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빵 먹던 아이들, 어느덧 청년으로…그들에게 또 다른 선물 되길 바라요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세계적 그림책 작가 백희나,
데뷔 20년 만에 첫 개인전
등장인물·배경 등 모형 제작
사진 찍어서 그림책 만들어
몇몇 작품, 실물 크기로 표현
책 속에 있는 듯한 느낌 받아
"매일 가르침만 듣는 아이들
메시지보단 즐거움 주고싶어"
데뷔 20년 만에 첫 개인전
등장인물·배경 등 모형 제작
사진 찍어서 그림책 만들어
몇몇 작품, 실물 크기로 표현
책 속에 있는 듯한 느낌 받아
"매일 가르침만 듣는 아이들
메시지보단 즐거움 주고싶어"
무더운 여름밤. 달마저 뚝뚝 녹아 흐른다. 마을 반장인 늑대 할머니는 녹아내린 달 물을 모아 시원한 샤베트를 만들어낸다. 세계적 그림책 작가 백희나의 <달 샤베트> 속 한 장면이다. ‘백희나 그림책전’ 입구엔 사람 키만한 늑대 할머니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의 뒤로는 노란 달이 녹고 있다. 여름밤을 떠올리게 하는 까만 배경의 입구를 지나면 <구름빵> <알사탕> 등 백 작가의 대표작 속 장면들이 본격적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21일 전시장에서 만난 백 작가는 “전시장 속 점토로 만든 한옥의 나뭇결, 옹이 등을 표현하느라 전날까지 전시장에서 밤을 새웠다”며 웃었다.
백 작가는 2020년 ‘아동 문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받은 국내 대표 그림책 작가다. 이번 전시는 그가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약 20년 만에 여는 첫 대규모 개인전이다. 6월 22일부터 10월 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백 작가는 평소 종이, 점토, 천 등으로 작품의 등장인물과 배경을 직접 제작한 뒤 이를 사진으로 찍어 그림책을 만들어왔다. 이번 전시에는 백 작가의 그림책 11권에 등장하는 모형 약 140점이 나온다. 그는 “환상 같은 이야기가 감동을 주려면 현실적인 디테일이 중요하다”며 “5월부터 매일 전시장으로 출퇴근하며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너무 몸이 힘들다 보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내가 뭐 하러 이런 고생을 한다고 했나’ 싶기도 했어요.(웃음) 그치만 전시장에 올 사람들은 결국 제 책을 좋아해준 독자일 텐데, 제 이야기를 가장 재밌고 실감나게 보여줄 방법을 고민해야 했어요. 한마디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죠.”
전시를 위해 실물 크기로 재현한 모형들은 마치 책 속에 들어간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동네 목욕탕 ‘장수탕’ 속에 사는 선녀를 상상한 <장수탕 선녀님>이 대표적이다. 구슬발이 늘어진 공중목욕탕 입구에 들어서면 요구르트를 마시며 목욕을 즐기고 있는 거대한 ‘장수탕 선녀님’을 마주하게 된다. 하늘색 타일로 둘러싸인 목욕탕에선 수증기까지 보글보글 피어오른다.
백 작가는 “<꿈에서 맛본 똥파리>는 물속 올챙이와 개구리의 이야기라 책 작업을 할 때 연못의 색감을 내려고 노력했는데, 아무래도 종이에 인쇄하면 그 느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 전시회에서는 전시장 바닥에 조명을 설치하고 투명한 아크릴판에 그린 그림을 올려 물속을 바라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림책 작가의 첫 전시는 키 작은 아이들의 눈높이도 살뜰하게 배려했다. 전시물 높이를 아이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정했고, 이야기의 정서를 전달할 수 있도록 조명에도 각별히 신경 썼다.
“관람객들이 마치 몸이 모기만 해져서 <알사탕> 속 동동이 집에 놀러간 것처럼, <달 샤베트> 속 늑대 가족의 아파트에 찾아간 것처럼 느끼셨으면 해요.”(웃음)
그림책에서는 짧게 등장했던 다양한 늑대 가족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즐거움은 덤이다.
