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현실과 이상을 오가는 당신에게 필요한 한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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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장준우의 씨네마 브런치
<빅 나이트>(1997)
<빅 나이트>(1997)
성공이란 무엇일까. 저마다 정의는 다르겠지만 성공이란 적어도 목표 달성 같은 일시적인 게 아니라 지속되는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임을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며 깨닫는 중이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삶은 성공의 여러 모습 중 하나다. 단지 하고 싶은 일만 해선 충분치 않다.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쏟아낸 만큼 보상이 돌아오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삶이야말로 성공이란 수식어가 어울린다.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해보니 잘 맞지 않거나 오래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예상외로 치러야 할 대가가 클 수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잘 풀리지 않을 수 있다. 꿈꾸는 삶과 실제의 삶은 언제나 같은 극의 자석처럼 서로를 밀어낸다. 인생은 단순하지 않기에 늘 현실과 이상 사이를 수 없이 오가며 방황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다. 여기 이탈리아 식당을 운영하는 두 형제가 있다. 어렵사리 미국에 정착한 이탈리안 형제는 미국인들에게 진짜 이탈리아의 맛을 보여주면 언젠가 부와 명예를 얻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파라다이스’라는 식당을 연다. 주방을 책임지는 형 프리모와 홀과 운영을 책임지는 동생 세콘도는 가게 형편이 어려워지자 사사건건 부딪힌다. 원활한 운영을 위해 맛과 서비스를 손님에게 맞추자는 동생과 맛과 신념에 있어 타협하지 않는 형. 동생은 형의 예술가적 기질을 이해하지만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하면 식당을 은행에 빼앗길 판국이다.
어느 날 리조토를 시킨 손님이 스파게티도 주문하려 하자 형은 교양 없는 범죄자 취급을 하며 질색한다. ‘안티파스티(전채 요리)’, ‘프리모(주로 탄수화물)’, ‘세콘도(주로 육류)’, ‘돌체(디저트)’ 순서인 정통 이탈리아 요리 코스에서 리조토와 스파게티는 둘 다 ‘프리모’에 속하니 이탈리아인 입장에선 황당한 주문이기 때문이다. 주문을 받은 동생도 당혹스러운 건 마찬가지지만 한 명이라도 아쉬워 그냥 손님이 원하는데 해줘 버리자고 한다. 그러나 형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신념에 반하는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형제는 이상과 현실을 대변하는 존재다. 분명 지향하는 바는 ‘식당의 성공’이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지만 방법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실제 현실에서 이런 경우 제삼자가 조언을 한다면 대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하고 싶어 하는 게 있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그걸 하려면 돈을 벌어야 해. 일단 돈부터 벌고 나서 그때 하고 싶은 걸 해.” 상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조언처럼 들린다. 극 중에서 성공한 미국식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파스칼이 두 형제에게 한 말이기도 하다.
실리를 추구하는 동생에겐 분명 일리 있는 조언이겠지만 형과 같은 마음으로 일을 하는 이들에겐 터무니없는 조언에 불과하다. 후반부에 형은 울부짖으며 동생에게 이야기한다. “내 일을 희생한다는 건 그 일을 죽이는 거야. 그러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나아.” 동생에겐 아집처럼 보일지 몰라도 형에게 있어 타협이란 곧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무게감을 지니는 일종의 사형선고와 다름이 없는 셈이다. 현실에 철저하게 타협한 파스칼의 레스토랑을 혐오하는 형으로썬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여차저차 파스칼의 도움으로 식당에 유명 가수를 초대해 재기를 노려보기로 한 두 형제는 마지막 남은 영혼과 통장 잔고를 끌어모아 성대한 저녁을 준비한다. 형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요리를 마음껏 하며 열정을 불사르고 초대된 사람들은 잊지 못할 감동을 느끼며 잘 마무리되는가 싶지,만 두 형제의 앞에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영화의 반전 포인트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던 두 형제는 과연 그날을 계기로 재기에 성공했을까, 아니면 처절하게 실패하고 이탈리아로 돌아갔을까. 영화는 그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다. 현실과 이상 그 둘 어느 걸 선택하든 그것이 반드시 옳은 정답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다 선택하지 못하면 그 끝엔 비극이 있을 뿐이라는 걸 암시하는 것일까.
