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 신검’부터 난관 … K2 전차 ‘국산 변속기’의 운명은
정부, 방추위서 K2 4차 양산 의결 … K2 150대 추가 확보
튀르키예로 수출된 S&T다이내믹스의 변속기 탑재 가능성
기품원 “새 제품으로 시험평가” … 업체는 “기존 것 쓰겠다” 대립
전문가 “獨 부품 의존 낮춰야 하지만, 무조건 국산화 고집은 위험”

정부가 내년부터 진행되는 차기 K2 '흑표' 전차 양산에 국산 변속기 적용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동안 변속기 개발을 맡아온 제작업체와 양산을 위한 시험평가 기준을 두고 대립하고 있어 실제 국산 변속기 채택까지는 난관이 예상된다. 방산업계 일각에선 "군당국이 전차 국산화에 집착해 '애국주의 함정'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SNT다이내믹스, 튀르키예 전차 변속기 수출

방위사업청은 이달 초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 보고에서 K2 전차에 국산 변속기를 적용하는 문제와 관련 “(지난) 3차 양산까지 해외 변속기를 장착했지만 최근 품질개선 결과 등을 고려해 4차 양산 시 국산 변속기 적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 경기도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딴신 주한 미얀마 대사(앞 전차 왼쪽)를 비롯한 주한 외교단이 육군 8기동사단의 K2전차를 탑승체험하고 있다./ 뉴스1
지난 5월 경기도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딴신 주한 미얀마 대사(앞 전차 왼쪽)를 비롯한 주한 외교단이 육군 8기동사단의 K2전차를 탑승체험하고 있다./ 뉴스1
정부는 지난달 25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고 K2 전차 4차 양산계획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따르면 내년부터 2028년까지 5년간 약 1조9465억원을 투입해 주력 전차로 K2 전차 150여 대를 추가 확보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같은 계획에 따라 정부와 군은 K2 전차의 4차 양산에 들어가는 '파워팩'(엔진+변속기)을 완전히 국산화하는 방안을 계획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K2 전차에는 국산 엔진에 독일산 변속기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까지 폴란드로 수출된 22대의 K2 전차도 독일산 변속기를 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NT다이내믹스의 전차용 6단 자동변속기./SNT다이내믹스
SNT다이내믹스의 전차용 6단 자동변속기./SNT다이내믹스
방사청이 변속기를 국산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이전까지 국산 변속기 개발을 맡았던 SNT다이내믹스(옛 SNT중공업)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방사청은 “수출용으로 우선 생산되는 변속기에 국방 규격을 적용해 품질검사를 조기에 완료할 것”이라고 했다. 수출용 생산 변속기는 올초 SNT다이내믹스가 튀르키예에 수출한 1500마력 변속기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SNT다이내믹스는 공시를 통해 2억유로(약 2700억원) 규모의 변속기 수출 계약을 공개했다. 당장 올해부터 2027년까지 6893만유로 규모의 튀르키예 알타이 전차용 변속기를 튀르키예 방산업체인 BMC사에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미 튀르키예에 수출된 변속기가 차기 양산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업체 측 "시험평가 면제→기존부품 사용 평가 원해"

주무부처인 방위사업청과 품질검사를 주관하는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은 K2 4차 양산 관련해 올초부터 변속기 업체 측과 줄다리기를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 SNT다이내믹스는 방사청 등에 “튀르키예의 주력 탱크에도 공급할 만큼 인정받았으니 기품원 주관 품질검사를 면제해달라”고 주장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방사청은 '방위사업 품질관리 규정'을 들어 ‘예외는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 규정에는 방위사업본부가 지정한 조달품목에 대해 기품원이나 조달청을 통해 품질보증을 반드시 하도록 돼 있다.

그러던 중 방사청이 4차 양산 계획을 밝히고 변속기 공급을 위한 민간업체 입찰 계획을 세우자 SNT다이내믹스도 품질검사를 받는 방향으로 입장을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품원 등이 “변속기 부품 등을 새로 제작해 시험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비해 업체 측은 “과거 시험평가 때 쓰인 부품 등을 활용한 변속기로 시험평가를 받게 해달라”고 맞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은 조만간 추가 협의를 통해 시험평가를 위한 변속기 관련 기준을 정할 계획이다.
지난 4월 튀르키예 육군에 인도된 한국산 파워팩이 탑재된 신형 MBT(주력탱크) '뉴 알타이'(New Altay)./ BMC
지난 4월 튀르키예 육군에 인도된 한국산 파워팩이 탑재된 신형 MBT(주력탱크) '뉴 알타이'(New Altay)./ BMC
기품원 등은 과거 내구도 성능 테스트에서 불발된 부품이 시험평가에 쓰일 수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군은 파워팩 국산화를 위해 2005년부터 변속기 개발사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2016~2017년께 K2전차 파워팩에 장착하기로 계획한 국산 변속기가 내구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당시 테스트 중 변속기 내 볼트 부품이 파손돼 K2의 내구도 검사 국방규격인 ‘고장 없이 9600㎞ 주행’을 충족하지 못했다. 이는 K2 2·3차 양산에서 국산 엔진과 독일산 변속기를 조합한 ‘혼합 파워팩’을 장착하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업체 측은 ‘비용’ 문제로 기존 부품 활용을 고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새로 부품을 제작해 테스트받기에는 돈이 많이 들고, 기존 부품의 품질 문제라기보다 지나치게 가혹했던 국방규격 조건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4차 양산을 위한 시험평가에서도 변속기 320시간 내구도 검사(9600㎞) 등 기준은 그대로다.

"국산화 고집 위험…고품질 무기 우선시해야"

군사 전문가들은 부품 국산화도 중요하지만 국산화율에 집착해 품질을 떨어뜨릴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 다수다. 한국 무기가 ‘K방산’ 브랜드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성능이 다소 떨어져도 국산을 써야 한다'는 식의 관점은 위험하다는 견해가 많다. K9 자주포는 국산화율이 80% 정도로 엔진이 독일산이다. 그런데도 세계 자주포 시장에서 ‘한국산 명품 무기’로 인정받고 있다. 군사 기고가인 최현호 밀리돔 대표는 “국산화를 고집하다 보면 자칫 우리만의 '우물 속 개구리'가 될 수 있다”며 “세계 시장에 통할 수 있는 고품질 무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월 폴란드 토룬 포병사격장에서 한국이 수출한 K9 자주포가 표적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월 폴란드 토룬 포병사격장에서 한국이 수출한 K9 자주포가 표적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연합뉴스
글로벌 방위산업 시장에서 독일과의 경쟁이 곳곳에서 심화되고 있어, 독일산 변속기가 한국 무기 수출의 발목을 잡는다는 리스크도 있다. 독일산 변속기를 장착하면 K2 전차를 해외에 수출할 때 독일의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 방산업계 관계자는 “엔진 변속기 분야는 한국이 선진국에 비해 기술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국내 방산업계에서도 '국산이니까 써달라’가 아니라 ‘좋은 국산품이니 쓴다’는 방향이 될 수 있도록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