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법관에 권영준·서경환 임명 제청…"안전한 카드" 평가
대통령 '임명권 보류' 관측 속 드러난 대법원장의 선택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된 대법관 임명권 행사를 보류할 수도 있다는 관측 속에 김명수 대법원장의 선택이 마침내 드러났다.

김 대법원장은 9일 새 대법관에 권영준 (53·사법연수원 25기)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서경환(57·21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윤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이번 대법관 제청은 여느 때보다도 관심사였다.

대법원의 이념적 편향을 우려한 윤 대통령이 임명권을 보류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언론보도를 시작으로 대통령실을 통해 나오면서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대법관 임명은 대법원 신뢰와 연결되는 문제"라며 "대법원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법조계는 물론,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인물을 제청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은 대통령 임명권과 대법원장 제청권이 충돌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임명권 전반에 대한 법률 검토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임명제청된 대법관에 특정 성향 인물이 포함될 경우, 윤 대통령이 임명권 행사를 보류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대법관 후보 8명 중 대통령실이 '특정 성향'으로 분류한 대상자의 실명은 공개적으로 언급되진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박순영(57·25기) 서울고법 판사(중앙선거관리위원)와 정계선(54·27기)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가 거론됐다.

박 판사는 서울고법 노동 전담 재판부 등을 거쳤고 대법원 노동법실무연구회 등에서 활동한 노동법 전문가로 꼽힌다.

여러 노동 분쟁 소송에서 전향적 판결을 하기도 했고 김 대법원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장판사는 보수 진영에서 '진보 성향'으로 규정하는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김 대법원장 역시 두 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2018년 횡령·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15년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다스의 실소유자이고 비자금 조성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밝혀 시선을 끌기도 했다.

김 대법원장이 대통령실의 '신호'에도 이 둘을 대법관으로 임명제청하면 대통령이 김 대법원장이 퇴임하는 7월까지 임명권을 보류했다가 새 대법원장이 들어서면 다른 사람을 제청받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도는 시나리오였다.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지면 대법관을 두고 행정부와 사법부 수장이 헌법상 권한을 놓고 큰 충돌이 벌어져 사회 갈등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대통령실이 '특정인'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만큼 이번에 제청된 권영준, 서경환 '카드'에 대한 대통령실의 판단은 예단하기 어렵다.

법조계에선 이 둘의 명단이 공개되자 김 대법원장이 '안전한 카드'를 선택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후보추천위 결정에서 제청까지 10일이 걸렸는데 전례에 비춰 통상적인 수준이다.

이를 근거로 김 대법원장이 특정 후보를 강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도 있다.

대통령 '임명권 보류' 관측 속 드러난 대법원장의 선택
정치 성향 논쟁까지 이어진 이번 대법관 임명 제청을 두고서 의견이 분분하다.

대법관 제청은 헌법이 규정한 대법원장의 고유한 권한이면서도 대법원과 대통령실이 협의해 제청하는 게 관례였다.

사법부와 행정부가 대법관 임명을 두고 공개적으로 충돌한다면 헌법 체계와 사회적 안정성에 부정적이어서다.

이 때문에 '특정 성향' 대법관 후보의 제청 여부가 논란이 된 자체만으로 행정부와 사법부 간 협의의 과정이 부족했다는 방증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언론과 대통령실 관계자를 통해 임명권 보류 가능성이 언급돼 사실상 '지침'이 제시됐고, 이는 대법원장 고유의 권한을 침해해 결과적으로 삼권 분립의 원칙이 흔들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실이 대법원장의 제청권 관련한 의견을 표출한 것은 월권"이라며 "제청 뒤 대통령실이 임명을 거부하는 것은 대통령의 영역이지만 사전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권력분립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법관 후보 선정과 임명 제청 과정에서 실력과 성품이 아닌 정치적 성향, 연구회 활동 이력이 기준이 돼선 안 된다는 의견도 법원 내부에서 나오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