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아동극장…한형석 선생 "백권의 독서보다 더 효과"
[정전 70년, 피란수도 부산] ⑫ 예술로 아동 계몽 자유아동극장
'백권의 독서보다 더 빠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교육영화를 비롯해 음악·아동극·무용·인형극 등으로 아동의 지식 계몽과 정서 육성에 이 아동극장이 발휘할 기능의 범위는 방대하다.

'
1953년 8월 15일 부산 서구 부민동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극장인 '자유아동극장'의 창립 취지서 문구이다.

자유아동극장은 전쟁의 포화로 거리에 부랑아동, 걸식아동이 넘쳐날 때 독립운동가 출신인 한형석 선생이 "예술로서 어린이들을 구제하겠다"며 설립한 것이다.

한 선생은 독립운동가인 부친 한흥교 선생의 차남으로 태어나 부친을 따라 중국에서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음악과 예술에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총칼 대신 '선율'로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이다.

한 선생은 1939년 10월 중국 중경에서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결성되자 예술 조장을 맡아 군가인 '한국행진곡', '항전가곡'을 작곡했다.

1941년 1월 광복국 제5지대에서 활약할 때는 '광복군가집' 1, 2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한국 최초의 오페라 아리랑(1939)의 작곡자이기도 하다.

일제가 패망한 뒤 고향인 부산으로 귀국한 한 선생은 6·25전쟁 기간 고통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유아동극장을 설립하게 됐다.

당시 남포동에 있던 국립문화극장의 극장장이던 한 선생은 극장이 화재로 손실되자, 서구 부민동 경상남도청 뒤편에 있던 창고를 개조해 아동 극장을 건립했다.

[정전 70년, 피란수도 부산] ⑫ 예술로 아동 계몽 자유아동극장
한 선생은 아동 극장을 설립하려고 사재를 털었다.

전문 목수를 고용할 돈이 부족해 직접 공사를 하고, 한 선생 어머니도 공사비에 보태기 위해 전화기를 팔아야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한 선생은 극장 건립한 후 2년간 500여 회에 걸쳐 아동극·그림극을 무료 상영했다.

극장 안에 아이들이 빼곡하게 들어설 때는 450명이 동시 관람하는 것도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동극장에서는 1951년 만들어진 세미다큐멘터리 영화 '낙동강'이 상영되거나 '유관순전', '안창남 비행사' 같은 영화들, 요술 반지, 흥부와 놀부 같은 인형극이 재생되기도 했다.

한 선생은 아동극장 창립 취지서에서 "이러한 일은 원칙적으로 국가가 설립 운영해야 하는 것이나 막연히 그날만을 기다릴 수 없었다"면서 "미력이나마 합하고 기울여 이 시급하고도 다난한 사업에 첫 길을 들어가려고 한다"며 말했다.

한 선생의 이런 신념에도 극장은 재정난에 시달리다가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한 선생이 부산대 문리대 중국어과에 강의를 나가며 아동극장 운영비에 보탰으나 무료 공연과 한 선생의 잇따른 기부로 정작 식구들을 먹일 쌀이 바닥나는 등 어려운 상황이 잇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17일 한종수 한형석기념사업회 이사는 "자유 아동극장 설립은 피란지 부산에서 떠돌던 결식, 부랑, 행상 아동들에게 용기와 삶의 희망을 던져주기 위한 예술 활동이었다"면서 "예술의 사회적 참여의 표본"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