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뒤흔드는 중요 사건' 대법 전원합의체서 판단해야
6월 15일 대법원은 불법쟁의를 원인으로 하여 기업이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 “개별 조합원 등에 대한 책임제한의 정도는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2017다46247. 이하 대상판결). 한 마디로, 불법쟁의에 참여한 노조원들별로 손해배상 책임 제한의 정도를 개별적으로 달리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판결이 내려진 직후부터 대상 판결은 국회 본회의 심의·표결을 기다리는 노동조합법 제2조 및 제3조 개정안(노란봉투법)과 연결되어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양대 노총, 고용노동부, 경제 6단체, 대법원의 입장문·보도자료 발표가 잇따랐다. 이후에도 노란봉투법 통과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 시점까지 이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대법원은 6월 19일 추가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대상판결 취지를 보충 설명하기도 했다. 해당 자료의 골자는 Δ대상판결은 민법 제760조의 공동불법행위자들 간 공동 배상책임 원칙은 유지하는 것이고, 책임의 비율만 노조원별로 달라지게 된 것이며 Δ대상판결은 기존 판결들에서 인정한 '책임제한 비율 개별화' 법리를 적용한 것일 뿐 판례변경은 아니므로 (전원합의체가 아니라) 소부(小部)에서 판결하였다는 것이다.

미묘한 시기에 내려진 대상판결이 부른 이러한 파장과 노사 입장 차이에 따른 논란을 지켜보며 Δ대상판결과 노란봉투법의 관계가 무엇인지 Δ사법부의 입법 선취를 어떻게 볼 것인지 Δ향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먼저 이번 대상판결과 노란봉투법, 정확하게는 노동조합법 개정안 제3조 제2항과의 관계를 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대상판결은 노조법 개정안 제3조 제2항과 그 취지가 같다고 볼 여지가 많다.

노조법 개정안 제3조 제2항은 “법원은 …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각 손해의 배상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여야 한다”고 한다. 노동당국은 위 규정은 부진정 연대책임을 배제하려는 취지이고, 따라서 부진정 연대책임을 인정한 바탕 하에서 책임 개별화를 선언한 대상판결과는 결을 달리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위 규정은 배상의무자 책임의 성격을 직접 분할채무라고 규정하지 않은 채, 법원을 수범자로 배상의무자 책임 범위를 개별적으로 제한할 의무를 부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모든 법률 해석은 문언 해석에서 시작한다. 이런 문언 해석을 넘어 위 규정이 공동불법행위 책임의 대원칙인 부진정 연대책임 배제를 선언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위 규정은 부진정 연대책임은 그대로 두고 법원이 형평에 맞게 재량으로 각 개별 노조원 별로 책임을 정하는 판결을 하도록 명하는 취지로 해석함이 훨씬 자연스럽고 또 타당하다. 그 경우 대상판결의 취지는 노동조합법 개정안 제3조 제2항 취지와 일치한다.

이런 해석이 타당하다면 대상판결은 국회가 한참 논의 중인 노란봉투법 중 일부에 대한 입법을 대법원이 사실상 선취(先取)한 것이 된다. 노란봉투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 없이 공포되어 발효되기 전이라도, 이미 책임 제한은 대상판결에 따라야 하는 하급심 법원에 의해 재판규범으로 작용하고, 그 결과 기업과 노동조합, 조합원간의 불법쟁의에 따른 책임 결정 문제에도 규범력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대법원의 입법 선취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예컨대, 당장 여야간 입법 논의가 시작되려고 하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에 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보자.

최근 여당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제6조 제1항은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국적· 신앙·고용형태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하여, 종전 차별금지사유 (국적·신앙·사회적 신분)에 더해 ‘고용형태’를 새로운 차별금지 사유로 추가하였다. 그런데 고용형태에 근거한 차별 금지는 이미 2019년 대법원 판결 (2015두46321)에서 제한적이나마 선취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대법원은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에 구체적으로 규정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고용형태가 다른 근로자들(전업강사와 비전업강사) 사이의 임금 차별에 관하여 적용되는 것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정하고 있는 균등대우원칙이나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에서 정하고 있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등은 어느 것이나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원칙을 근로관계에서 실질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대법원은 선고 직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그 판결이 "추후 근로내용과 무관한 사정을 이유로 한 임금 등 근로조건의 차별이 문제되는 사례에서 근로자를 보호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자평까지 한 바 있다.

