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홍천 잇는 고갯길…과거 시험 보러 다니던 옛길은 명승 29호
근현대 역사 흔적에 금강송·원시림까지…다채로운 농촌 체험은 '덤'
[굽이굽이 별천지] ⑦ 아홉마리 용이 쉬어간 구룡령, 이제는 관광자원
[※ 편집자 주 =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의 발걸음은 길을 만들고, 그 길은 다시 사람을 모아 마을을 만듭니다.

강원도의 산과 강, 바다와 호수를 따라 굽이치는 길 끝에는 반짝이는 주민들의 삶이 모여 있습니다.

북적이던 발걸음은 지역소멸이라는 화두와 함께 잦아들고 있지만, 마을은 그 생생함을 되찾고자 새로운 사연들을 만들어갑니다.

길과 마을에 깃든 27개의 이야기를 연합뉴스가 1년 동안 격주로 소개합니다.

]

'아홉마리 용이 잠시 쉬어갔다는 고개를 넘어 맛보는 한 모금 새콤한 약수는 사람의 오장육부를 깨끗하게 씻어 주기에 더할 나위 없는 명약'
강원 양양 주민들이 구룡령과 갈천약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양양과 홍천을 잇는 구룡령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진부령과 미시령, 한계령에 비해 통행량이 그리 많지 않은 고개다.

하지만 구룡령길(56번 국도)을 따라 펼쳐지는 다양한 레퍼토리는 무궁무진하다.

구룡령 정상에서 갈천약수를 지나 황이리와 서림리, 송천리로 이어지는 구룡령 길을 따라가 본다.

[굽이굽이 별천지] ⑦ 아홉마리 용이 쉬어간 구룡령, 이제는 관광자원
◇ 아홉마리 용의 전설을 간직한 구룡령…정상은 해발 1천13m
구룡령은 양양군 서면 갈천리와 홍천군 내면 명개리를 잇는 고개다.

백두대간에 산재한 고갯길이 그렇듯 구룡령에도 아득한 전설이 전해진다.

'아홉마리 용이 고개를 넘다가 잠시 쉬어 갔다'는 것이 그중 하나고, 또 다른 하나는 '용이 승천하듯 고갯길이 구불구불하다'는 데서 붙여졌다는 것이다.

1554년(명종 5년)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석천 임억령(石川 林億齡)을 비롯해 많은 관리와 문인들이 고개의 아름다움을 시로 노래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56번 국도가 지나가는 고갯길 정상의 해발고도는 1천13m다.

전설이나 지명유래에서 보듯 구룡령은 해발고도가 높고, 고갯길은 백두대간 여느 고개 못지않게 구불구불하고 험하다.

현대식 구룡령 길은 1908년 일제가 물자약탈을 목적으로 처음 개설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1994년 편도 1차로의 포장도로로 정비됐다.

고개 정상에는 한때 휴게소도 있었다.

구룡령은 잘 포장된 지금의 56번 국도 이외의 또 다른 길이 있다.

이른바 지역주민들이 말하는 진짜 구룡령이다.

아홉마리 용의 영험을 기원하며 한양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선비들과 영동과 영서 지역 물자 이동 때 주민들이 이용했던 구룡령 옛길이 그 길이다.

[굽이굽이 별천지] ⑦ 아홉마리 용이 쉬어간 구룡령, 이제는 관광자원
구룡령 옛길 정상은 56번 국도 정상보다 조금 더 높은 1089m다.

56번 국도 정상에 우측으로 1.2㎞ 정도를 더 올라가야 나온다.

여기서 서쪽으로 가면 홍천, 동쪽으로 가면 양양이다.

구룡령 옛길의 총거리는 6.46㎞다.

이 가운데 2007년 12월 17일 명승 29호로 지정된 양양 쪽 2.76㎞ 구간은 해마다 탐방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고갯길을 걷다 보면 묘반쟁이, 솔반쟁이, 회반쟁이 등 특이한 이름을 붙인 곳이 눈길을 끈다.

묘와 솔(소나무), 회(횟가루)가 반쟁이(반정)와 결합한 것으로, 묘반쟁에는 홍천과 양양의 지역 경계가 확신하지 않았던 시절 양쪽 원님이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출발해 만나는 곳을 경계로 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는데 조금이라도 땅을 더 많이 확보하고자 양양 원님을 업고 뛰었던 젊은이가 돌아오던 길에 기진맥진해 죽자 묘를 쓴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솔반쟁이는 소나무가 울창한 반정, 회반쟁이는 횟가루를 생산하던 반정이라는 뜻이다.

2009년 구룡령 옛길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용역을 진행한 양양군은 2018년 옛길을 정비하고 각종 안내판을 세웠다.

[굽이굽이 별천지] ⑦ 아홉마리 용이 쉬어간 구룡령, 이제는 관광자원
갈천리 옛길 다리 입구에 사는 한 어르신은 "해마다 많은 사람이 관광버스를 타고 옛길을 다녀간다"며 "갈천리에서 정상 쪽으로 올라가기보다는 정상에서 갈천리 쪽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엄주현 갈천리 이장은 "구룡령 옛길에는 일제강점기 갈천 철광의 철광석을 운반하던 삭도를 비롯해 1989년 경복궁 복원 당시 재목으로 쓰인 금강송 그루터기 등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역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면서 "금강송과 함께 잘 보존된 원시림 등 생태계까지 인정받으면서 명승으로 지정됐다"고 말했다.

