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밖 출산 막고, 산모 보호해야" vs "양육 포기 부추길 것" 익명 출산해 국가가 보호하는 제도…학계·시민단체도 의견 팽팽 보호출산제 도입 여부와 별개로 "미혼모 위한 제도 개선" 한목소리
"당장 길이나 공중화장실 같은 비위생적인 시설에서 몰래 아기를 낳는 사례도 있잖아요.
원하는 산모에 한해서는 병원을 찾아 익명으로 출산하게 하고 국가가 아이를 돌봐주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 37개월 아들을 키우고 있는 미혼모 이모(21) 씨는 26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보호출산제' 도입에 전적으로 찬성한다며 이렇게 답했다.
18세에 진로를 위해 자퇴한 뒤 갑작스럽게 임신하게 된 이씨는 사정상 현재까지 남편 없이 홀로 육아를 도맡고 있다.
이씨는 비록 자신은 힘든 과정을 거쳐 아이와 함께하는 미혼모이자 싱글맘의 길을 택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사각지대 속 산모들을 위해서는 '보호출산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씨는 "아기를 키우는 건 정말 행복하지만, 동시에 미혼모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기도 하다.
도저히 어려운 상황이라면 아기를 위해서라도 더 나은 가정에서 자랄 수 있게 하는 것이 맞다"며 "산모에게 '책임'이라는 단어를 내세워 과한 짐을 지우기 전에 익명으로 출산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호출산제는 경제적·사회적 곤경에 처한 임신부가 신원을 노출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은 후 지자체에 아이를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을 계기로 지난 8년 사이에만 2천 명이 넘는 출생 미신고 영유아가 존재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함께 알려지면서 영아 유기나 출생 미신고 '유령 아동'을 막을 제도적 장치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의료기관이 아이의 출생을 통보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나는 부작용을 막을 일종의 보완책으로 보호출산제를 함께 들고나온 것이다.
2020년 12월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이듬해 5월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이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는데,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익명출산제, 비밀출산제로도 불리는 보호출산제를 둘러싸고는 찬반 논란이 계속돼왔다.
이씨와 같이 찬성하는 쪽은 임신부가 신원 노출이나 양육은 원하지 않지만 출산을 원할 경우 안전한 환경에서 출산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씨는 "미혼모 시설에서 지낼 때도 그곳에서 만난 임신 중인 여성들 다수가 '아이를 낳으면 입양 보내겠다'고 했지만, 여러 여건상 결국 아이를 데려와 스스로 책임져야만 했다"며 "아기들이 범죄 피해를 당하거나 불안정한 환경에서 크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익명 출산이 허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보호출산제가 임산부의 양육 포기를 부추긴다는 반대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미혼모 단체를 운영하며 많은 미혼모를 만나봤지만, 임신 초기에 충분한 상담을 받고, 다양한 지원책을 연계 받은 여성들의 경우 양육을 결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익명출산제를 도입해 양육 포기를 부추기기보다는 이 같은 지원책을 강화해 아기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해당 제도가 아이를 뿌리 없는 사람으로 자라게 만든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오 대표는 "익명출산제가 도입된다면 친부모가 아이의 양육을 포기할 경우, 아이는 가족관계등록부에 부모가 없는 상태로 기재될 것"이라며 "부모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주어지지 않기에 향후 부모를 찾고자 한다거나 다른 문제가 생겨도 전혀 해결할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혼모단체들로 구성된 시민연대체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도 지난 23일 성명을 내 보호출산제에 대해 "모(母)의 정보를 숨기는 것이 아동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아동의 정체성에 대한 권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익명출산제가 사실상 시행되는 국가에서도 영아 살해, 아동 유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건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경험적 증거"고 주장했다.
학계에서도 보호출산제를 도입을 두고는 견해가 갈리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보호출산제 도입 여부와는 별개로 미혼모들을 위한 제도를 개선하고, 그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을 모은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부 유럽 국가들은 자국민의 혼외출산율이 높음에도 중동 이민자들의 명예살인 등 특수한 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에서 익명출산제를 도입했다"며 "이런 경우 제도가 도입돼도 양육 포기 등 부작용이 적겠으나 우리나라는 미혼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커 혼외 출산율이 낮은 만큼 양육 포기 사례가 많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혼모에 대한 지원책 등을 강화하고 이들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미성숙한 부모에 의해 아이들이 범죄 피해자가 되는 것을 당장 막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 보호출산제 도입을 고려해봄 직하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독일의 '임신 갈등 상담소' 등 미혼모를 위한 상담 창구를 강화하고 관련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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