이처럼 대법원이 판결로써 입법을 선취하는 모습이 바람직한가? 이런 모습을 우리 노동계와 사회 진보를 위한 사법부의 당연한 소임으로 보거나, 특히 이번 대상판결에 관한 한 대법원 추가 보도자료처럼 새로운 법리가 아닌 기존 법리 (책임제한 비율 개별화)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판결은 아예 입법 선취가 아니므로 문제 없다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이 법률 해석을 하는 심판자 역할을 넘어, 선수로서 중요한 현안에 관한 규범을 직접 형성하여 선언하게 되면, 그런 '적극성'은 자칫 헌법적 기본질서에 독이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국민주권, 법치주의, 삼권분립 원칙상 국회가 법률을 제정할 권한을 가지고, 사법부는 그 법률을 해석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에서, 대법원의 입법 선취, 달리 말한다면 적극적 사법 판단이 필요하고 정당한 특별한 경우도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그런 대법원의 사법적 판단은 이번 대상판결처럼 소부에서가 아니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전원합의사건으로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

이번 추가 보도자료를 보면, 대법원은 기존 판결에 따른 것이고 판례 변경이 아니니 소부에서 대상판결을 했다고 짤막하게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심리절차에 관한 내규 제2조 제4항에 따르면, 판례 변경을 할 때만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다루는 전원합의사건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지는 않다. 전원합의사건에는 “사회적 이해충돌과 갈등대립 등을 해소하기 위한 최종 판단이 필요한 사건”(3호), “중요한 일반적 법 원칙을 강조하여 선언할 필요가 있는 사건”(5호) 등이 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여러 의문이 든다. 이번 대상판결이 다루는 주제가 “사회적 이해충돌과 갈등대립 등을 해소하기 위한 최종 판단이 필요한 사건”이나 “중요한 일반적 법 원칙을 강조하여 선언할 필요가 있는 사건”이라 볼 수 없을까? 대상판결 이후 목격하는 우리 사회의 노사간 갈등과 대립은 이번 대상판결의 대상 사건이 “사회적 이해충돌과 갈등대립 등을 해소하기 위한 최종 판단이 필요한 사건”임을 웅변한다고 볼 수는 없을까? 그런 판결을 (아마 대법원 입장에서는 우연의 일치 또는 고려 대상이 아닌 부수적 사정일 수도 있지만) 노란봉투법의 국회 본회의 심의·표결을 코 앞에 둔 시기에 내림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하는 것이 적절한가?

어쩌면 이번 대상판결에는 소부에서 지금 판결하는 것이 적절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단, 앞으로는 대법원이 최고법원으로서 좀 더 투명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특히 노란봉투법안의 또 다른 일부인 노조법 제2조 (사용자 개념, 구체적으로는 원청의 하청 노조에 대한 단체교섭에 있어 사용자성), 그리고 사기업의 경영성과급 (PI, PS)의 임금성과 같은 우리 사회의 사회적 이해 충돌과 갈등대립 등을 해소하기 위한 최종 판단이 필요하고 또 중요한 일반 법 원칙에 관한 사건들이 현재 대법원 소부에 계류되어 있다.

이런 사건에 관해서는, 이번 대상판결과 달리 소부가 아니라 전원합의사건으로 지정하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공개기일을 열어 심리·판결하는 바람직하다. 그래야 우리 노동계는 물론 사회가 그 사건들에 부여하는 중요성과 무게에 상응한 충분한 숙고가 이루어졌다고 인정할 수 있고, 어떤 결론이 나오든 장기적으로 노사간 분열을 넘어설 기틀이 마련될 것이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