해석을 각자의 몫으로 넘기는 듯 이야기를 마무리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하고자 하는 말을 진작에 눈치챘을 것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형이 준비한 회심의 저녁을 먹은 사람들은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며 감격해한다. 요리사로서 지킨 신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고, 그러한 신념이 있었기에 감동스러운 시간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동생조차 그 순간만큼은 현실의 온갖 어려움은 잊은 채 함께 황홀경에 빠진다. 그날 저녁에 참석한 이들의 표정이 말해 준다. 형의 신념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라는 걸.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해보니 잘 맞지 않거나 오래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예상외로 치러야 할 대가가 클 수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잘 풀리지 않을 수 있다. 꿈꾸는 삶과 실제의 삶은 언제나 같은 극의 자석처럼 서로를 밀어낸다. 인생은 단순하지 않기에 늘 현실과 이상 사이를 수 없이 오가며 방황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다. 여기 이탈리아 식당을 운영하는 두 형제가 있다. 어렵사리 미국에 정착한 이탈리안 형제는 미국인들에게 진짜 이탈리아의 맛을 보여주면 언젠가 부와 명예를 얻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파라다이스’라는 식당을 연다. 주방을 책임지는 형 프리모와 홀과 운영을 책임지는 동생 세콘도는 가게 형편이 어려워지자 사사건건 부딪힌다. 원활한 운영을 위해 맛과 서비스를 손님에게 맞추자는 동생과 맛과 신념에 있어 타협하지 않는 형. 동생은 형의 예술가적 기질을 이해하지만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하면 식당을 은행에 빼앗길 판국이다.
어느 날 리조토를 시킨 손님이 스파게티도 주문하려 하자 형은 교양 없는 범죄자 취급을 하며 질색한다. ‘안티파스티(전채 요리)’, ‘프리모(주로 탄수화물)’, ‘세콘도(주로 육류)’, ‘돌체(디저트)’ 순서인 정통 이탈리아 요리 코스에서 리조토와 스파게티는 둘 다 ‘프리모’에 속하니 이탈리아인 입장에선 황당한 주문이기 때문이다. 주문을 받은 동생도 당혹스러운 건 마찬가지지만 한 명이라도 아쉬워 그냥 손님이 원하는데 해줘 버리자고 한다. 그러나 형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신념에 반하는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형제는 이상과 현실을 대변하는 존재다. 분명 지향하는 바는 ‘식당의 성공’이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지만 방법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실제 현실에서 이런 경우 제삼자가 조언을 한다면 대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하고 싶어 하는 게 있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그걸 하려면 돈을 벌어야 해. 일단 돈부터 벌고 나서 그때 하고 싶은 걸 해.” 상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조언처럼 들린다. 극 중에서 성공한 미국식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파스칼이 두 형제에게 한 말이기도 하다.
실리를 추구하는 동생에겐 분명 일리 있는 조언이겠지만 형과 같은 마음으로 일을 하는 이들에겐 터무니없는 조언에 불과하다. 후반부에 형은 울부짖으며 동생에게 이야기한다. “내 일을 희생한다는 건 그 일을 죽이는 거야. 그러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나아.” 동생에겐 아집처럼 보일지 몰라도 형에게 있어 타협이란 곧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무게감을 지니는 일종의 사형선고와 다름이 없는 셈이다. 현실에 철저하게 타협한 파스칼의 레스토랑을 혐오하는 형으로썬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여차저차 파스칼의 도움으로 식당에 유명 가수를 초대해 재기를 노려보기로 한 두 형제는 마지막 남은 영혼과 통장 잔고를 끌어모아 성대한 저녁을 준비한다. 형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요리를 마음껏 하며 열정을 불사르고 초대된 사람들은 잊지 못할 감동을 느끼며 잘 마무리되는가 싶지,만 두 형제의 앞에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영화의 반전 포인트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던 두 형제는 과연 그날을 계기로 재기에 성공했을까, 아니면 처절하게 실패하고 이탈리아로 돌아갔을까. 영화는 그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다. 현실과 이상 그 둘 어느 걸 선택하든 그것이 반드시 옳은 정답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다 선택하지 못하면 그 끝엔 비극이 있을 뿐이라는 걸 암시하는 것일까.
해석을 각자의 몫으로 넘기는 듯 이야기를 마무리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하고자 하는 말을 진작에 눈치챘을 것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형이 준비한 회심의 저녁을 먹은 사람들은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며 감격해한다. 요리사로서 지킨 신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고, 그러한 신념이 있었기에 감동스러운 시간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동생조차 그 순간만큼은 현실의 온갖 어려움은 잊은 채 함께 황홀경에 빠진다. 그날 저녁에 참석한 이들의 표정이 말해 준다. 형의 신념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