간이었다. 이 전시는 음악을 사진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외에도 감사한 사람이 너무 많은데 모두 열거하진 못하지만 모델이 되어준 다른 아티스트분들께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김태형 피아니스트가 너무나도 매혹적인 피에로의 면모를 잃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다양한 변신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시간을 그동안 내가 해왔던 작업 전체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에 예술가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는 어떤 자세로 작업에 임해야 하는가. 하지만 이런 질문은 쉽게 대답이 나오는 게 아니었고,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으로 내면으로 틀어박히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음악 관련 작업을 오래 해서 그런지 몰라도 평소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의 영감을 얻는 경우가 있다. 별생각 없이 틀어놓은 슈만의 피아노곡 ‘카니발’(Carnaval, Op. 9)을 듣는 순간 뭔가가 머리를 스치는 것 같았다. 슈만은 평생 양극성 성격 장애, 쉬운 말로 조울증에 시달렸고 결국 정신병원에서 일생을 마쳤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정신상태를 극도로 민감하게 자각했던 인물이었다. 그가 평생에 걸쳐 쓴 작품 태반은 그가 자신의 정신상태를 외부로 투사해 쓴 것이었다.
‘카니발’처럼 슈만 주변의 지인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는 작품을 특히 그렇다. 일종의 군상극 같은 이 작품에서, 슈만은 자신이 생각하는 지인들의 모습을 그린 다음 다시 그 지인들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숙고해봤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었다. 내 작업의 방향을 찾으려면 ‘예술가로서 나’는 과연 누구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했고, 그러려면 일단 나 자신을 외부로 투사해야 했다. 그 매개체로 무엇이 좋을까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내게 이런 깨달음을 준 슈만의 ‘카니발’ 외에 무엇이 더 적합했겠는가.
슈만의 ‘카니발’은 모두 20곡으로 이루어진 성격 소품집이다. 성격 소품이란 특정한 성격이나 분위기를 주제로 잡아 쓴 짤막한 곡들을 가리킨다. 슈만의 ‘카니발’은 곡마다 각각 다른 제목도 있고 해서 사진 이미지를 떠올리기에 좋았다. 그 가운데서도 두 번째 곡 ‘피에로’가 특히 마음을 끌었다. 카니발의 정신은 해학과 풍자이다. 그렇다면 어릿광대 피에로만큼 카니발의 정신을 잘 구현한 캐릭터가 또 어디 있겠는가? 다른 캐릭터는 몰라도 피에로만큼은 이 작업에 반드시 등장시켜야 했다. 내가 잘 아는 누군가를 피에로로 분장시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누구한테 그 역할을 맡겨야 할까? 이걸 정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연극배우나 뮤지컬 배우 가운데 적임자를 고르려 했다. 하지만 딱히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은 없었고 시간은 자꾸만 흘렀다. 결국 다시 최초의 영감을 준 슈만에게 기대기로 했다. ‘카니발’은 피아노 독주곡이고, 이 곡을 쓴 슈만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다. 그렇다면 피아니스트에게 맡겨보면 어떨까 싶었다. 음악과 사진의 콜라보는 내가 평생 이어갈 작업 주제이기도 하니 무척이나 적절해 보였다.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무작정 전화기를 들고 김태형 피아니스트에게 전화했다. 일단 대강의 작업 취지를 설명했는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좋다고 하는 것이었다. 과연 그다운 반응이었다. 서로 알아온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내가 바라본 김태형 피아니스트는 새로운 모험과 경험을 겁내지 않고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해온 사람이었다. 구상뿐이었던 전시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흔쾌히 믿고 수락해 줘서 고마웠다.
지체 없이 만나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김태형은 내게 두 번째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아직 피에로를 누구한테 맡길지 얘기하지 않았는데, 본인이 하고 싶다고 자청했던 것이다. 이런 걸 두고 ‘불감청고소원’이라 하던가. 조심스럽게 권유해도 ‘날 광대 취급하려는 거냐’는 반응이 나오지는 않을까 내심 두려웠던 터라 무척이나 놀랍고 반가웠다. 갑자기 눈앞이 탁 트이는 듯했다. 익살스럽지만 왠지 사색적이고 쓸쓸한 피에로의 모습을 담고 싶었는데 더할 나위 없는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한 듯한 섬세한 눈매도, 긴장감 있는 표정과 말투도 좋았다. 이렇게 가장 큰 고비를 무난히 넘기자 추가로 7명의 피아니스트도 일사천리로 섭외가 되었다. 컨셉트에 어울릴 만한 연주자에게 직접 섭외도 하고, 소속 매니지먼트사의 허락 및 더불어 다른 모델 추천도 받았다. 급하게 적은 짧은 기획안을 보냈음에도 100퍼센트 참여하기로 결정이 나니 행복했고 기대감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초기 구상은 서양 축제인 카니발이었지만 중간에 기획을 바꿔 한국식으로 번안해 보기로 했다. 축제란 어느 나라에도 있겠지만, 우리네 한민족 역시 익살과 해학, 풍자, 신명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민족이다. 모티브는 서양에서 따더라도 이걸 우리 식으로 소화해 보기로 했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내 전시를 본 사람들이 축제라는 일탈을 통해 삶의 이면을 돌아볼 수 있다면 내 목표는 이루어진 셈이다.
