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미국이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하면
흔히들 반도체를 피자에 비유한다. 난해한 반도체를 쉽게 이해시키고 글로벌 분업 체계를 효율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다. 반도체 설계에 해당하는 피자 조리법(레시피)에선 미국이 최고수다. 반도체 장비에 빗댈 수 있는 피자 화덕은 미국과 유럽, 일본이 나눠 갖고 있다. 미국에 부족한 건 반도체 생산에 해당하는 피자 주방장이다. 그 역할은 한국과 대만이 양분하고 있다. 그 주방장을 미국으로 들여오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이 직접 주방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게 작금의 미국발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다.

마이크론의 역발상 투자

공급망 재편은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에 맡기는 게 아니다. 철저히 ‘보이는 힘’에 의존한다. 전 세계를 망라하는 반도체는 미국의 외교정책과 결부되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최근에 부쩍 미국 외교의 움직임과 미국 반도체 업계 동선이 일치하는 사례가 늘었다.

미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따라 움직였다. 마이크론은 지난달 19일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 참석한 때에 맞춰 일본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5000억엔(약 5조원)을 들여 일본에서 차세대 D램을 양산하겠다는 청사진이다. 일본 정부도 15억달러(약 2조원)의 보조금을 주겠다며 화답했다.

마이크론의 중국 전략도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올 2월 중국 정찰풍선 사건으로 중국과 갈등을 빚을 땐 마이크론도 시련을 겪었다. 그러다 미·중 정상회담설이 나오자 중국 투자 계획을 내놨다.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지난 19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다. 중국 사업 철수설까지 나오던 시점에 발표한 역발상 투자였다. 촘촘한 대(對)중국 제재를 빠져나갈 수 있는 패키징 공장을 짓기로 했다.

1주일 뒤 미국과 인도 간 정상회담이 열리자 마이크론은 인도로 손을 뻗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미국 국빈 방문에 맞춰 인도에도 패키징 시설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인텔의 유럽 대원정

바이든 대통령이 인도·태평양을 맡았다면 블링컨 장관은 유럽을 담당했다. 시스템 반도체 1위인 인텔은 블링컨 장관과 동행했다. 블링컨 장관이 이달 초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문제로 유럽을 방문한 뒤 인텔은 폴란드 투자 계획을 내놨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이 맞닿아 있는 폴란드는 러시아에 맞서 NATO를 지키는 최전선이다.

블링컨 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뒤인 19일엔 인텔의 이스라엘 투자 전략이 공개됐다. 중동의 교두보인 이스라엘에 250억달러를 들여 웨이퍼를 생산하겠다는 내용이다. 같은 날 인텔은 유럽의 맹주국인 독일과도 반도체 보조금 갈등을 끝냈다. 당초 계획보다 많은 300억유로를 독일에 투자하기로 하자 독일도 보조금을 99억유로로 46%가량 증액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블링컨 장관의 업무 교통정리처럼 마이크론과 인텔의 역할 분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어떻게 될까. 두 회사의 투자 검토 대상국에서 제외된 한국의 반도체가 설 자리가 있을까. 피자 주방장 역할도 빼앗기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전략이 우리에게 있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