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과 이권 카르텔' 언급하며 '공교육 밖 출제 배제' 재차 강조
올해 수능 출제 방향 등에 파장 주목…학부모·수험생 혼란 우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5개월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교육당국이 수능 출제와 관련해 이례적으로 강한 언급을 내놓으면서 올해 입시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주목된다.

특히 윤 대통령이 '교육과정 밖 수능 출제'를 질타하면서 이를 사교육업체와의 '이권 카르텔'로 묘사하고, 교육부가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한 감사까지 실시하겠다고 나서면서 교육계는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수능 5개월 앞두고 나온 '공정수능론'…출제기관 감사까지(종합)
◇ "尹, 3월부터 '공정수능' 지시…평가원 감사"
교육부는 16일 오후 브리핑에서 전날 윤 대통령이 한 수능 관련 발언에 대해 수능 난이도가 아닌 '공정한 수능'에 대한 지시였다며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공교육 교육과정 밖에서 수능이 출제되면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므로, 이는 공정하지 않다는 것인데 윤 대통령이 국정기조로 내세우고 있는 '공정'이라는 키워드를 수능 출제와도 연결지은 것으로 해석된다.

교육부는 특히 윤 대통령이 이러한 '공정 수능' 방향을 지난 3월부터 지시했음에도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면서 이날 교육부 입시담당 국장을 전격 교체하고 평가원에 대한 감사 방침까지 거론했다.

대통령실은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을 대기발령 조치한 것과 관련, "강력한 이권 카르텔의 증거로 오늘 경질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국내 사교육비가 코로나19를 거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상황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 지나치게 어려운 수능이 사교육비 상승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이러한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원칙론에는 공감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담당국장 경질과 출제기관 감사로까지 이어진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혼란을 키울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특히 수능 출제와 관련해 출제기관이 감사까지 받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일각에서는 당장 오는 9월 모의평가와 11월 본 수능 출제위원들이 이러한 흐름을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여 출제에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브리핑에서 "(대통령 발언이)쉬운 수능으로 가야 한다는 취지는 결코 아니다"라며 "어려운 문제라고 하더라도 학생들이 학교 교육과정에서 배우는 범위에서 출제해야 한다는 거지 무조건 어려운 문제를 배제하라는 정책 방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올해 수능 난이도 두고 해석 분분…학부모는 혼란
전날 대통령실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수능의 경우) 변별력은 갖추되 학교 수업만 열심히 따라가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출제하고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출제에서 배제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교육부는 몇시간 뒤 발언 내용을 구체화하면서 수정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과도한 배경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비문학 문항 등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수능에서 다루면 이런 것은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고 전했다.

교육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최근 수년간 이어진 '불수능' 논란과 수능의 초고난도 문항(킬러문항)을 사교육비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사실상 '쉬운 수능'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했다.

실제 지난 2022학년도 수능의 경우 표준점수 최고점이 국어(149점)는 역대 두 번째로 높았고, 수학(147점)은 전년보다 10점이나 상승해 역대급 '불수능'으로 불렸다.

이런 여파 등으로 올해 초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과 EBS 교재와의 연계를 강화해 수험생의 체감 난도를 낮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수능을 불과 5개월 앞둔 시점에서 난이도 논란이 일 조짐이 보이자 대통령실은 16일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쉬운 수능', '어려운 수능'을 얘기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하며 다시 진화에 나섰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서면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아예 다루지 않은 비문학 국어 문제라든지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 문제 출제는 처음부터 교육당국이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으로서 아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수능을 '쉽게 내야 한다'는 지침을 준 것이 아니라 변별력을 갖출 수 있도록 난이도를 조절하되 공교육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수준의 문항 출제를 배제해야 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장상윤 차관도 "사교육비 문제에 대한 인식 속에 '공정한 수능'에 대한 (대통령) 지시는 3월부터 있었다"고 설명하며 난도 조절을 위한 킬러문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통령이 대입과 관련해 원론적인 발언을 한 적은 많지만, 수능 출제를 언급하며 강한 메시지를 내놓은 적은 드물다.

자칫하면 입시를 앞둔 학생·학부모에게 혼란을 줄 수 있어서다.

교육계에서는 2002학년도 수능 직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쉽게 출제한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었다가 충격을 받은 학부모와 학생들을 생각할 때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데 이마저도 수능을 앞둔 시점이 아닌 수능이 끝난 이후였다.

학생·학부모들은 대통령실의 '수능 발언 주워담기' 때문에 혼란스럽다는 입장이다.

경기도 김포에 거주하는 한 고3 학부모는 "대통령 말 한마디가 수능에 엄청난 영향력을 줄 것이고 시험의 출제 방향이나 난이도도 영향을 받을까 두렵다"며 "중요한 시기인데 아이들이 공정한 시험 치를 수 있도록 발언을 조심할 필요가 있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다른 고2 학부모는 "수험생들은 전략을 다 짜놓고 공부하는 상황인데 올해 수능 경향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 불안한 것이고, 9월 모평이 대통령 때문에 쉽게 나온다면 더 불안해질 것"이라며 "(대통령은) 사교육 잡기 위해서 발언을 꺼낸 것 같은데 사람들이 불안해지면 더 사교육 찾게 돼 있다"고 꼬집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