이제 표현 방식이 문제였다. 축제는 일상에서 벗어난 일종의 긍정적 일탈이고,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했다. 이왕 우리 식으로 하기로 했으니 색동이 어떨까 싶었다. 명절이나 혼례 등 경사스러운 날에 착용하는 게 색동옷 아니었던가. 한데 색동을 포인트로 쓰고자 하니 한복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다. 나라고 평소에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새로 알아야 할 게 많았다. 한복의 변천사를 간단하게나마 공부하고, 그림(풍속화)속에서도 찾아보고, 한복 용어도 익혀야 했다. 이해를 하다 보니 이왕이면 조선 초기 악공이 착용한 복두를 머리에 씌우고 싶었다. 그런 다음 종로의 광장시장 내 원단 가게들이 즐비한 곳에 가서 하나하나 물어가면서 색동천이며 온갖 소품을 구입해 바느질도 하고 구슬도 꿰었다. 도저히 서툰 바느질로 만들 수 없는 것들은 사극 의상 대여점에서 빌렸다. 하나씩 일정에 맞추어 제작 및 대여 일정을 조율하고 사진 컨셉에 어울리게 가면 및 부채에 털 장식을 붙이는 등 액세서리를 갖추다 보니 생각보다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모든 인물의 피부를 흰색으로 칠하고자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정했다. 흰 얼굴 자체가 가면이 되고 점차 표제 속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진은 기획(구상)에 힘이 많이 든다. 기획을 다 하고 나니 연주자와 스타일리스트 스케줄을 조정하여 촬영에 들어가게 되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최선을 다했다.
김태형 피아니스트를 새해의 시작인 2022년 1월 첫날(신정)에 작업실에서 만났다. 전시회 ‘카니발’ 촬영의 시작이었다. 바쁜 연주자가 유일하게 쉬는 때 내게로 와줬다. 촬영이 진행될수록 욕심이 생긴다. 떨리듯 입술은 살짝 웃음을 머금어야 하며, 점점 입술은 벌겋게 눈은 어둡게 변해가며 슬픔과 긴장감이 감도는 눈물도 좀 흘려줘야 한다. 김태형은 내가 원하는 피에로의 모습으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눈물이 볼 위로 흐르는 이 순간 셔터를 누르며 갑자기 궁금해졌다. 무대 위가 아닌 이 공간에서 이 피아니스트는 다른 역할로 해방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어떤 생각을 하며 감정을 잡고 있을까? 의상 표현을 위해서는 목 부분에 색동 러플(ruffle)을 둘렀다. 사진마다 색동 포인트가 하나씩 들어가야 했다. 색동천 위에 희고 투명한 레이스를 어설픈 손바느질로 덧대어 살짝 톤을 죽이고, 배경이 된 블랙 블라우스는 피에로의 지혜를 상징하는 의미로 선택했다. 이렇게 촬영하고나니 세 신(scene)의 피에로가 탄생했다. 만족스러웠다. 촬영을 마치고 거울 앞에서 피에로로 변한 김태형은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 컷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진짜 피에로 같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귀여운 매혹적인 악동 피에로의 모습이랄까.
이에 더해 김태형 피아니스트는 오프닝 당일에 멋진 연주와 함께 전시를 더욱더 빛나게 해주었고, 난 속으로 감동이 벅차올랐다. 그간 추위에 마스크에 소품을 넣을 배낭을 멘 채 시장통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간 고생했던 것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나는 나중에 어떤 인터뷰에서 음악가로서 피아니스트 김태형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섬세하고 우아한 연주자, 또 명랑하면서도 깊은 철학과 슬픔도 살짝 보이는… 피에로 역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다. 그래서 맘에 쏙 드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고, 훌륭한 인성을 가진 연주자이다.”
이 작업이 없었다면 나는 그를 피에로에 빗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나름대로 찬사를 보내긴 했겠지만 말이다.
17년에 걸친 우리의 인연이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낸 순간이었다. 이 전시는 음악을 사진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외에도 감사한 사람이 너무 많은데 모두 열거하진 못하지만 모델이 되어준 다른 아티스트분들께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김태형 피아니스트가 너무나도 매혹적인 피에로의 면모를 잃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다양한 변신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