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만 4천곳 있지만 이용 저조…"주거 개선 병행해야"
"가까워도 걷기 힘들고 눈치보여"…제역할 못하는 무더위쉼터
3일 낮 12시30분께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길가.

나란히 앉은 주민 10여명은 흐르는 땀을 닦아내기 바빴다.

서울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기록하며 올해 중 가장 뜨거웠던 이날 쪽방촌 주민들은 걸어서 1분 거리인 '무더위 쉼터'가 아닌 자신이 사는 곳 바로 앞 길가에서 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곳 주민 김은곤(87)씨는 한 손에 지팡이를 쥔 채 다른 손으로는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그는 왜 무더위 쉼터에 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아도 다리가 아파 가지 못한다"고 했다.

무릎이 성치 않아 거동이 불편하다는 김씨는 "하루 종일 선풍기를 쐬다가 너무 더워서 밖으로 나왔다"며 "집 앞까지도 간신히 나왔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올여름 폭염이 예상되자 냉방 시설을 갖춘 주민센터·경로당·은행 등 시설을 무더위 쉼터로 지정해 폭염 취약계층이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재난안전포털 홈페이지에 따르면 전국에 지정된 무더위 쉼터는 6만여곳. 서울에만 4천106곳이 무더위 쉼터로 지정돼있다.

"가까워도 걷기 힘들고 눈치보여"…제역할 못하는 무더위쉼터
그러나 김씨처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무더위 쉼터가 가까운 거리에 있더라도 이곳에 갈 형편이 되지 않아 사실상 이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이날 오후 2시30분께 무더위 쉼터로 운영되는 서울역 쪽방 상담소에는 노인이 아닌 관계자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상담소 관계자는 "쪽방촌 주민분들이 별로 안 오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특히 날이 더우면 오기가 힘들어서인지 더 사람이 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꼭 거동이 불편하지 않더라도 무더위 쉼터 이용 자체를 꺼리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동자동 쪽방촌 주민 박모(48)씨는 "무더위 쉼터가 운영되는 걸 알고는 있지만 가지 않는다"고 했다.

박씨는 "옆에서 일하는데 나는 거기서 에어컨 바람 쐬고 앉아있으면 마음이 불편하지 않겠나.

옆에 가면 냄새도 날 것 같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그냥 밖에 나와 얼음물을 마시거나 선풍기를 틀어놓는데 뜨거운 바람만 나오니 더위를 피하긴 어렵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취약계층이 신체적·심리적 이유로 무더위 쉼터를 편리하게 이용하기 어려운 만큼 다른 근본적인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교수는 "신체 이동에 어려움이 있는 분들은 대체로 빈곤을 겪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등 다양한 위험이 중첩된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다"며 "(더위를 해소할) 여러 자원으로부터 멀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학복지학과 교수도 "무더위 쉼터 대부분이 노인복지관 등 기존 시설을 개방해 사용하는데 기존 이용자들이 있기 때문에 더위를 피하기 위해 찾아간 이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무더위 쉼터뿐 아니라 정부가 전기 또는 가스 요금 일부를 직접 보조하는 '에너지 바우처' 제도 역시 쪽방촌 주민 등 취약계층에는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쪽방촌의 경우 선풍기를 아무리 틀어도 시원해지지 않는다"며 "이처럼 물리적 주거 조건 자체가 굉장히 열악한 경우에는 최소 주거 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환경 자체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