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kg의 붉은 실로 LA 휘감은 시오타 치하루와 해머미술관
사진=Jeff Mclane


지난 3월 말 미국 LA의 해머미술관에서 큰 축하파티가 열렸다. 엔터테인먼트 쪽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앤더슨 팍(Anderson Paak)이 이끄는 밴드 공연과 특별 칵테일&카나페 메뉴로 차려진 이 파티는 자정 넘도록 계속되었다.
363kg의 붉은 실로 LA 휘감은 시오타 치하루와 해머미술관
사진=Jeff Mclane


해머미술관이 이런 규모의 파티를 열어야 했던 이유는 충분했다. 숙원사업이었던 미술관 확장과 개조 공사를 20년에 걸쳐 마무리하고 드디어 새로운 모습의 해머미술관을 공개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시설면에서도 라크마(LACMA)와 견줄수 있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을만큼 해머미술관으로서는 그 의미가 특별했던 것이다.

미술관의 개조공사는 후원자들로부터 모은 기금 9000만 달러를 들여 이루어졌는데, 후원자들 중에서도 문화예술 자선사업가 커플인 린다&스튜어트 리스닉(Lynda&Stewart Resnick)의 기부금이 무려 3000만 달러에 달했다. 따라서 해머미술관은 그들의 큰 공헌을 길이 기억하고자 미술관 바로 옆 오피스빌딩의 문화센터를 그들 이름으로 명명했다. 이런 후원 덕분에 해머미술관의 전시공간은 60%나 늘어났고, 넓은 로비를 겸비한 새로운 출입구가 탄생했고, 공공 프로그램 장소도 넉넉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해머미술관은 UCLA 산하 기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본래는 석유재벌 아만드 해머(Armand Hammer)에 의해 1990년에 세워진 미술관이었다. 해머는 당시 미국을 대표하는 미술품 컬렉터로서 수많은 작품들을 라크마나 내셔널갤러리에 기증도 했지만, 마네 모네 드가 세잔 고흐 고갱 등을 포함한 인상파, 후기인상파를 비롯한 19세기 유럽과 미국의 역사적인 자신의 소장품들을 전시하고 보존하기 위한 미술관이 필요했다. 그래서 90세의 나이에 자신의 회사 건물 옆에 미술관을 세우게 되었는데, 불행히도 자신의 미술관을 설립한지 석달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Armand Hammer 위키백과
Armand Hammer 위키백과
Armand Hammer

해머 사후에 미술관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해머재단이 UCLA에 미술관 운영을 제안하게 되었고, UCLA가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두 기관이 손잡음으로써 수많은 훌륭한 미술품들을 소장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학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보다는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미술관이 된 것이다. 해머미술관은 다른 기관과 비교해보아도 훨씬 진취적인 전시와 공공 프로그램을 운영해 국제적으로도 인지도가 높다. 요즘 용어로 가장 힙한 미술관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363kg의 붉은 실로 LA 휘감은 시오타 치하루와 해머미술관
사진=Jeff Mclane


이번 해머미술관 행사에서 더욱 감동을 준 것은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첫번째 만나는 시오타 치하루의 대형 설치작품이었다. 시오타 치하루의 전시는 모든 방문객들이 통과하는 장소, 즉 로비에서 시작하여 전시장으로 향하는 통로까지 대규모 설치작품으로 이루어졌다. 사실 그 장소는 새로워진 해머미술관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장소가 변화무쌍하여 전시공간으로 사용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오타 치하루는 그곳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드라마틱하게 펼쳐냈다. 밖에서도 훤히 들여다보이는 긴 유리 벽과 출입문들, 중앙에 자리한 리셉션 데스크, 구부러진 계단통로와 장애인 통로, 엘리베이터 등의 시설 공간들을 서로 유기적으로 엮어낸 것이다. 그녀가 이번 작품에 사용한 가느다란 붉은 실의 양은 무려 800파운드(약 363㎏)에 달했는데, 그런 엄청난 규모의 작품은 당연히 작가의 특별한 예술적인 재능뿐만 아니라 집요한 정신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10여명의 협업으로 꼬박 한달이 걸렸다.

그렇게 완성된 시오타의 설치작품은 모든 관람객들이 전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정교하고 신비스럽게 구성된 작품 속으로 따라 들어가는 체험이 매우 인상적이다. 예술이라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경험이었다.
363kg의 붉은 실로 LA 휘감은 시오타 치하루와 해머미술관
사진=Jeff Mclane
이 설치작품의 제목은 ‘The Network’ 였다. 다른 오브제 없이 오로지 붉은 실 하나만 사용하여 그물처럼 엮어나가며 모든 공간들을 연결시킨 설치방법이 제목과 잘 부합되지만, 사실 그 제목은 훨씬 더 풍부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단순히 현대사회의 상징적인 네트워크 시스템에 관한 것 보다는, 근본적으로 인간 생태계의 매우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관계성을 표출한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성이란 미세한 인간의 내부 세계에서 시작하여 우주적인 개념까지도 연결되어 있는 광대한 것이다. 항상 그렇듯이 시오타 치하루의 예술이 근원적으로 삶과 죽음, 순환, 관계성에 중점을 두고 있는 점과 일맥상통하는 제목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시오타 치하루 예술의 시그니처 재료인 핏빛 붉은 실에 대한 모티브는 일본의 토속 전설에서 착안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서 시작해 새끼손가락으로 나오는 보이지 않는 붉은 실이 누군가와 묶이게 된다는 전설이다. 그 붉은 실은 시간과 장소, 상황과는 상관없이 때로는 짧고 때로는 곧바로, 때로는 길게 얼키고 설켜서 연결이 되는데, 그것이 만남의 여정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미지의,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인생의 만남들이 어쩌면 예정되어 있는 인연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63kg의 붉은 실로 LA 휘감은 시오타 치하루와 해머미술관
시오타 치하루 인 메모리 전시
실제로 시오타 치하루의 예술세계는 자신의 삶과도 관련이 깊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독일에서 공부하고 독일에서 만난 이방인(한국인)과 가정을 이루어 아이를 낳았다. 두 번에 걸쳐 암 수술을 받으며 생사를 알 수 없는 고통스런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예술가의 길을 가야했던 것도 자신의 운명이라 받아들였다. 그런 경험을 통해 인간의 존재와 생명의 문제에 대해 더욱 깊고 풍부하게 접근할 수 있었고, 붉은 실(작품에 따라 점차 검은색 실 도는 흰색 실도 상용하게 되었지만)은 그러한 자신의 예술을 표현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시오타 치하루는 그처럼 독특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개척하여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제적인 주요 미술관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는 그녀의 전시들은 그녀의 예술에 대한 높은 위상을 잘 대변해준다.

마지막으로, 시오타 치하루에게 과감하게 새로운 출입구 공간 전부를 제공해준 기발한 기획력의 해머미술관에(특히 관장 Ann Philbin의 리더쉽과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Erin Christovale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해머미술관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 이어 ‘한국 실험미술 1960-1970’전시를 내년 2월 개최할 예정이고, 앞으로는 한국 미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국 사람으로서 고맙고 즐거울 따름이다. 내년 2월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