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성장 펀드' 막판협상…벤처 투자 빙하기 속 대안 될까
법안 처리 땐 ETF처럼 비상장 벤처기업 투자 가능
자본시장법 개정안, 20일 법안소위서 논의 예정
업계
논의 길어지면 자금수혈 골든타임 놓칠 것
벤처·스타트업계의 숙원 사업인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법안의 본격적인 법안 심사가 시작된다. BDC는 공모펀드 형식으로 자금을 끌어모아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설정 기간 동안 자금 회수가 불가능한 일반적인 폐쇄형 펀드와 달리 거래소에 상장돼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BDC는 윤석열 정부의 자본시장 핵심 공약 가운데 하나지만 야당 일부 의원의 반대로 정부 입법 후 9개월 가까이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이 기간에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금융당국은 BDC가 금리 상승기에 위기에 처한 벤처투자업계에는 민간 자금이라는 마중물을, 신규 투자 위축과 밸류에이션 하락으로 투자 유치가 어려워진 스타트업엔 자금 유통의 새로운 창구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증권가에서는 상장 벤처캐피털(VC)사들이 BDC 도입 시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고 실적을 개선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TF처럼 사고파는 벤처펀드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오는 20일 법안소위를 열고 정부가 지난해 9월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해당 법안은 BDC 도입을 골자로 하고 있다. BDC는 벤처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모험자본을 공급하기 위한 취지의 상품이다.

정부가 제출한 법안에 따르면 BDC는 자산 총액의 40% 이상을 벤처 및 혁신기업에 투자할 수 있고, 금융기관 차입을 통해 비상장기업에 대한 금전 대출도 집행할 수 있다. 설정 후에는 상장지수펀드(ETF)처럼 거래소에 상장돼 거래가 가능하다.
자본시장법 개정안 개요
  • 호재 예상 기업: △아주IB투자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다올인베스트먼트 △SB인베스트먼트 △SBI인베스트먼트 △DSC인베스트먼트 △미래에셋벤처투자 △TS인베스트먼트 △스톤브릿지벤처스 △삼성증권 △부국증권 △SK증권 △상상인증권 △한양증권 △유화증권 △현대차증권 △교보증권 △NH투자증권 △한국금융지주 △대신증권 △미래에셋증권 △코리아에셋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신영증권 △DB금융투자 △유진투자증권 △유안타증권 △메리츠금융지주 △다올투자증권
  • 발의: 정부 입법
  • 어떤 법안이길래
    =일정 수준 이상의 자기자본과 증권 운용 인력을 보유하고, 이해 상충 방지체계를 갖춘 자산운용사와 증권, VC 등이 BDC 인가를 받을 수 있음
    -BDC는 전체 자산의 40% 이상을 벤처 및 혁신기업에 투자할 수 있고, 이때 직접 투자가 아니라 금융기관 차입을 통한 대출도 제공할 수 있음
    =BDC는 전체 자산의 10% 이상을 국채나 한국은행 통화안정증권 등 안전자산에 투자해야 함
  • 어떤 영향 주나
    =BDC 자격이 주어지는 증권사와 VC 회사에 새로운 사업 기회 창출. 투자자에겐 위험 높은 비상장기업 직접투자 대신 전문 운용 주체를 통한 간접투자 기회 제공
    =특히 상대적으로 사업 분야가 제한적이고, 벤처투자에 전문성을 가진 VC업계는 보다 큰 수혜 예상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GettyImagesBank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GettyImagesBank
벤처투자의 ‘고위험·고수익’적 성격을 보완하기 위해 전체 자산의 10% 이상을 국채나 한국은행 통화안정증권 등에 투자하도록 하는 안전장치도 있다. 정부안은 또한 BDC 운용사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방지하기 위해 BDC 전체 모집 금액의 5%를 운용사 자기자본으로 충당하도록 하고 있다.

지금 같은 금리 인상기에 유망한 대응책

BDC는 금리 인상기에 기존의 벤처투자 수단들이 위축되자 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벤처 신규 투자 금액은 8815억원으로, 전년 동기(2조2214억원) 대비 60.3% 급감했다.

BDC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벤처기업 대출이 금리 인상기에 특히 유망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금 같은 시장 상황에서는 벤처 기업이 지분을 대가로 자금을 유치하려고 해도 투자자와 기업이 생각하는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의 차이가 너무 커서 투자금 유치에 따른 오너 지분 희석이 너무 커진다”며 “현장 기업들을 만나보면 투자 유치보다 원활한 대출을 통해 위기를 넘기길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BDC 도입을 희망하는 것은 투자 대상인 스타트업과 벤처기업뿐만이 아니다. 인가 신청이 가능한 증권과 자산운용사는 물론, 유망한 스타트업 발굴에 전문성을 가진 벤처캐피털 업권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가 지난해 BDC 인가를 받을 수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요 조사에서 39개사가 참가 의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 “정무위 야당 의원들과 막판 의견 조율 중”

관건은 야당의 반대다. BDC가 정무위 법안소위에 상정된 이후 소위 소속 8명의 야당 의원 가운데 3명(이용우, 김한규, 오기형)이 우려를 드러냈다. 지난 2월 소위에서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 문제와 투자자 보호 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소벤처기업부의 국책 사업인 벤처 민간 모펀드 사업과의 중복 문제도 제기됐다.

금융위는 야당 측 우려를 반영해 법안 내용 및 시행령이 조정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중기부와의 역할 중복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해명을 했고, 시행령 등을 통해 투자자 보호 조치를 강화하고 벤처기업 투자 비중을 60% 이상으로 확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이용우 의원을 제외한 정무위 야당 의원들로부터 법안 통과 의사를 확인했다는 입장이다.

벤처업계에서는 국회 논의가 장기화하면 자금 수혈의 ‘골든타임’이 지나버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혁신벤처정책본부장은 “현재 벤처업계는 금리 상승과 이에 따른 투자 심리 위축으로 정책 투자 자금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BDC 도입을 통한 자금 유입처의 다변화가 시급하다”고 우려했다. 벤처기업협회는 16일 성명서를 내고 BDC 통과 필요성을 강조할 예정이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