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항공기 부품과 첨단 반도체 등 대(對)러시아 수출금지 물품을 수입해 러시아에 재판매하는 기업들을 제재하기로 했다. 다만 단속 대상은 주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옛 소련 국가 기업이며 중국 기업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EU 상반기 순환의장국인 스웨덴 정부는 21일(현지시간) 상주대표회의에서 EU 대사들이 11차 대러 제재안에 합의했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제재안 전문은 EU 이사회 최종 승인을 거쳐야 확정되기 때문에 아직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는 않았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잠정 합의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회피 방지 도구'는 러시아가 제재 품목을 확보하는 것을 막게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11차 제재안은 기존 제재를 우회하거나 회피하는 행위를 단속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제3국의 특정 기업이 EU산 제품을 먼저 자국에 보낸 다음, 이를 다시 러시아로 판매한 사실이 확인되면 제재 대상이 될 전망이다. 제재 초안은 지난달 작성됐으나 헝가리와 폴란드 등이 자국 기업이 포함될 가능성 때문에 반대하면서 합의가 지연됐고, 최종적으로는 이들 국가 기업을 제외하면서 합의에 이르렀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적 기업들이 제재 대상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해당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EU산 제품 수입이 비정상적으로 급증해 러시아의 제재 우회 경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의심이 제기됐다. 이와 함께 군사용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 제품 수출이나 민감한 기술의 제3국 이전을 통제하는 방안도 처음으로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이 조처의 경우 '예외적인 경우'에 국한해 발동하기로 했다. 중국 기업의 경우 초안에는 최소 5곳이 포함됐으나 중국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압력을 행사해 규제 폭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유로뉴스는 익명의 EU외교관들을 인용해 "중국 기업 3곳 정도가 최종적으로 규제대상에 올랐다"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달 초안 내용이 언론에 유출된 이후 EU 집행위와 중국 간 고위급 접촉에서 중국 측이 자국 기업이 러시아에 제품 판매를 중단하도록 압박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전했다. EU 이사회는 잠정 합의 결과를 토대로 이르면 이날 오후 최종 승인을 시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확정 시 새 제재안은 23일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