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은 놔두고 카놀리는 가져와"-시칠리아 기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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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지중배의 삶의 마리아주-맛있는 음악
“친구는 가까이 두어라. 그러나 적은 더 가까이 두어라.”피아니스트 백건우 선생님의 영화에 대한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몇해 전 연주를 마치고 독일 베를린의 한 식당에서 늦은 저녁시간에 백건우 선생님과 음악이 아닌 ‘영화’에 관한 시간가는 줄 모르는 이야기를 하였었다. 나긋나긋한 음성이지만 영화 이야기를 하실 때의 그 반짝이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속담처럼 너무나도 유명한 이 말은 나의 인생영화 중 하나인 ‘대부2’에 나오는 마이클 콜레오네(알 파치노 분)의 대사이다. ‘좋아하는 영화의 명대사를 말해주세요’ 라고 누군가가 물어보면 바로 떠오르는 대사 중 하나이다.
선생님처럼 나도 어렸을 적부터 영화와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했다. 영화를 볼 때면 잠시나마 그 세상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고, 좀더 나이가 차고 삶의 경험이 생기면서는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그들의 연기 그리고 감독들이 만들어내는 연출에 더 눈이 가기도 했다. 영화를 통해 얻어진 감정과 장면들은 연주를 하는 데 많은 상상력과 영감을 주었다. 영화 ‘대부’ 시리즈가 그러한 영감을 주는 영화중 하나다.
영화 ‘대부’
영화의 배경은 미국의 뉴욕이지만 실질적으로 영화에 나오는 문화, 인물 그리고 삶의 뿌리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있다. 마피아 관련 영화 등으로 인해 시칠리아 하면 첫 번째로 마피아 본거지라는 인식이 아쉽게도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사실 시칠리아는 어느 곳의 역사보다 버라이어티한 시간을 보냈고, 또한 그곳의 문화는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와 있다. 기원전 8세기 고대 그리스 식민지로 역사에 등장한 시칠리아섬은 2800여년동안 한번도 편한 순간을 보내지 못하였다. 고대 그리스 이후 한니발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로마가 점령했으며, 기원 후에는 아랍인들의 통치를 받았다.
그 뒤 노르만인의 통치, 스페인의 통치, 오스트리아의 통치, 다시 스페인의 통치를 받고 19세기말부터 이탈리아 왕국의 통치를 받았다. 수백, 수천년동안 이어진 다양한 민족의 지배로부터 남은 것은 다양한 문화와 역사가 혼합되어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만들어진 시칠리아만의 삶이다. 특히 음식에 있어서 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매우 다양하고 스토리가 있는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처음 받아들인 이탈리아 음식 혹은 미국식 이탈리아 음식들이 대부분 시칠리아 음식문화에서 비롯되었다.
시칠리아 사람들의 삶은 계속 바뀌는 지배층의 변화에 매우 힘들었다. 민족이, 한 무리가 삶의 터전, 자라온 땅을 떠나는 이유는 그 땅에서의 삶이 힘들어서다. 특히 19세기 말 여러 이유로 시칠리아의 삶이 어려워진 그들은 그 땅을 떠나 미국으로 혹은 다른 나라들로 이주하였다. 최근들어 매우 다양해졌지만 한국에서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한 이탈리아 음식들의 대부분은 시칠리안 디아스포라가 만든 음식들이었다.
음악을 좋아했던, 그리고 지휘자의 꿈을 꾸던 10대 초반의 나는 시칠리아의 풍경과 시골마을 시칠리아인들의 어려웠던 시절의 삶을 한 비디오에서 처음 만났다. 영화로 만들어진 프랑코 제피렐리가 연출한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였다. 영화(오페라)속에서 마스카니의 음악과 어우러진 이국적인 마을 모습과 풍광, 예수상과 성모상을 어깨에 짊어지고 온 마을에서 진행되는 사순시기의 카니발 행렬 모습 등이 당시의 나에게는 너무나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시칠리아의 사순시기 이야기를 꺼내다보니 시칠리아의 전통적인 디저트가 생각난다. 시칠리아는 9세기경 아랍인들이 지배할 때 다른 어느 서유럽 지역보다 아랍 사탕 제조자들에 의해 일찍이 사탕과 페이스트리를 생산했다. 아랍인이 물러가고 카톨릭 교회문화로 들어와서도 시칠리아의 많은 수도원들은 사탕과 페이스트리 등을 생산하였다.
그 영향 중 하나로 사순시기 카니발 축제시 풍작과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로 먹기 시작한 ‘카놀리(Cannoli)’가 있다. 아랍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향식료가 들어간 반죽을 원통 모양으로 튀겨 만들고, 속에 리코타 치즈 혹은 크림이나 기타 당류를 채워 견과류 등의 토핑을 올려 먹는(전통적으로는 피스타치오 토핑을 뿌린다) 카놀리는 이제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진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음식(디저트)이다.
다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이야기로 돌아가서 오페라가 막바지로 흐르는 시점, 주인공 남녀의 폭주에 가까운 격정적인 싸움과 저주 그리고 복수와 죽음을 바라보는 그 사이에 너무나도 서정적이고 편안한 간주곡(Intermezzo)이 흐른다. 이 오페라를 모르더라도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이 4분여의 음악은, 오페라를 보고 있자면 폭풍 전의 고요함 혹은 앞으로 다가올 죽음의 비극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가지게끔 한다.
카놀리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나의 인생영화 대부 시리즈의 마지막, ‘대부3’의 마지막 장면은 내 가슴 속에 기억하는 최고의 라스트 신이다. 어둠의 대부 마이클의 아들은 마피아의 길을 가지 않고 성악가의 길을 걷는다. 시칠리아의 한 오페라극장에서 아들의 첫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공연을 보고 마이클은 가족들과 웃으며 공연장을 나선다. 그 순간 마이클에 대한 암살이 시도되며 대신 마피아의 패권 다툼과 아무 관계 없는, 그의 가장 사랑하는 딸이 죽게 된다. 마이클이 처절하게 오열하는 장면부터 흐르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 평생을 가족을 위해 마피아를 그만둘수 없다는 마이클은 정작 그로 인해 가족들은 고통을 겪어야 했고 소중한 딸까지 잃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이 계속 흐르며 마피아로서 냉혈하고 잔인한 인생 속에서 몇 안되는 그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회상되고 어느덧 노인이 되어 마당에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이 비춰진다. 간주곡이 끝나는 순간 마피아로 살아왔던 그 시간을 뒤로한 채 조용히 쓸쓸하게 숨을 거둔다. 시칠리아를 무대로 일어나는 영화 대부 시리즈와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만남은 필연적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너무나도 시칠리아적인 영화. 문득 대부1에서 클레멘자가 파울리를 암살시키고 덤덤하게 떠나며 나오는 대사가 떠오른다.
‘총은 놔두고 카놀리는 가져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