[굽이굽이 별천지] ⑦ 아홉마리 용이 쉬어간 구룡령, 이제는 관광자원
◇ 계곡을 올라야 맛볼 수 있는 갈천약수…위장병에 그만
구룡령 옛길을 내려와 양양읍 방면으로 600여m 정도 이동하면 갈천약수 입구 치래마을이 나온다.

치래는 갈천을 우리말로 풀어쓴 것이다.

갈천리는 예전 생활이 궁핍한 춘궁기에 주변에 많이 나는 칡뿌리(갈근·葛根)로 주민들이 근근이 연명했는데 마을 앞 계곡이 갈분(葛粉) 일색이었다는 데서 유래됐다.

갈천약수는 차에서 내리면 곧바로 만날 수 있는 약수터와는 달리 1㎞ 정도 계곡을 걸어 올라가며 땀을 흘려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이 때문에 갈천약수는 관광객 접근성이 좋은 인근의 오색약수에 비해 찾는 사람이 적다.

하지만 물이 깨끗한 데다가 용출량이 많고 칼슘과 마그네슘, 망간, 탄산 이외 빈혈과 위산과다, 충치 등에 효험이 좋은 철분과 불소가 많다고 알려지면서 고정적으로 찾아오는 주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약수터 주변에는 수질검사 결과 철과 망간 등이 일반샘터 기준을 초과하므로 하루 1리터 이하를 음용하라는 약수 이용 안내문이 붙어있을 정도다.

[굽이굽이 별천지] ⑦ 아홉마리 용이 쉬어간 구룡령, 이제는 관광자원
기자가 약수터를 찾아간 지난 19일 약수터 길목에서 만난 한 주민은 "약수를 받아오던 중"이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약수를 받아다 마시고 있고 확실히 몸에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치래마을 주민 한모씨는 "약수가 좋다는 소문에 30㎞ 정도 떨어진 양양읍에서도 물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있다"며 "약수로 밥을 지으면 파란색이 난다"고 말했다.

◇ 체험이 신나는 황룡마을과 해담마을, 송천떡마을
치래마을을 뒤로하고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마주치는 황룡마을은 농촌체험마을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황룡마을은 원래 이름은 황이리다.

[굽이굽이 별천지] ⑦ 아홉마리 용이 쉬어간 구룡령, 이제는 관광자원
마을을 둘러싼 지형이 마치 귀 달린 누런 황룡이 머무는 형상이라 해 예부터 황이리라고 불렀으나 2007년 1월 마을총회에서 주민 만장일치로 '황룡마을'로 부르기로 했다.

40가구 13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지만, 토종꿀과 인진쑥, 장뇌, 송이, 산채 등 청정 농특산물의 넉넉함이 묻어나는 곳이다.

특히 신라시대 절터인 선림원지를 비롯해 미천골휴양림과 여름철에도 시원한 바람이 솟아나는 얼음굴, 불바라기약수 등은 한번 와본 도시인들을 다시 찾게 만들고 있다.

특히 짚풀공예와 산촌 공예 등 다채로운 농촌 체험은 가족 단위 관광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황룡마을 인근의 해담마을 역시 전국적으로 알려진 농촌체험마을이다.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정보화 마을이기도 한 해담마을은 서울양양고속도로의 양양나들목과 인접해 있어 접근성이 좋다.

해담마을은 산과 산 사이에 해를 담고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굽이굽이 별천지] ⑦ 아홉마리 용이 쉬어간 구룡령, 이제는 관광자원
해담마을에는 연간 6만여명의 외부인이 찾아 캠핑과 숙박, 레저 체험을 즐기고 있다.

시설로는 펜션 18객실(110명 수용)과 방갈로 31동(120명)의 숙박시설을 비롯해 단체워크숍이 가능한 세미나실(120명)과 다목적 체험장(300명)을 갖추고 있다.

텐트 200여개를 칠 수 있는 캠핑장도 갖추고 있다.

아울러 수륙양용차 타기와 물고기 맨손잡기, 카약·뗏목 타기, 활쏘기, 페인트볼 사격, 서바이벌게임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해 이용객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가운데 짜릿함과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수륙양용차 타기는 단연 최고다.

해담마을 다음으로 구룡령길에서 만나는 마을은 송천 떡마을이다.

송천 계곡 물줄기를 끼고 있는 작고 아담한 마을인 송천떡마을은 손으로 직접 빚는 민속 떡으로 유명하다.

사전에 예약하면 떡 만드는 과정을 체험해 볼 수도 있고, 팜스테이도 가능하다.

[굽이굽이 별천지] ⑦ 아홉마리 용이 쉬어간 구룡령, 이제는 관광자원
김성완 송천리 이장은 "송천떡마을은 훈훈한 시골 인심이 살아있는 작고 아담한 마을로, 산의 포근함과 바다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며 "마을을 방문하면 떡 만들기 체험 등을 비롯한 다양한 농촌 체험을 즐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