“아파트 2층 늑대 가족은 사실 제 가족을 모델로 했어요. 아파트 모형 속 모습처럼 저도 아이들 어릴 때 식탁에 작업물을 늘어놓고 그림책을 만들곤 했거든요. 3층의 늑대는 록가수예요. 그래서 거실에 큰 스피커가 있죠.”
백 작가는 그림책을 쓸 때도, 전시회를 준비할 때도 “아이들에게 뭔가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즐거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은 하루종일 학교에서 ‘~해라’ ‘~하지 마라’ 교훈과 가르침을 듣는다”며 “그림책을 읽을 때만이라도 즐거운 순간을 누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구름으로 구운 빵을 먹으면 몸이 두둥실 떠오르고(<구름빵>) 알사탕을 먹으면 온 세상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알사탕>) 기발한 이야기는 어떻게 상상해내는 걸까. 백 작가는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누구에게나 아이디어는 찾아온다”며 “중요한 건 그 아이디어를 놓쳐버리지 않도록 잘 기록해두고 계속해서 뒷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구름빵>은 그의 대표작인 동시에 아픈 손가락이기도 하다. 백 작가는 신인 시절인 2003년 그림책 <구름빵>을 출간했는데, 출판사 한솔교육에 2차 콘텐츠까지 모든 저작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계약서를 썼다. 책이 흥행하며 뮤지컬 등으로 활발하게 재창작됐지만 백 작가는 계약금 850만원과 인센티브 1000만원을 받는 데 그쳤다.
출판사 등을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냈지만 최종 패소했다. “아무래도 창작자들은 셈에 약해요. 계산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 ‘구름빵’ 같은 걸 상상하긴 힘들겠죠. 그래서 창작자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0년 넘게 이어진 법적 분쟁을 설명할 때도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백 작가는 독자들에게 받은 위로를 말하다가 울컥 눈시울을 붉혔다. “제 초창기 작품을 본 아이들이 이제는 자라서 20대가 됐어요. 한창 소송을 할 때 너무 힘들었는데, 소셜미디어로 한 청년이 ‘제 어린 시절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글을 보내줬어요. 소송은 졌지만 ‘아, 이거면 됐다. 나는 성공한 작가다.’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감동했어요.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백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고 지지해준 독자들을 위해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구름빵>을 보며 자란, ‘구름빵’을 먹으며 자란 독자들에게 이번 전시가 또 다른 선물이 되기를 바랄 뿐이에요.”
전시를 마친 뒤에는 새로운 도전도 계획 중이다. 영상을 활용한 그림책, 이른바 ‘돌 드라마’다. 백 작가는 “흔히 한 우물을 파는 걸 작가의 노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는 것도 작가의 노력”이라며 “바비인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튜브 드라마를 만들어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백 작가는 평소 종이, 점토, 천 등으로 작품의 등장인물과 배경을 직접 제작한 뒤 이를 사진으로 찍어 그림책을 만들어왔다. 이번 전시에는 백 작가의 그림책 11권에 등장하는 모형 약 140점이 나온다. 그는 “환상 같은 이야기가 감동을 주려면 현실적인 디테일이 중요하다”며 “5월부터 매일 전시장으로 출퇴근하며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너무 몸이 힘들다 보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내가 뭐 하러 이런 고생을 한다고 했나’ 싶기도 했어요.(웃음) 그치만 전시장에 올 사람들은 결국 제 책을 좋아해준 독자일 텐데, 제 이야기를 가장 재밌고 실감나게 보여줄 방법을 고민해야 했어요. 한마디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죠.”
전시를 위해 실물 크기로 재현한 모형들은 마치 책 속에 들어간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동네 목욕탕 ‘장수탕’ 속에 사는 선녀를 상상한 <장수탕 선녀님>이 대표적이다. 구슬발이 늘어진 공중목욕탕 입구에 들어서면 요구르트를 마시며 목욕을 즐기고 있는 거대한 ‘장수탕 선녀님’을 마주하게 된다. 하늘색 타일로 둘러싸인 목욕탕에선 수증기까지 보글보글 피어오른다.
