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 사우나에서 팔며 시작…건강상 이유로 이달까지만 영업
전주 명물 '당근김밥' 영업종료…전국각지 손님들 5시간씩 긴 줄
"입안 가득 퍼지는 달짝지근한 맛이 좋아서 자주 찾아왔는데, 이제 영영 못 먹는다니 너무 아쉽네요.

"
전북 전주의 명물 '오선모옛날김밥'이 오는 30일 영업을 종료한다.

40년간 가게를 운영해온 오선모 사장이 허리 협착증과 관절 통증 등 건강상의 이유로 더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주황빛 당근으로 꽉 찬 오선모옛날김밥을 더 이상 먹지 못한다는 소식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한 달 전부터 김밥집 골목 앞은 영업시간인 오전 5시가 되기 전부터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영업 종료 3일 전인 28일에도 손님들 수십 명이 4시간 넘게 김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원에서 오전 3시께 출발해 6시 30분께 도착했다는 최수현(31)씨는 "꼭 한번 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와 함께 먼 길을 왔다"고 말했다.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에 거주하는 이다솜(29)씨도 "평소엔 30분만 기다리면 먹을 수 있었는데 오늘은 오전 8시부터 4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다"며 "평소에도 정말 좋아하던 곳이라 문 닫기 전에 꼭 와보고 싶었다"고 아쉬워했다.

두 사람 모두 정오가 넘어서야 김밥 10줄을 손에 들었다.

지친 기색이었지만 몇 시간씩 기다린 끝에 대면한 김밥이 감격스러운지 김밥집 간판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남긴 뒤에야 골목을 떠났다.

수 시간을 기다린 손님들은 김밥을 마는 사장을 향해 '건강하셨으면 좋겠다'며 응원을 건네고 김밥집을 떠났다.

'가끔 먹고 싶을 것 같은데 어떡하냐', '사장님 집에 가서 김밥을 먹으면 안되냐'며 애정 어린 투정을 부리는 손님들도 있었다.

대기에만 수 시간이 걸리면서 중고 애플리케이션에 '김밥 2줄을 3만원에 사겠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가게 벽면 곳곳에는 김밥을 재판매할 경우 불법이라는 완산구청의 경고장이 붙어있었다.

전주 명물 '당근김밥' 영업종료…전국각지 손님들 5시간씩 긴 줄
오선모김밥의 역사는 40여년 전으로 올라간다.

오선모 씨는 정성스레 싼 김밥을 아이스박스에 담아 사우나나 남부시장 등을 돌며 팔았다.

이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상산고등학교 주변에서 김밥을 팔다가 2015년께 한 방송에 간판도 없는 주택가 김밥집으로 소개되면서 전국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 뒤 현재 위치인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의 한 골목길에 식당을 내고 오 씨가 그의 자녀와 함께 영업을 이어왔다.

햄이나 맛살 같은 재료 없이 당근과 계란, 단무지로만 맛을 낸 이 김밥은 지역 명물이 됐다.

전주 시내에 당근을 주재료로 한 김밥집이 우후죽순 생기기까지 했다.

"상표를 팔라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왜 팔지 않느냐", "체인점을 내시는 건 어떠냐"는 손님들의 질문에 사장은 "그런 사람들이 100명도 넘게 있었다"며 "너무 지쳤다, 오늘도 김밥 마느라 힘들어서 더 이상 대답을 못 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대신 작은 가게 한 쪽에 손 글씨로 쓴 "그동안 전국에서 멀리까지 찾아주시고 너무 많은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이상 영업 운영이 어려워 대단히 죄송합니다"라는 안내문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10년 넘게 이 가게의 단골이던 전양수(51)씨는 "인근에서 펜션을 해서 숙박객들한테 전주 맛집으로 자주 추천했는데, 당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맛있다면서 참 좋아했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단체 주문이 있는 날이면 자정부터 나와서 하루 종일 김밥을 마느라 사장님이 손목이 아프다는 소리를 자주 했었다"며 "문을 닫고 나면 이 김밥이 참 그리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