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단체 바그너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와 결별하고 벨라루스에 터를 잡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에서 쿠데타의 주범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러시아와 척을 진 프리고진의 생사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27일(현지시간) 벨라루스 현지 매체인 벨타에 따르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이날 "프리고진이 오늘 벨라루스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7시께 프리고진의 전용기가 벨라루스 민스크 공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4일 러시아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킨 프리고진은 러시아 남부군 사령부가 있는 로스토프나도누를 장악한 뒤 행적이 묘연해졌다. 프리고진의 생사를 벨라루스 대통령이 공식 확인해준 셈이다.

이날 러시아 연방보안국은 성명을 통해 바그너그룹의 반란 사태에 대한 수사가 종결됐다고 밝혔다. 연방보안국은 “(반란) 참가자들은 범죄 실행을 위한 직접적인 행동을 멈췄다"며 "이를 비롯한 수사 상황을 감안해 23일 조사를 개시한 형사 사건을 27일 종결한다”고 밝혔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지난 24일 주도한 중재에 따른 조치다. 당시 모스크비 인근 200km까지 진격한 프리고진은 반란을 중단하는 대신 러시아가 쿠데타 가담자에 대한 처벌을 취소하는 데에 합의했다. 러시아 당국이 이를 이행한 것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바그너그룹이 보유한 대형 군 장비를 정규군으로 인계하는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푸틴 대통령이 사태수습에 발빠르게 나섰다는 분석이다.철권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선 쿠데타로 인해 붕괴된 리더십을 되살려야 해서다.

동시에 바그너그룹 수뇌부에 대한 보복에 나섰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바그너그룹 수뇌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일반 병사에 대해선 "집에 가도 좋다"고 했지만, 간부급 인사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6일 TV연설을 통해 쿠데타를 주도한 바그너그룹 간부에 대해 "조국과 국민을 배신했다"고 비난했다. 수사는 종결했지만 보복을 암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푸틴 대통령은 바그너그룹 지원금 용처부터 조사할 방침이다. 반란 혐의 대신 부패로 옭아메려 한다는 분석이다. 푸틴 대통령은 27일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바그너그룹 인건비로 860억루블(약 1조 3000억원) 이상 지급했다"며 "수사당국이 바그너그룹과 수장에게 지급한 자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리고진도 푸틴의 보복을 피해 갈 수 있는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4일 협상 중에도 프리고진 제거를 명령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벨라루스 국영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중재 비화를 밝히며 "당시 푸틴이 프리고진을 암살하려 했지만, 그에게 성급한 대응을 자제해달라고 촉구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프리고진이 바그너그룹 병력이 있는 아프리카로 잠적할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벨라루스가 러시아의 최대 동맹국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 곳에서 안전을 제대로 보장받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각종 내전에 개입한 바그너그룹 병력 중 일부는 아직 아프리카에 배치돼 있다.

벨라루스에 자리 잡고 명예 회복을 노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이 바그너그룹 병사들의 벨라루스행을 허용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프리고진이 벨라루스에서 바그너그룹을 재정비한 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공을 세워 명예회복을 노릴 것이란 주장이다.

루카셴코 대통령도 "바그너그룹 지휘관이 와서 우리를 돕는다면 값진 일”이라며 “그들로부터 전투 경험을 얻어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바그너그룹이 벨라루스에 결집한다면 버려진 군사기지를 제공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오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