백 작가는 “<꿈에서 맛본 똥파리>는 물속 올챙이와 개구리의 이야기라 책 작업을 할 때 연못의 색감을 내려고 노력했는데, 아무래도 종이에 인쇄하면 그 느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 전시회에서는 전시장 바닥에 조명을 설치하고 투명한 아크릴판에 그린 그림을 올려 물속을 바라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림책 작가의 첫 전시는 키 작은 아이들의 눈높이도 살뜰하게 배려했다. 전시물 높이를 아이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정했고, 이야기의 정서를 전달할 수 있도록 조명에도 각별히 신경 썼다.
“관람객들이 마치 몸이 모기만 해져서 <알사탕> 속 동동이 집에 놀러간 것처럼, <달 샤베트> 속 늑대 가족의 아파트에 찾아간 것처럼 느끼셨으면 해요.”(웃음)
그림책에서는 짧게 등장했던 다양한 늑대 가족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즐거움은 덤이다.
“아파트 2층 늑대 가족은 사실 제 가족을 모델로 했어요. 아파트 모형 속 모습처럼 저도 아이들 어릴 때 식탁에 작업물을 늘어놓고 그림책을 만들곤 했거든요. 3층의 늑대는 록가수예요. 그래서 거실에 큰 스피커가 있죠.”
백 작가는 그림책을 쓸 때도, 전시회를 준비할 때도 “아이들에게 뭔가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즐거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은 하루종일 학교에서 ‘~해라’ ‘~하지 마라’ 교훈과 가르침을 듣는다”며 “그림책을 읽을 때만이라도 즐거운 순간을 누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구름으로 구운 빵을 먹으면 몸이 두둥실 떠오르고(<구름빵>) 알사탕을 먹으면 온 세상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알사탕>) 기발한 이야기는 어떻게 상상해내는 걸까. 백 작가는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누구에게나 아이디어는 찾아온다”며 “중요한 건 그 아이디어를 놓쳐버리지 않도록 잘 기록해두고 계속해서 뒷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구름빵>은 그의 대표작인 동시에 아픈 손가락이기도 하다. 백 작가는 신인 시절인 2003년 그림책 <구름빵>을 출간했는데, 출판사 한솔교육에 2차 콘텐츠까지 모든 저작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계약서를 썼다. 책이 흥행하며 뮤지컬 등으로 활발하게 재창작됐지만 백 작가는 계약금 850만원과 인센티브 1000만원을 받는 데 그쳤다.
출판사 등을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냈지만 최종 패소했다. “아무래도 창작자들은 셈에 약해요. 계산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 ‘구름빵’ 같은 걸 상상하긴 힘들겠죠. 그래서 창작자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0년 넘게 이어진 법적 분쟁을 설명할 때도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백 작가는 독자들에게 받은 위로를 말하다가 울컥 눈시울을 붉혔다. “제 초창기 작품을 본 아이들이 이제는 자라서 20대가 됐어요. 한창 소송을 할 때 너무 힘들었는데, 소셜미디어로 한 청년이 ‘제 어린 시절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글을 보내줬어요. 소송은 졌지만 ‘아, 이거면 됐다. 나는 성공한 작가다.’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감동했어요.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백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고 지지해준 독자들을 위해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구름빵>을 보며 자란, ‘구름빵’을 먹으며 자란 독자들에게 이번 전시가 또 다른 선물이 되기를 바랄 뿐이에요.”
전시를 마친 뒤에는 새로운 도전도 계획 중이다. 영상을 활용한 그림책, 이른바 ‘돌 드라마’다. 백 작가는 “흔히 한 우물을 파는 걸 작가의 노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는 것도 작가의 노력”이라며 “바비인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튜브 드라마를 만들어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