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파업 손해배상 1·2심 파기환송…"조합원마다 관여 정도 달라"
"조합원 손배 책임 완화하려는 노란봉투법 사실상 효력" 해석도
'파업→매출 무관' 증명되면 손해액에서 제외해야
대법 "파업 조합원 손배책임 개별로 따져야"(종합2보)
불법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개인에게 사측이 생산 차질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때 불법 행위의 정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쟁의행위로 인한 노동조합과 노조원의 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의 입법 목적과도 가까운 판단이라는 점에서 국회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5일 현대자동차가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노동조합의 의사결정이나 실행행위에 관여한 정도는 조합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 제한의 정도는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조합원으로서는 쟁의행위가 다수결에 의해 결정돼 방침이 정해진 이상 쟁의행위의 정당성에 의심이 간다고 해도 노동조합의 지시에 불응하기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봤다.

또 "급박한 쟁의행위 상황에서 조합원에게 쟁의행위의 정당성 여부를 일일이 판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근로자의 단결권을 약화할 우려가 있다"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이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노동조합과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 파업을 주도한 노동조합과 달리 참여 조합원 개인에 대해서는 참작할 사정이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이 같은 판단은 야권이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 쟁점 조항의 입법 취지와 방향이 유사하다.

노란봉투법에는 '법원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담겼다.

노동자가 노조 활동을 하다가 사측에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는 부담을 완화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이 이날 노조의 불법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서 노동자마다 개별적인 책임 제한이 가능하다는 판례를 수립하면서 노란봉투법이 입법되지 않더라도 사실상 효력을 갖게 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대법원 판결은 법리 해석에 대한 일종의 기준점을 제공해 하급심 판단은 물론 각종 법률 사무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노동쟁의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해 예외적으로 조합원별로 책임제한의 정도를 개별적으로 달리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을 설시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의 피고 조합원들은 2010년 11월∼12월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에 참여해 울산공장 일부 라인을 점거했다.

현대차는 공정이 278시간 중단돼 손해를 봤다며 파업 참여자들을 상대로 2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2심 모두 노동조합의 불법 쟁의행위에 참여한 노조원들에게도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2심은 조합원들의 책임을 50%로 제한해 전체 배상금을 135억7천만원으로 산정했으나 법원이 판결하는 배상금이 현대차의 청구액을 넘을 수 없어 총 20억원의 배상금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 "파업 조합원 손배책임 개별로 따져야"(종합2보)
대법원은 또 이날 현대차가 2013년 7월 파업과 관련, 노조원 5명을 상대로 낸 다른 파업 손해배상 사건의 상고심도 선고했다.

대법원은 불법 쟁의행위에 따라 생산량이 줄었더라도 이것이 매출 감소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이 증명되면 손해액 산정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판단을 새롭게 내놨다.

이 역시 파업한 노조의 손해배상 부담을 더는 판결로 해석된다.

제조업체가 쟁의행위로 손해를 봤다고 소송을 내면 손해배상 책임의 인정 여부와 더불어 손해액을 얼마나 인정할지도 큰 쟁점이다.

그간 보통 법원은 '생산 감소가 매출 감소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추정을 전제로 손해액을 계산하면서 업체가 낸 임차료 등 고정비용을 포함했다.

그러나 생산에 일시 차질이 빚어졌을 뿐 매출은 줄지 않았다면 이 같은 전제는 깨진다.

대법원은 불황, 적자제품, 결함 등 특별한 경우만을 매출이 감소하지 않는 예외로 인정해왔다.

이날 대법원은 이 법리를 보다 폭넓게 적용해 '매출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것이 간접적으로라도 증명된다면 업체의 고정비용을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에 넣을 수 없다고 봤다.

추가 생산으로 부족한 생산량을 메꾼 경우 등을 예시로 들었다.

대법원은 "자동차와 같이 예약방식으로 판매되거나 제조업체가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다면 생산이 다소 지연돼도 매출 감소로 직결되지 않을 개연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족 생산량이 만회됐는지를 심리, 판단하지 않고 피고들의 생산량 회복 주장을 배척했다며 원심판결 중 피고들 패소 부분을 파기환송했다.

2018년 상고된 이 사건은 애초 대법원 3부에 배당됐다가 지난해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 사건으로 지정됐으나 9일 다시 3부로 변경됐다.

현대차가 노조원과 노조를 상대로 낸 다른 상고심 3건도 이날 선고됐다.

이 사건들은 2심에서 최대 3억2천만원까지 손해배상 판결이 나왔지만 대법원은 3건 모두 원심판결을 깨고 다시 재판하라며 2심 법원에 돌려보냈다.

이찬우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은 판결 뒤 "노동3권 보장에 대한 사법부의 시각이 끝내 변하지 않은 것을 규탄한다"며 "파업은 노동자의 당연한 방어권"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

산업계에 미칠 파장도 우려된다"며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파기환송심에서 잘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