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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떼 칼럼] 대사를 못 외우고 무대에 오른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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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용진 뮤지컬 배우 겸 연출가
    [아르떼 칼럼] 대사를 못 외우고 무대에 오른 배우
    뮤지컬 ‘호프’ 공연을 마치고 잠깐 여유가 생겨서 영국 런던에서 연극을 봤다. 셰익스피어의 초기 희곡인 ‘더 코미디 오브 에러(The Comedy of Errors·실수 연발)’. 슬랩스틱 코미디의 원류로 여겨지는 이 작품은 어릴 때 사고로 헤어진 쌍둥이 형제가 성인이 돼 재회하면서 꼭 닮은 외모로 생긴 오해와 사건들로 인해 웃음을 유발하는 작품이다.

    극단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배우 한 명이 부상을 당해 다른 배우가 대본을 보며 연기를 대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대본을 보고 한다고 해도 그것이 가능할까 싶었다. 대본을 보고 한다면 어떤 형식으로 할지도 무척 궁금해졌다.

    부상당한 배우를 대신한 대역

    만약 ‘내게 그런 제안이 온다면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도 해봤다. 공연이 시작하고 잠시 대역 배우가 나오리라는 것도 잊은 채 공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얼마 후, 검은 티셔츠에 검은 바지 그리고 검은색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은 배우가 커다란 검은색 파일에 담긴 대본을 들고 등장했다. 대본을 보며 연기하기는 했지만, 모든 동선과 몸으로 하는 슬랩스틱 코미디까지 참여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대본에는 색색의 형광펜으로 줄이 그어져 있었다.

    사실 대본을 보며 연기하기가 더 어렵다. 그런데도 그는 최선을 다해 역할의 정서와 움직임 모두 잘 표현했다. 대본을 보고는 있었지만 작은 리액션도 놓치지 않았고, 상대 배우들 역시 그의 연기에 더 집중해 연기하고 있었다.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관객들은 더 집중하며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그가 분장하고 의상을 입었을 때의 모습이 상상되면서 색다른 즐거움이 더해졌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연기와 공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인간의 행동은 일반적으로 ‘자극-충동-행동’ 순으로 이뤄진다. 배가 고프다는 자극이 오면 무언가 먹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나고 냉장고 문을 열어보는 행동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행동을 배우가 연기하기 위해서는 배가 고플 때까지 기다렸다가 연기해야 흔히 말하는 진실한 연기가 되는 것일까?

    상상력의 에너지 폭발한 무대

    아니다. 배우가 이런 자극과 충동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상상력’이라는 선행 과정이 필요하다. 배우 훈련의 대부분은 상상력을 통해 자극에 의한 충동을 만들어내고 그 충동으로 인해 자연스러운 행동이 나오도록 하는 데 있다. 이날 배우들은 상상력 가득한 연기를 보여줬다. 상대 배우가 대본을 들고 있음에도, 본인이 대본을 보며 연기를 함에도 상상력을 통해 서로 역할로서 만나고 연기하는 모습이었다.

    무대라는 공간은 늘 상상과 은유가 가득한 곳이어야 한다고 믿으며 지금도 공연을 하고 있다. 그곳은 배우와 관객이 함께 상상하면서 거대한 상상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그 상상의 에너지들이 모여 폭발하는 힘을 지닐 때, 그 공연은 좋은 공연으로 기억된다. 스태프는 배우와 관객들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무대를 각자의 상상을 통해 만들어 내고, 그 무대 위를 배우와 관객의 상상력으로 채우며 공연을 완성하는 것이다. 부상당한 배우의 빠른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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