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가택연금 도중 탈출한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이 4년 만에 닛산을 상대로 10억달러 규모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곤 회장은 자신이 1990년대 후반 경영 위기에 몰린 닛산을 되살려냈음에도, 프랑스와 일본 기업의 주도권 다툼에 휘말려 희생됐다고 주장한다.

20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은 2018년 자신을 축출하기 위해 각종 범죄 혐의를 뒤입어 씌운 닛산과 회사 관계자 등을 상대로 재정적·정신적 손실와 명예훼손 등 손해를 배상하라며 10억달러 규모의 소송을 지난달 레바논 법원에 제기했다.

곤 전 회장은 2018년 11월 자신의 닛산자동차 보수를 축소 신고한 혐의로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일본 검찰에 전격 체포돼 구속기소됐고, 이후 닛산자동차와 미쓰비시자동차 르노자동차 회장직에서 잇따라 해임되거나 사임했다. 이후 가택연금을 조건으로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뒤 이듬해 12월 자신의 전용기를 타고 레바논으로 탈출했다.

이 사건은 일본 닛산과 프랑스 르노 간 알력 다툼 속에서 빚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말 경영 위기를 겪고 있던 닛산자동차는 르노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2010년대 중반 닛산이 르노를 오히려 앞지르게 된 상황에서 르노는 닛산 지분 43.4%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로서 닛산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반면 닛산은 르노 지분 15%를 보유하지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곤 회장은 쿠데타를 일으킨 일본 닛산 경영진이 자신을 축출하려고 음모를 꾸며 각종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0년 유엔 패널 역시 곤이 100일 이상 일본 감옥에 구금된 것은 합리적이지 않으며 그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곤 전 회장을 네 차례 연속으로 체포하여 구금을 연장한 결정은 "근본적으로 불공정하다"고 지적했다.

곤 회장은 이번 소장에서 "심각하고 민감한 비난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이라며 "단순 의혹에 근거한 것이지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남은 생애 동안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블룸버그는 "일본 사법부의 협조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