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진술, 청바지, DNA 등 증거 인정…징역 12년→20년형 선고
사건 파악에 매진한 피해자 "가해자 평생 사회에 나오지 말아야"
[돌려차기 그후](상) 폭행사건에서 성범죄로…1년만에 항소심 판결
[※ 편집자 주 = 부산 중심가 서면에서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폭행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항소심 판결이 1년 만에 나왔습니다.

이 사건은 범죄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항소심 판결에 이른 경과와 의미, 신상 공개 논란과 제도적 개선책 등을 두 차례에 나눠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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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차기 그후](상) 폭행사건에서 성범죄로…1년만에 항소심 판결
부산 중심가인 부산진구 서면에서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해 의식을 잃게 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시작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출소 후 누범 기간이던 30대 남성 A씨는 2022년 5월 22일 오전 5시께 귀가하던 B씨를 10여 분간 쫓아갔다.

이후 한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B씨를 향해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당시 A씨는 172cm의 신장에 체중 88kg 정도였는데 본인보다 훨씬 작은 체구의 B씨에게 체중을 실어 돌려차기했다.

무방비 상태에서, 그것도 옆에서 갑자기 날아오는 돌려차기를 맞은 B씨는 그대로 쓰러졌으나 A씨의 폭행은 계속됐다.

A씨는 의식을 잃은 채 쓰러진 B씨를 복도 구석으로 옮겼지만, 마침 오피스텔 복도에 나타난 입주민들의 인기척을 느끼자 그대로 달아났다.

여기까지의 정황에 따라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됐던 A씨는 지난해 10월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사건 초기에는 '묻지마 폭행'으로 알려졌으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돌려차기 그후](상) 폭행사건에서 성범죄로…1년만에 항소심 판결
◇ 1심은 징역 12년, 2심은 징역 20년
항소심이 진행되면서 사건 당시 강간살인미수 정황이 드러났다.

범행 현장 CCTV에 이어 사건 당시 출동 경찰관의 진술, 사건 당시 B씨가 입었던 청바지 등이 중요한 증거로 제출됐다.

저절로 벗겨지기 어려운 구조였던 B씨의 청바지 안쪽에서 A씨의 DNA도 검출됐다.

검찰은 공소사실을 살인미수에서 강간살인미수로 변경했다.

A씨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며 줄곧 혐의를 부인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12일 선고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성폭력 범죄의 수단으로 범행했다"며 성범죄 관련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

이에 A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정보통신망에 신상 공개,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 취업 제한,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 삼았고, 머리만을 노려 차고 밟았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피해자를 끌고 갔고, 다량의 출혈이 있던 피해자를 상대로 성폭력 범죄로 나아가려 했다"고 판결했다.

이어 "확실한 예견이 없어도 자신의 폭행이나 그에 이른 성폭력 실행 과정에서 피해자가 사망할 수 있다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양형 사유에 대해 "최초 목격자 등의 증언과 피해자가 입고 있던 청바지 및 DNA 검증 결과, 경찰과 구급대 기록 등에 비추어 보면 A씨가 피해자를 실신시켜 구석으로 끌고 가 청바지와 속옷을 벗겼다가 다시 입혀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살인 범행이 미수에 그쳤고 그 고의도 미필적인 점, B씨의 옷을 벗긴 행위에서 나아가 실제 성폭력까지 실행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한 점 등을 들었다.

불우하고 불안정한 성장 과정을 보낸 사정 등도 참작됐다.

검찰은 35년을 구형했었는데 선고 이후 법조계에서는 '강간살인미수에 걸맞은 형량은 아니다', '법원이 사건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등의 엇갈린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돌려차기 그후](상) 폭행사건에서 성범죄로…1년만에 항소심 판결
◇ 재판에 매달린 피해자 "저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
1심 첫 공판부터 빠짐없이 재판에 참석한 피해자 B씨는 그동안 생업을 뒤로 미룬 채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에 온 힘을 쏟았다.

돌려차기를 맞은 직후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당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B씨는 개인정보 유출 위험까지 불사하며 민사소송을 제기해 CCTV 영상과 포렌식 결과 등 1천600쪽이 넘는 수사자료를 혼자서 모았다.

피해 당사자였지만, 수사 과정에서는 사건의 실체에 접근할 수 없었다.

B씨의 노력으로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세간의 관심이 쏠렸고, 수사기관과 재판부도 이를 가볍게 보지 않게 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결심공판에서 B씨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별도로 주고 경청했다.

B씨는 "검사님과 판사님에게는 하나의 사건이지만 저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이라며 "선량한 시민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엄정한 판단을 해달라"며 참았던 울음을 쏟았다.

이어 재판부는 B씨에게 동의를 구한 뒤 진술 의견서를 재판 기록에 첨부했다.

1년 만에 성범죄까지 인정된 항소심 선고가 내려졌지만, B씨의 고통은 여전하다.

B씨는 "성범죄와 관련해서 모두 인정받은 것에 대해서는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지난 1년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면서도 "살아있는 피해자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텐데, 평생 그 사람이 사회에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게 제일 큰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을 통해 사건을 공론화하고, 관련 자료를 집요하게 파악하려는 것을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며 "피해자라면 지난 일을 잊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기 마련이고, 그것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어떻게 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