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공동투자해 무역회사 설립도…한국계 개인 대북 제재 첫 사례
수사받다 러시아로 도피해 국적 취득…블라디보스토크 교민사회와도 교류
정부, '북한 불법금융 지원' 한국계 러시아인 대북 독자제재(종합)
정부는 28일 북한의 불법 금융 활동을 지원한 한국계 러시아인 최천곤을 대북 독자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정부가 한국계 개인을 제재 리스트에 올린 것은 처음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최천곤은 원래 한국인이었으나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이후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제재를 위반하며 북한 정권을 위해 활동해왔다.

대북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몽골에 '한내울란'이라는 이름의 위장 회사를 세우고 북한의 불법 금융 활동을 지원했고, 북한 조선무역은행 블라디보스토크 대표인 서명과 공동 투자 형식으로 러시아 무역회사 '앱실론'을 설립했다.

안보리 결의는 북한 단체 및 개인과의 합작 사업을 금지하고 있어, 서명과 회사를 설립한 것 자체가 제재 위반에 해당한다.

서명이 소속된 조선무역은행은 2017년 안보리 대북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바 있다.

최천곤은 1957년생이며 한국 본명은 '최청곤'으로, 범죄 혐의를 받아 지명수배가 내려지자 이를 피하기 위해 러시아로 도피한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이후 러시아 국적을 획득하면서 한국 국적은 자동으로 상실했다.

최천곤이라는 이름은 '최청곤'을 러시아어 독음으로 표기하기 어려워 쓰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천곤은 지난 2021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이 발간한 보고서에도 대북제재 위반 활동 의심 인물로 등장한다.

외교당국과 수사당국, 정보당국은 해당 인물이 과거 범죄 혐의 수사를 받다가 출국한 한국 출신자와 동일인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주시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블라디보스토크에 체류 중인 그는 대북제재 위반 활동 이외의 사업도 하며 현지 한국 교민사회와도 교류해왔다.

외교부는 "최천곤이 불법 활동을 지속하는 만큼 (이번 제재는) 그의 국내 금융망 접근을 차단해 대북 제재 위반 활동을 제약하는 실질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 국민이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개인·기관과 외환거래 또는 금융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각각 한국은행 총재 또는 금융위원회의 사전 허가가 필요하다.

허가 없이 거래하는 경우 관련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한국 국적을 가진 교민이 최천곤과 거래할 경우 정부의 독자제재 위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북한인 서명과 한내울란, 앱실론 등 단체 2곳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독자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최천곤이 2019년 1월에 몽골을 방문해 설립한 한내울란은 콩기름, 밀가루 등의 대북 중개무역에 관여했다.

정부는 한내울란의 대북 교역액이 100억원 이상이며 최천곤이 이중 일부를 수수료로 획득했다고 파악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보리 패널의 2021년 보고서를 보면 한내울란의 법인등록 서류와 몽골 상공회의소 회비 납부 영수증 등이 주러시아 북한 대사관 측에 발송됐고, 몽골 당국은 이런 활동을 토대로 한내울란이 북한의 제재 회피용 위장회사라고 파악했다.

최천곤은 주폴란드 북한대사관에 다량의 외화 송금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송금을 의뢰받은 은행이 수신자가 북한인임을 인지하고 이를 차단했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소개했다.

아울러 러시아 국적자를 정부가 독자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는 것도 처음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러시아 정부와도 협의했느냐는 질문에는 "러시아와도 한러 관계 안정적 관리와 한반도 문제 관련해 소통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정부의 대북 독자제재는 지난 2일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커조직 '김수키'에 대해 단행한 이후 26일만이다.

윤석열 정부는 작년 5월 출범 후 이번을 포함해 총 9차례에 걸쳐 개인 45명, 기관 47곳을 대북 독자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