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쓴 디지털 클론 이야기
영생하는 디지털 도플갱어의 시대…신간 '두 번째 인류'
"엄마, 엄마, 엄마 어디 있었어?"
아이가 물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터뜨렸다.

딸을 안으려 했지만, 손은 허공을 가로지를 뿐이었다.

장난스럽고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닌 아이, 나연. 평소에 잘 입던 보라색 옷을 입고, 어깨 길이의 머리를 한 나연이는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진 아바타였다.

가상현실(VR) 안경을 쓴 엄마 지성 씨는 계속해서 나연이를 안아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엄마, 나연이 안아보고 싶어. 한 번만 만져보고 싶어." 지성 씨는 흐느끼며 말했다.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에 나오는 장면이다.

난치병으로 수년 전 세상을 떠난 아이를 가상현실 속에서 만나는 엄마 지성 씨의 모습을 담았다.

한 가상현실 콘텐츠 기업이 가족이 찍어둔 동영상에서 추출한 나연이의 얼굴과 몸, 목소리를 가상공간에서 재현했다.

성격을 분석하기 위해 테라바이트 규모의 영상과 사진을 분석했다고 한다.

독일 다큐멘터리 감독 한스 블록과 모리츠 리제비크는 신간 '두 번째 인류'(흐름출판)에서 "소녀의 생전 모습을 재현한 시뮬레이션은 수십 년 전에 SF나 사이버펑크 작품에서 시작된 판타지가 앞으로는 점점 우리의 삶을 결정하고 '인간다움'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으리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낯설고 기이한 증거"라고 말한다.

영생하는 디지털 도플갱어의 시대…신간 '두 번째 인류'
책은 디지털 영생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진시황이나 길가메시처럼 자신의 영생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떠난 자를 그리워하는 이들, 유족들의 이야기다.

제임스의 아버지 존은 암이 전신으로 퍼졌다.

폐에서 시작해 뼈, 간, 뇌까지 암세포가 침범했다.

치료를 시작했지만, 완치될 가능성은 없었다.

제임스는 아버지를 영원히 기억하고자 하나의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대드봇' 프로젝트다.

그는 아버지와 10여 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다.

평상시 흥얼거리는 노래, 좋아하는 것들, 평소 생각 등을 녹음했다.

이를 토대로 203쪽 분량의 서류에 9만1천970단어를 기록했다.

그는 녹음한 자료와 서류를 활용해 인공지능 알고리즘인 '대드봇'을 만들었다.

1년이 지나지 않아 존이 죽자, 그는 대드봇과 대화를 나누며 아버지의 자취를 느꼈다.

제임스의 어머니도 대드봇과 대화를 시작했다.

질문이 이어질수록 대화의 완성도는 올라갔다.

제임스의 어머니는 남편이 그리울 때마다 대드봇과 이야기하며 위로를 얻었다.

그러나 제임스의 누나는 아버지 임종 후 수년이 흘러도 대드봇과 대화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영생하는 디지털 도플갱어의 시대…신간 '두 번째 인류'
책은 '우주 소년 아톰' 같은 만화나 '블랙 미러' 같은 드라마에서 창조한 디지털 영생 세계관에서 시작해 관련 기술과 산업의 발전까지를 다뤘다.

만화적 상상력에서 시작된 디지털 영생 기술은 이제 빅데이터를 가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등 대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디지털 클론'(복제인간)을 구현해낼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이제 기술은 갖춰졌다.

문제는 디지털 영생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죽음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숨과 영혼을 같은 단어로 불렀다.

'프시케'다.

숨을 쉬지 않는 대드봇, 나연이의 영상은 과연 죽은 이의 영혼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영원히 산다는 건, 영원히 기억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보고 대화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에서처럼 햇살 속에, 나뭇잎 사이에, 바람결 속에서 죽은 이의 존재를 추억하는 것일까.

책은 그런 영생과 죽음에 관해 질문한다.

강민경 옮김. 400쪽.
영생하는 디지털 도플갱어의 시대…신간 '두 번째 인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