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 살림 제주서 루이 암스트롱 듣던 소년…K-재즈 1세대로 '우뚝'
웅산·마리아킴 등 후배들과 헌정 앨범…"재즈는 예측불허해야"
김준 "인기 있으나 없으나 노래가 천직…재즈는 영혼의 음악"
"나는 시대의 변화라든가 대중적 인기를 의식하고 노래를 한 적은 없어요.

인기가 있으나 없으나 그저 노래를 천직으로 알았을 뿐입니다.

"
1950년대 전란을 피해 제주도 생활을 하던 한 중학생은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미군 부대에서 우연히 '재즈의 전설'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을 듣고 '이런 음악이 있다니' 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10여년 뒤인 1963년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던 쟈니 브라더스의 멤버로 성장한 그는 서울 워커힐 개관 공연에서 루이 암스트롱이 명곡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를 부르는 모습을 직접 지켜봤다.

이로부터 60년이 흘러 어느덧 80대가 된 이 가수는 자신의 인생 여정을 망라한 음반의 마지막 수록곡으로 이 '왓 어 원더풀 월드'를 직접 불러 녹음했다.

바로 '한국 재즈 1세대 보컬리스트' 김준(83) 이야기다.

그는 경희대 성악과 출신으로 그룹 쟈니 브라더스에 몸담아 히트곡 '빨간 마후라'를 배출했다.

그룹 해체 이후 1969년 이래 지금까지 솔로 재즈 가수로 활동해왔다.

지난 20일 연합뉴스와 만난 김준은 "재즈는 영혼의 음악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핵심은 예측불허와 행위의 자연스러움이다.

클래식이나 국악도 접해봤지만 내게는 가장 으뜸가는 게 재즈더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고등학생 때까지는 축구를 했는데 스포츠와 재즈의 정서가 일맥상통하더라"며 "리듬이 필요하다는 것과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점에서다.

가장 자연스러운 음악이 가장 아름답다"는 소신을 밝혔다.

김준 "인기 있으나 없으나 노래가 천직…재즈는 영혼의 음악"
김준은 최근 후배 가수 웅산과 마리아킴 등이 참여한 헌정 앨범 '왓 어 원더풀 월드 - 어 트리뷰트 투 김준'을 내놨다.

그는 직접 부른 유일한 곡인 '왓 어 원더풀 월드'에서 푸른 나무, 빨간 장미, 알록달록 무지개, 친절한 이웃의 인사 등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무심하듯 자연스레 표현해냈다.

김준은 "처음 들었을 때 일상을 노래한 이 곡이 동요 같으면서도 참 재즈스럽다고 생각했다"며 "노래라는 것이 이렇게 자연스러워야 대중에게 잘 전달되겠다고 생각했고, 이후 60년간 그러한 생각으로 음악을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노래는 웅산이 꼭 불러보라고 추천해서 넣은 것"이라며 "내가 좋아서 앨범에 실은 것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재즈는 가장 창의적이고, 창조적이며, 편안한 음악입니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거나,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음악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존재하는 음악이랄까요, 가장 자기 자신을 닮는 음악이죠."
그는 "나마저도 아직도 재즈가 어렵지만 일단 관심을 두고 듣다 보면 친숙해질 수 있다"며 "나도 1960년대 초 대학생 시절 AKFN 라디오를 듣고 채보해 멜로디와 가사를 따 재즈 레퍼토리를 만들곤 했다"고 돌아봤다.

"1960년대 '빨간 마후라'가 크게 히트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쟈니 브라더스가 영원할 수는 없으니 재즈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준비했어요.

토니 베넷이나 프랭크 시내트라 같은 가수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1세대라는 자부심이 컸죠."
앨범에는 웅산, 마리아킴, 이주미, 유사랑 같은 재즈 뮤지션 외에도 참여자로 김장훈이 이름을 올려 눈에 띈다.

김장훈은 '왜냐고 묻지 말아요'를 불렀는데, 김준은 그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소화를 잘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김준은 "동료 재즈 뮤지션에게 인정받는 가수가 되고자 살아왔기에 선배부터 후배까지 함께 참여한 앨범 구성은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한다"며 "음악적인 공감대가 없으면 협업이 안 되는데, 서로 뜻이 잘 맞았다"고 짚었다.

김준 "인기 있으나 없으나 노래가 천직…재즈는 영혼의 음악"
동료에게 인정받는 가수가 되겠다는 다짐은 1960년대부터 60년 넘게 계속돼 온 것이라고 한다.

사실 그가 패티김에게 준 '사랑하니까' 속 인상적인 가사 '행복을 기다리며 살리라'는 남녀 연인의 이야기가 아닌 부끄럽지 않은 음악인이 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었다고 했다.

김준은 그러면서도 "이 같은 다짐 때문에 음악과 나의 관계는 연인 같을 수도 있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이달 초 어느 공연을 마친 뒤 넘어져 골절상을 입고 입원 치료 중이다.

다행히 치료 경과가 좋아 다음 달 5일 서울 섬유센터 3층 이벤트홀에서 열리는 앨범 발매 기념 공연 무대에 예정대로 선다.

이 자리에서 '왓 어 원더풀 월드'와 아내를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재지 레이디'(Jazzy Lady)를 들려줄 계획이다.

"곡은 일상 속의 교감에서 주제를 찾아 만들려고 해요.

마치 하루하루 쓰는 일기처럼요.

재즈는 제 신앙과도 같거든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