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와 동생 테오의 관계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알테르 에고’로 이해할 수 있다. 동생 테오가 고흐의 알테르 에고라는 사실은 형제가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잘 알려졌다. 하지만 회화 작품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여기 소개하는 ‘헤이그 근처 라크몰렌’은 고흐가 테오를 알테르 에고로 생각했다는 하나의 예가 된다.
총에 맞아 죽음을 기다리는 고흐를 껴안아준 ‘알테르 에고'
반 고흐, 「헤이그 근처 라크몰렌」(1882)

라틴어 ‘알테르 에고(alter ego)’는 ‘또 다른 자아’를 뜻하는데 흔히 ‘분신’, ‘또 하나의 나’, ‘제2의 자아’ 등으로 번역된다. 심리학에서 알테르 에고는 숨겨두거나 억압해온 욕망이나 감정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위험한 행동을 거침없이 하도록 한다. 만일 자신에게 알테르 에고가 있다면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능력이나 성격적 특성의 반영일 수도 있지만, 억압하고 있는 자신의 욕망일 수도 있다. 알테르 에고를 이해한다면 자신의 부족한 면을 인식하고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된다.

‘헤이그’에 나타난 고흐의 알테르 에고

고흐의 알테르 에고를 알 수 있는 이 작품은 헤이그 근처 레이즈베이크 지역의 농가와 풍차, 그리고 작은 밭 등의 농경과 함께 과거 동생과 함께했던 추억이 담겼다. 그려진 시기는 고흐가 헤이그의 구필 화랑에 취직한 후 3년이 지난 1882년 늦여름이다. 예전에는 1881년 에텐 시절에 제작됐다는 가설이 있었지만 방앗간이 확인되면서 제작 연대가 이듬해로 추정되고 있다. 작품에 묘사된 풍차와 방앗간은 당시 산업의 정도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지만 이 그림의 진가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형제가 서로 주고받던 편지에서 시엔에 대한 사랑과 테오의 반대가 첨예했던 상황에서 이 그림이 탄생했다.

이 그림에는 울타리로 가로막힌 길, 왼쪽에 있는 헛간과 그 위로 날고 있는 새, 그리고 사다리처럼 보이는 풍차의 날개와 함께 총 네 명의 인물들이 나온다. 문 앞에 서 있는 한 여인과 방앗간 옆으로 걸어가는 한 사람은 간략하게 묘사되었다. 하지만 이 여인은 또 다른 두 남자를 주목하고 있다. 두 남자에게 집중하는 여자의 모습은 관람자로 하여금 주의를 끄는 효과를 준다. 고흐는 두 남자에 대한 특이한 묘사를 통해 메시지를 주려는 게 분명하다.

두 남자 중에서 오른쪽은 푸른색의 차림으로 말라 보이지만, 똑바로 서 있고 차분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반면 왼쪽은 구부정한 자세로 뭔가를 거칠게 말하는 듯한 모습이다. 서로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은 상대방의 다리나 발에 거의 닿을 듯하다. 고흐는 이즈음에 쓴 편지에서, “나는 네가 너무나 그립다. 지금 나는 교감과 따뜻함이 절박하단다”라고 말하며 테오를 너무나 그리워했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이 두 남자가 누구인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 구부정한 사람은 고흐 자신이며, 말쑥한 차림의 사람은 테오다.
총에 맞아 죽음을 기다리는 고흐를 껴안아준 ‘알테르 에고'
반 고흐, 「모래 언덕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여인들」(1882년)
총에 맞아 죽음을 기다리는 고흐를 껴안아준 ‘알테르 에고'
반 고흐, 「잘려진 버드나무」(1882년)

알테르 에고와의 화해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고흐의 전기 작가들의 큰 관심사였다. 고흐가 테오와 가장 친밀했다고 언급하는 시기는 1872년으로, 그해 9월부터 편지 교환이 시작됐다. 어른이 된 이후의 편지 여러 곳에서도 이 시기가 형제의 정서적 지지와 상호의존이 깊었다고 말한다. 고흐는 당시 19세로 헤이그에 있는 화랑에서 이미 3년 동안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네 살 어린 테오는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외로움에 빠져 살았던 고흐를 찾아왔다.

십 대의 형제는 가랑비를 맞으며 운하를 따라 이 그림에 나타나는 방앗간까지 산책했고 함께 우유를 마셨다. 고흐는 테오와 함께 있을 때 정서적 안정을 얻었다. 하늘은 잿빛에 물든 채 어두웠지만, 동생과의 만남은 고흐에게 힘으로 빛나게 했다. 그런 힘을 주는 사람은 테오만이 유일했다. 이후 고흐가 편지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이 이 산책에서 두 사람 모두 화가의 길을 걸을 것과 서로 큰 힘이 되어줄 것을 다짐했다.

