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국립국악관현악단 '부재' 공연…모션캡처한 동작 시연하는 로봇
어깨·팔꿈치 등 관절 움직임…듣는 기능은 없어
지휘봉 흔드는 로봇…"정확하지만 사람 호흡 배려 못해 오류도"
"연주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사회자 안내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을 닮은 로봇 '애버(EveR)6'의 두 팔이 스르륵 움직였다.

에버6가 오른손에 쥔 지휘봉을 치켜들자 징 소리가 울려 퍼지며 연주가 시작됐다.

박자에 맞춰 지휘봉을 흔들던 에버6가 왼손을 들어 올릴 때마다 악기가 추가되면서 연주는 점점 웅장해졌다.

에버6는 지휘 내내 고개를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음악이 순간 중단될 때는 양 팔을 공중에서 멈추기도 했다.

26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연습실에서 '로봇이 지휘자를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줄 주인공 로봇 에버6의 모습이 공개됐다.

에버6는 오는 3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이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공연 '부재(不在)'를 위해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1년 전부터 개발한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어깨, 팔꿈치, 손목 등 관절을 구부릴 수 있다.

다만 에버6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챗GPT 등 생성형 AI(인공지능)은 아니다.

사람 지휘자의 동작을 모션 캡처해 프로그래밍한 로봇이다.

에버6를 개발한 이동욱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박사는 이날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에버6는 프로그램된 대로 시연하는 로봇이다.

공연 전에 프로그램을 결정하고, 짜인 대로 동작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1단계 하드웨어적인 부분을 보여드린 것이고, 차기에는 데이터 학습 등을 통해 '몇 박자의 웅장한 리듬으로 지휘해줘'라고 했을 때 이것을 생성해 지휘자가 원하는 보조적인 도구로 활용될 수 있도록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휘봉 흔드는 로봇…"정확하지만 사람 호흡 배려 못해 오류도"
에버6와 공연을 함께 올린 음악가들은 에버6의 정확하고 섬세한 동작을 통해 로봇 기술의 발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여미순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직무대행은 "기술이 발달하면서 로봇, 인공지능 등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해졌다.

이번 공연은 이런 고민과 맞닿아 있다"며 "예술 영역에서 로봇이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지에 대한 상상으로 시작했다"고 공연을 소개했다.

로봇이 지휘하는 공연은 이번이 국내에서 처음이지만, 2009년에는 에버6의 이전 모델인 에버3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어린이 공연에 소리꾼으로 무대에 오른 바 있다.

이번 공연에 악장으로도 참여하는 여미순 직무대행은 "2009년에도 에버3와 연계한 공연을 했는데, 그때보다 상당히 많은 기술 발전이 이뤄졌다는 점을 연주하면서 확인했다"고 했다.

공연에는 에버6와 함께 지휘자 최수열이 무대에 오른다.

에버6와 최수열은 각각 다른 곡을 지휘한 뒤 같은 곡을 함께 연주하는 공동 지휘를 한다.

최수열은 "지휘자라기보다는 지휘 동작을 하는 '퍼포머'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에버6의 지휘 동작이 굉장히 섬세해 놀랐다"고 밝혔다.

지휘봉 흔드는 로봇…"정확하지만 사람 호흡 배려 못해 오류도"
하지만 이들은 '로봇이 지휘자를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수열은 "에버6는 지휘 동작을 하는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듣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며 "지휘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리허설에 참여해 악단의 소리를 듣고, 악단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교정하고, 제안하고, 설득하는 것인데, 에버6에게는 이런 기능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 결정적으로 에버6에게는 호흡이 없다.

오늘 시연 때도 위험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는데, 이건 인간의 호흡과 연관돼 있다"며 "모든 음악에는 (사람이 숨 쉬는) 호흡이 존재하는데, 에버6는 호흡 없다.

그런 배려가 없다 보니 에버6는 정확하게 하는데도 (악단보다) 앞서나가는 오류가 생긴다.

이 친구는 눈치도 안 보고 냉정하게 밀어붙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술이 지휘자의 예술적인 영역을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