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판결 이후… 불법쟁의 손배소송 이렇게 바뀐다
대법원은 2023. 6. 15. 불법 쟁의행위를 한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에 대하여 사용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한 일련의 사건에 대하여 원심을 파기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에 대해 선고 직후에는 대법원이 사실상 노란봉투법의 내용을 채택한 것이라고 바라보는 시각도 많았지만, 고용노동부는 노란봉투법과 위 대법원 판결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고, 대법원도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이례적으로 추가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판결의 취지를 설명한 것을 보면 일각의 시각처럼 노란봉투법과 동일한 내용의 판시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금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향후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의 향배는 어떻게 될까? 주요 단계별로 살펴보자.


배상책임 성립 단계

이번 판결로 인하여 사실상 개별 조합원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자체가 곤란해진 것이 아닌지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추가 보도자료를 통하여 그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다수가 가담하는 형태의 불법 쟁의행위의 경우, 그 참가자들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구체적인 행위와 가담정도, 그로 인한 손해를 일일이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만약 ‘배상책임의 성립’ 단계에서 이를 요구하고 입증에 실패할 경우 입증책임의 분배에 따라 사용자의 청구를 기각한다면, 이는 사실상 손해배상 청구 자체를 곤란하게 만드는 형국이 된다.

이에 대법원은 ‘배상책임의 성립’ 단계에서 배상책임의 개별화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즉, 부진정연대책임에 대한 종래의 법리를 변경하는 것은 아니고, 어떠한 개별 조합원이 불법 쟁의행위에 가담했다는 사실만 입증한다면, 일단 부진정연대책임의 법리에 따라 배상책임 성립 단계의 문턱은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손해액의 산정의 단계

배상책임 성립의 문턱을 넘었다면, 이제는 사용자가 입은 전체 손해액을 산정해야 한다. 원래 손해액은 이를 주장하는 자(피해자)가 입증책임을 지게 되고, 실손해를 입증해야 함이 원칙이다. 다만 불법 쟁의행위로 생산이 중단되거나 방해를 받은 경우, 실손해를 입증하는 것은 매우 곤란한 측면이 있다. 정상적으로 제품이 생산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제품이 재고로 남지 않고 고객에게 정상적인 가격에 판매되었으리라는 전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규모 제조공장일수록 이러한 인과관계를 구체적으로 추적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대법원은 손해액에 관한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해주었다. 즉, 불법 쟁의행위로 생산 차질이 발생하는 경우, 공헌이익(즉, 정상적으로 제품이 생산되었을 경우 해당 제품의 정상 판매로 얻을 수 있는 ‘영업이익’ + 생산 차질이 발생한 시기 동안 사용자가 공장가동을 위해 무용하게 지출한 ‘고정비’) 상당액의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겠다는 법리이다.

금번 대법원 판결 역시 이러한 추정의 법리는 정당하다고 보았다. 다만 그와 같은 손해액 추정이 복멸될 수 있는 경우를 새롭게 추가하였다. 대법원은 생산 차질이 있다고 하여 무조건 위와 같은 추정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생산 차질이 있었더라도 그로 인하여 ‘매출 감소의 결과에 이르지 아니하였을 것으로 볼 수 있는 사정’이 있다면 위와 같은 추정이 복멸된다고 판단하였다. 구체적으로, 사용자가 상당한 기간 안에 추가 생산을 통하여 부족 생산량을 만회하여 결과적으로는 계획한 생산물량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손해 발생의 추정은 복멸된다는 것이다. 신의성실의 원칙상 사용자로서도 손해의 범위를 최소화할 의무가 있고, 그리하여 상당한 기간 안에 추가 생산을 통하여 부족 생산량을 만회하였다면 공헌이익 상당의 손해액을 추정할 수는 없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법원 판결에는 한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사용자로서는 추가 생산을 위해 정규근로 외에 특근 등을 통하여 공장을 추가 가동하여야 하고 그를 위하여 다시금 비용(가령 시간외 근로수당)을 지출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추가로 지출하게 된 비용은 어디에서 보상 받을 수 있을까? 응당 이에 관한 비용들도 불법 쟁의행위를 한 가해자들이 배상할 손해액에 포함시키는 것이 법리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배상책임 제한의 단계

일반 불법행위의 경우에도 항상 가해자에게 발생한 손해액 전부에 대하여 책임을 지우는 것은 아니고, 법원이 가해자의 배상책임 범위를 일정 부분 제한할 수 있다. 이러한 책임제한 비율의 결정은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원리에 입각하여 법원이 재량에 따라 결정하는 영역이며, 당사자의 입증책임에 의존하지 않는다. 즉, 일반적으로 당사자들은 자신들에게 보다 유리한 책임제한 범위가 인정되도록 구체적인 주장과 증거를 제출하는 노력을 기울이지만, 설령 당사자가 모든 사정을 정확히 입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법원이 어느 일방 당사자에게 입증책임을 부담시켜 전부 또는 전무로 판단하지는 않고,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적정한 비율로 가해자의 배상책임 범위를 정하게 되는 것이다.

금번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배상책임 제한의 단계’에서 개별 조합원들간에 책임제한 개별화를 인정했다. 따라서 사용자가 불법 쟁의행위에 가담한 개별 조합원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행위와 가담정도, 그로 인한 손해 등을 일일이 입증하는 데에 실패하더라도, 법원이 입증책임의 문제로 돌리지 않고,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가해자별로 적정하게 배상책임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다수가 참여한 불법 쟁의행위 사안일수록 결국 법원은 나름의 기준에 따라 적극 가담군, 단순 가담군 등 적절한 그룹으로 나누어 각 그룹별로 책임제한 범위를 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무튼, 공동불법행위자 사이 책임제한의 개별화는 종래에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법리는 아니다. 물론 종래의 일부 사안에서 그러한 취지의 판시를 한 선례가 있기는 하였지만, 이 역시 고의의 공동불법행위가 문제된 사안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하고 불법행위가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손해배상 제도의 근본 취지에 기인한다. 그런데 금번 대법원 판결은 고의의 공동불법행위에 해당하는 불법 쟁의행위에 가담한 개별조합원에 대하여 책임제한의 개별화를 인정한 것인데, 과연 불법 쟁의행위의 영역에 대하여 그와 같은 법리상 예외를 인정해 주어야 할 당위성이 무엇인지 의문스럽다. 쟁의행위가 불법이지만, 그리고 가해자가 고의로 그러한 공동불법행위에 가담하였지만, 그럼에도 책임제한을 개별화할 이유가 무엇인지, 그 정당성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에 관하여 보다 근본적이고 심도있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향후 여러 법률영역에서 편의적으로 추가되는 각종 예외로 인하여 체계적 정합성을 상실하게 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금번 대법원 판결로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그 양상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다만 분명한 점은, 금번 판결이 어떠한 형태로든 결코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적극 가담자에 대하여는 노동조합에 준하는 배상책임이 인정되어야 하고 단순 가담자에 대하여도 적어도 불법행위에 대한 제재로서 의미있는 수준의 배상책임이 인정되어야만 불법행위법의 사전적 억제 기능이 형해화되지 않을 것이다.

구교웅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