그때는 꿈이 일치할 정도로 서로를 깊게 이해하던 시기였다. 고흐는 그 추억이 깃들어 있는 풍차를 그림에 담고 있다. 고흐는 10년 전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끼며 풍차 주위를 걸었던 그 시절이 그리웠던 것이다. 지금 시엔과의 동거에 대한 동생과의 견해 차이로 사이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고흐는 용기를 내서 테오에게 만나자고 제안하는 편지를 썼다. 한 달 후에 테오는 형을 방문하였고 그때 분명 고흐의 이 그림을 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흐는 동생이자 정신적, 경제적 후원자인 테오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동생 덕분에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또한 테오에게도 형은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 고흐와 테오는 평생 서로 받은 사랑과 지지를 잊지 않았다. 테오는 고흐를 지탱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며, 고흐 역시 테오의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지대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단순한 형제 이상의 각별한 관계를 보여준다.

그림에 묘사된 두 남자를 토대로 고흐와 테오의 관계를 알테르 에고로 이해한다면 단순히 영혼의 유대가 ‘깊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감이 있다. 두 남자는 서로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다리가 서로 닿아 있다는 점에 주의하자. 이것은 비록 고흐와 테오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영혼은 서로에게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알테르 에고는 잘 인식되지 않는 무의식적인 영역으로, 자아나 초자아와는 다른 영역이다. 우리의 인식이나 판단력으로는 인식될 수 없는 감정, 욕구, 의견 등을 지원하면서 서로 무의식적으로 더욱 가까워지며, 신뢰와 존경이 깊어진다. 알테르 에고로부터 영향을 받는 정서적 반응은 서로를 지탱하고 친밀감을 더욱 강화시켜 결국 둘 다 성숙하게 된다.

알테르 에고에서 나타나는 상호 정서적 반응은 1890년 7월 고흐가 권총에 맞아 사망하기까지 계속되었다. 형의 죽음 이후 정신적 충격에 빠졌던 테오는 시름시름 앓더니 고흐가 죽은 지 6개월 후인 1891년 1월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지금 테오는 또 하나의 나, 알테르 에고라고 속삭이듯이 고흐의 바로 옆자리에 머리를 맞대고 뉘어 있다.

영원한 고흐의 알테르 에고

동생은 형이 죽는 순간을 지키려고 형의 침대에 바짝 다가가 앉았다. 창밖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었지만 형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둘의 시선은 오로지 서로를 향해 있었다. 형제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열두 시간 동안 함께했다. 고흐가 숨을 쉬는 것이 힘들어지자 테오는 침대 위로 올라가 두 팔로 형을 안았다.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고흐는 고통스러워했다.

형의 몸은 무거워지고 눈은 감겨 가고 살갗은 차가워졌다.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비록 짧은 세월이었지만 예술적 열정으로 형은 참으로 꿋꿋하게 살아왔다. 고흐는 테오 덕에 세상을 떠날 용기가 났다. 자신을 안고 있는 테오의 팔과 가슴이 유난히 듬직했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순간이다. 고흐는 마지막 숨을 편안하게 거두었다.

테오가 짐을 정리하다 형의 마지막 편지가 발견되었다. 편지 내용은 이렇다.
사랑하는 동생아, 나는 네가 단지 그림만 파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는 오직 나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거야. 설령 최악의 상황이 된다 해도 우리의 그림은 남겠지. 그래, 우리 그림들. 나는 이 일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그것 때문에 반미치광이로 살았다. 그런데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아. 하지만 내가 아는 한 너는 절대 사람을 사고파는 장사꾼은 아니었어.
분명 단지 돈을 버는 일이 테오를 기쁘게 하지 않았으리라. 고흐는 마지못해 장사하는 테오에게 당부한다. 자신들의 꿈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고. 또한 테오가 그림 장사를 하며 적어도 사람 자체를 사고팔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용기를 북돋고 있다. 알테르 에고가 귀한 것은 궁핍한 중에도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하지 못하게 막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알테르 에고가, 꿈을 접어둔 채 생계를 위해 장사를 하거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어가는 극한 순간에까지 이렇듯 큰 힘이 된다면, 한 번뿐인 인생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을 것 같다. 함석헌 선생님의 시 ‘이런 친구를 너는 가졌는가?’가 떠오른다.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야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방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생각해 보자. 그대는 고흐처럼 그대의 알테르 에고를 가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