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표' 하나에 뒤집혔다…천재 화가의 마법같은 '한방'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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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19세기 풍경화 거장
존 컨스터블 vs 윌리엄 터너
수십년간 노력으로
'타고난 천재' 터너 따라잡아
후세에 어깨 나란히
존 컨스터블 vs 윌리엄 터너
수십년간 노력으로
'타고난 천재' 터너 따라잡아
후세에 어깨 나란히

1832년 여름, 영국 사교계는 왕립아카데미 여름 전시에서 벌어진 대결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당대 최고의 풍경화가로 꼽히는 두 화가의 신작이 전시장 한 벽에 나란히 걸렸거든요. 화가의 ‘스펙’만 보면 20대 때 이미 왕립아카데미 정회원이 돼 수십년간 영국 최고의 화가로 군림해온 천재,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승리가 유력해 보였습니다. 이에 맞서는 도전자는 노력파 화가 존 컨스터블. 나이는 터너보다 고작 한 살 어렸지만, 아카데미 정회원이 되는 건 터너보다 27년이나 느렸습니다.



천재 vs 노력파…너무 달랐던 두 화가
터너는 1775년생, 컨스터블은 1776년생입니다. 한 해 터울로 태어난 두 화가지만 기질과 그림 스타일, 커리어와 사생활은 완전히 정반대였습니다.먼저 터너. 그는 런던의 가난한 이발사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10대 때부터 그림을 돈 받고 팔았고, 20대에 왕립 아카데미 회원이 될 정도로 천재성을 보였지요. 일찌감치 예술성과 상업성을 모두 잡았다는 얘기입니다. 이후 그는 자신만의 혁신적인 방식으로 풍경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반면 천재적인 재능에 비해 인간적인 매력은 좀 부족했습니다. 성격이 괴팍했거든요. 또 당시로서는 드물게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컨스터블은 영국 시골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묘사했습니다. 이런 화풍은 당시 미술계의 유행과 잘 맞지 않았기에 작품이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성격은 매력적이었습니다. 사교적이었고 언변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독신이었던 터너와 대조적으로 연애 결혼을 했고 자식도 일곱 명이나 뒀습니다.
무명 화가, 거장의 라이벌이 되다

그런 의미에서 로열아카데미의 준회원이 된 이듬해(1820년) 아카데미 선배가 이렇게 조언한 건 컨스터블의 마음을 아주 불편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자네도 풍경화를 그리는 사람이니, 터너의 그림 기법을 한번 잘 연구하고 따라 해 보게나.”

1831년 컨스터블과 터너의 신경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왕립아카데미에서 여름마다 열리는 전시는 당시 가장 권위 있는 미술 행사이자 화가의 한 해 성과를 공개적으로 평가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결과엔 작품이 전시장 어디에 배치되느냐가 큰 영향을 끼쳤고, 정회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심사를 통해 이를 결정했지요. 그 해 위원회는 터너의 ‘칼리굴라의 궁전과 다리’를 가장 좋은 위치에 걸기로 결정했습니다. 컨스터블의 ‘솔즈베리 대성당’은 그 옆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시 직전 컨스터블은 손을 써서 두 작품의 위치를 서로 바꿨고, 이를 안 터너는 격노해 컨스터블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노력과 사랑으로 따라잡은 천재성
하지만 야속하게도 컨스터블에게 허락된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불과 5년 뒤인 1837년, 컨스터블은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반면 터너는 1851년 사망할 때까지 14년이나 더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터너는 그 시간을 미술에 모두 바쳤습니다. 그리고 희대의 천재답게 인류 미술사에서 그 누구도 나아간 적 없던 빛과 인상주의의 세계를 혼자 힘으로 개척했습니다. 이런 업적에 비하면 컨스터블이 이룬 업적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림 실력은 훌륭했지만, 터너처럼 누가 봐도 혁신적인 새로운 그림을 그린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 정확한 표현과 세밀한 묘사는 들라크루아와 제리코, 밀레와 인상파 등 다양한 이들에게 영향을 남겼습니다. 이는 후세 사람들이 컨스터블을 터너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화가로 기억하게 했고요. 터너가 갖고 있는 번뜩이는 천재성과 혁신적인 면모는 다소 부족해도, 주변을 애정어린 눈으로 꼼꼼히 살피는 시선이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린 겁니다.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참고자료) 'Constable's England'(Graham Reynolds 지음,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전시 간행물), 'Memoirs of the Life of John Constable'(C.R. Leslie 지음), '터너&컨스터블'(정금희 지음, 재원), 'John Constable: A Kingdom of His Own'(Anthony Baily 지음), Tate 홈페이지 'Fire and Water: Turner and Constable in the Royal Academy, 1831' 기사, 워싱턴포스트 'One rivalry changed the landscape in English art' 기사를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과 고고학, 역사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토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2만여명 독자가 선택한 연재 기사를 비롯해 재미있는 전시 소식과 미술시장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