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한민국 예술문화대상을 수상한 건축가 이성관 소장이 설계한 세검정 경사지 꼭대기에 위치한 J씨의 저택을 여럿이 함께 답사에 나섰다. 답사하기로 한 날 마침 비가 내렸다. 일행 중 한 명에게서 총무를 맡고 있는 나에게 전화가 왔다.

비가 오는데 주인 입장에서 좀 번거롭게 생각하지 않을지, 답사야 일정을 미뤄도 상관없으니 연기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었다. 곧바로 답사를 중재한 이 소장에게 전화를 드려 의견을 물었다. ‘아! 아, 그 집 주인은 그런 거 생각하실 분이 아니고, 오히려 비가 오는 게 그 집 구경하기 더 좋을 겁니다’라고 답변이 왔다. 모두가 빗속이지만 모였고 그 집을 방문했다.

결과는 분명했다. 그 집은 비가 오니 훨씬 운치가 돋보였다. 작은 띠 모양의 연못 같은 화단에 빗방울이 내리치는 모습이 마음 속의 작은 북을 두드렸고, 멀리 원경으로는 인왕산 뒷자락의 암벽으로 희뿌연한 안개가 동양화 그림처럼 걸터앉아 있었다. 비는 일반적으로 행동에 불편을 끼치지만, 그날 그곳에서는 먼 산과 바위, 숲을 배경으로 건물의 모습을 구경하는 우리에게 무드를 고조시키는 촉매제 같았다.


[이재훈의 랜드마크 vs 랜드마크] 비의 두가지 모습

J주택 거실 내부에서 본 풍경


몇 년 전 겨울에만 잠깐 비가 오는 캘리포니아에 1년간 기거할 때, 그 곳의 교수가 이 곳 날씨가 참 좋다고 하는데, 내가 그렇지 않다고 얘기했더니 의아해하면서 아니 이 곳은 거의 1년 내내 비도 안 오고 햇살이 쨍쨍인데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왔다.

“날씨가 계속 화창하니까 사람이 기후에 대해 별 생각이 없어지고, 좋다는 것의 매듭이 지어지지 않는다. 비는 사람의 내면을 적셔주는 효과가 있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혀 주고 마음을 위로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답하니 그제서야 가끔 비가 오는 날씨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 같아 보였다.


[이재훈의 랜드마크 vs 랜드마크] 비의 두가지 모습

J주택 옆의 얕은 연못과 바위

LA의 헐리우드나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밸리가 비가 오지 않는 지역이라 영화 촬영이나 반도체 제조에 유리해 관련 산업이 발달했다고 하는데, 비가 오지 않는 것이 좋은 측면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냥 쉽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정말 그것이 좋은 것인지, 좋지 않다고 생각한 것 속에 숨겨진 보석 같은 가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잊을 때가 있다.

어린 시절 양철 지붕위에 떨어지던 또도독 빗방울 소리는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던 자연의 소리이며 일종의 음악 소리였는데, 지금의 아파트에는 지붕이 없어 전혀 그런 경험을 할 수가 없다. 쉽고 편하고 좋은 것들이 좋기는 하지만, 불편하다는 이유로 가치 있는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쉽게 좋다고 선택하기 전에 그것이 정말 좋은 것인지 둘러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비를 바라보며, 빗소리를 들으며 느끼는 감성적 효과와 생활에서의 불편함, 그 둘의 균형이 필요해 보인다.

이재훈 단국대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