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바그너 그룹의 용병들이 무장 반란 과정에서 자신들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에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BBC방송은 26일(현지시간) 바그너그룹의 수장인 프리고진을 향한 조직원들의 싸늘해진 분위기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팔로워가 수십만명에 달하는 텔레그램 채널 메시지에서 바그너그룹 부대원의 불만이 속속 목격됐다.

이들은 바그너그룹이 모스크바 진군을 멈추고 반란 때 점령한 남부 도시 로스토프나노두에서 철수한 데 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그너 용병이라고 주장한 한 인물은 "프리고진이 스스로 저지른 노골적 공간 낭비 탓에 바그너그룹이 파괴됐다"고 주장했다. 다른 이들은 "또 한 차례 몰상식한 봉기였다"며 프리고진의 무장반란 자체를 비판했다.

바그너그룹 부대원들의 가족과 친척이 사용하는 대화 채널에서도 프리고진을 향한 쓴소리가 쏟아졌다.

한 여성은 "그들(용병들)이 그냥 배신당한 것"이라며 "나는 프리고진을 믿었지만 그가 한 행위는 불명예스러운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사용자는 "프리고진이 이번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이건 순전히 배신"이라고 거들었다.

BBC방송은 프리고진이 용병단 2만5000명의 충성을 누린다고 뽐냈겠지만 그런 상황은 바그너그룹 반란이 흐지부지된 속도만큼 빨리 바뀐 것 같다고 진단했다.

텔레그램은 바그너그룹 용병들과 러시아 전쟁지지자들이 러시아 당국의 검열에 구애받지 않고 애용해온 소셜미디어다.

전황을 알리고 팔로워 수천, 수만명을 상대로 여론전을 펼쳐온 곳인 만큼 주요 채널은 조직 내 분위기를 읽는 수단으로 평가받는다.

프리고진이 러시아군 수뇌부를 표적으로 삼아 모스크바 진격을 선언한 곳도 텔레그램 채널이었다.

그간 바그너그룹을 지지해온 전쟁 지지론자들도 갑자기 싸늘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바그너그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팔로워 90만명을 거느린 '회색지대', '훈장의 뒷면' 등 인플루언서들은 최근 이례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프리고진의 행동에 지지를 보내지 않으면서도 프리고진의 정적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을 비판하며 중립을 취하려고 애를 썼다.

프리고진은 중동, 아프리카 분쟁지에서 러시아 세력을 확장하고 이권을 확보하기 위해 용병단을 운영해왔다.

그는 우크라이나전에서 정규군이 부진한 사이 용병단으로 일부 전과를 올리자 러시아 대중의 지지를 받는 정치세력으로 급부상했다.

프리고진은 사병과 같던 바그너그룹이 국방부에 통폐합될 위기에 몰리자 지난 24일 군 수뇌부를 겨냥해 봉기를 일으켰다. 그러다가 만 하루 만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에 따라 반란을 중단한 뒤 벨라루스로 망명하기로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바그너 용병들에게 안전을 보장하겠다며 벨라루스에 따라가든지, 귀가하든지, 국방부와 계약하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방침을 통보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