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잃고 얻은 목소리… 헨델은 카스트라토를 추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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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경재의 사운드 오브 오페라
▲영화 '파리넬리(1994)'의 한 장면
1500년대 당시 교회음악의 중심지였던 로마에서는, 대외적으로 전파되지는 않았지만, 카스트라토(Castrato)라는 가수들이 왕왕 성가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카스트라토란 소프라노 가수의 음역대까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남성 가수를 일컫는 말이다.…
변성기가 오기 전 8~12세 소년들을 거세, 즉 정소를 제거하는 수술을 시행하여 청소년기를 겪은 후 남성적으로 깊어지는 소리 발달을 막고 어린 시절에 낼 수 있는 높은 음역을 보전하여 높은 소리로 노래를 할 수 있게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16세기 당시에는 여성이 교회에서 노래하는 것을 금지하던 때라 일반적으로 보이소프라노들이나 남성이 가성으로 소리를 내는 창법인 팔세토로 노래를 하는 가수들이 대신 쓰였다. 이들은 음역대의 신축성이나 노래하는 힘에서 한계가 있어 카스트라토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 있었다. 신을 찬양하는 도구로 인간이 표현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드린다는 의미는 합리적이지만, 신이 내린 인간의 신체 원형을 훼손하면서까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도덕적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그 문제를 넘어선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어린 시절 거세를 시키면 성인이 되면서 후두의 위치와 형태가 변하며 내려가는 울대뼈가 생기지 않아 남성이지만 여성과 같이 더욱 명료하고 화려한 음색을 더하며 배음을 가지는 데에도 유리했다고 한다.
카스트라토의 등장은 17세기 바로크 오페라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더욱 괄목할 일이 되었다. 보다 아름다운 카스트라토들의 노래가 공공의 무대에서 선보였을 때 대중들은 열광하고 적극적 반응들을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달랐지만, 호르몬의 영향으로 동안을 유지하고 수염 없이 깨끗한 피부를 보여 주었고, 어떤 가수들은 어린이처럼 성장판이 계속 열려 있어 뼈의 성장이 지속되며 긴 팔과 다리와 함께, 2m에 가까운 키를 보여주기도 했다. 게다가 지구력이 뛰어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데에도 능했다. 이런 점들은 대중들의 호기심을 넘어선 열풍으로 이어지며 음악 세계에 카스트라토라는 특별한 위치를 구축했다. 17세기 프랑스 음악가였던 모가르가 카스트라토의 공연보고 나서 쓴 편지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카스트라토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극음악 분야에서 이탈리아의 카스트라토들이 비교할 수도 모방할 수도 없는 경지에 올랐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노래를 정말 잘 부를 뿐 아니라 가사를 표현하는 방식이나 무대에서의 몸가짐, 몸놀림 등 극음악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모든 부분에서 탁월하다. 등장인물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내는 그들의 노래는 우리보다 훨씬 생동감이 넘치고, 목소리에서는 우리가 갖지 못한 유연함이 느껴진다. (<카스트라토의 역사> 2013, 일조각)”
카스트라토를 마치 다른 종족처럼 대하고 있는 듯한 태도는 경외감에 가깝다. 자연스럽게 바로크 시대의 작곡자들은 스타 카스트라토들을 주역으로 한 작품을 작곡하게 되는데, 우리가 바로크 시대의 거장으로 기억하고 있는 헨델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줄리오 체사레(Giulio Cesare)’, ‘세르세(Xerse)’, ‘알레산드로(Alessandro)’ 등 헨델의 많은 오페라 작품들이 카스트라토를 위해 작곡되었다. 그중 헨델을 유명 오페라 작곡가로 올려놓은 작품은 ‘울게 하소서(Lascia Ch’i pianga)’라는 아리아로 유명한 ‘리날도(Rinaldo)’였다. 아직 독일 오페라가 정격의 형식을 갖추지 못한 시기, 독일 출신의 헨델은 몇몇 오페라 작품을 작곡하며 오페라 세계로 발을 들이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유려한 작품들을 접하며 오페라 작곡에 더욱 눈을 열 수 있었던 그는 하노버의 음악 감독직을 지내며 대공 조지 1세를 만나게 된다. 조지 1세는 훗날 영국의 왕이 되며 헨델을 영국 귀족의 일원으로 초청하는데, 헨델이 독일에서 영국으로 삶의 거처를 이동하는 계기가 된다. 자연스럽게, 런던에서 처음으로 내놓게 된 오페라 ‘리날도’는 영어권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이탈리아어 작품이었음에도 큰 성공을 거두며 헨델을 오페라 작곡가로 자리매김하게 한 초석이 되었다. 다수의 등장인물들을 카스트라토로 기용했고, 다음 작품에도 많은 카스트라토들이 헨델의 오페라 무대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이 오페라는 첫 번째 십자군 원정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기사 리날도가 악한 마법사 아르미다에게 납치된 사랑하는 애인 알미레나를 구출하는 내용이다. 마술적, 초자연적 요소와 함께 사랑의 삼각관계, 전투와 각종 모험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바로크 시대의 무대 기계장치와 이탈리아 성악의 기교, 흥미로운 내용과 함께 카스트라토의 존재와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을 것이다. 1711년 초연 이후 헨델이 활동하던 1731년까지 공연이 되었으나, 다양한 오페라의 형식의 변화와 발전 속에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시 공연되지는 않았다. 바로크 시대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카스트라토들은 사회와 문화적 인식이 바뀌어 감에 따라 급속한 쇠퇴기를 맞이하게 된 것과도 닮아있는 작품이다.
인간의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이 만들어낸 독특한 가수의 지위는 사회적, 윤리적 이슈로 역사에만 존재하지만, 현대에 와서 작품이 재발견되고, 메조소프라노나 카운터 테너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며 관객들의 사랑과 관심을 다시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