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러시아가 점령한 동남부 지역에 대규모 공세를 펼친 지 이틀 만에 헤르손주 카호우카 댐이 폭파됐다. 양측은 폭파 원인이 상대방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댐이 무너지면서 최소 수십만 명의 민간인 생명이 위험에 빠지게 됐다. 전쟁의 진행 방향과 전후 전범 문제 등에까지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5시간 내 물 차오른다” 대피령

로이터·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6일 오전 큰 폭발이 발생하며 카호우카 댐이 파괴됐다. SNS에 올라온 항공 영상에는 댐 가운데가 무너져 저수지 물이 빠른 속도로 하류로 떠내려가는 모습이 담겼다.

카호우카 댐은 우크라이나 남부를 관통하는 드네프르강에 있는 다목적댐이다. 높이 30m, 길이 3.2㎞에 저수량은 1800만㎡ 수준이다. 유럽 최대 규모인 자포리자 원전이 카호우카 댐의 물을 냉각수로 쓰고 있다. 댐은 흑해 핵심 항만인 헤르손과 러시아군 점령지를 잇는 유일한 교량 역할도 하고 있다.
러 점령한 유럽 최대 댐 파괴…주민 2만여명 긴급 대피령
러시아 관영 통신사인 리아노보스티·타스에 따르면 노바 카호우카 행정책임자인 블라디미르 레온티예프는 텔레그램을 통해 댐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밝혔다. 그는 댐이 파괴된 후 수위가 2.5m 상승했으며 관련 인력이 현장으로 출동했다고 전했다. 타스는 카호우카 댐 붕괴가 당장 자포리자 원전에 큰 위험이 될 정도는 아니라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국영 원자력기업 에너고아톰은 “현재 발전소의 냉각탑은 가득 찬 상태로 오전 8시 수위는 발전소의 필요에 맞는 16.6m”라며 “자포리자 원전 상황은 통제 아래 있고 우크라이나 직원이 모든 지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헤르손 주정부는 “5시간 안에 심각한 수위까지 물이 차오를 수 있다”며 주민 대피령을 내렸다. 리아노보스티는 카호우카 댐 폭발로 헤르손 지역 14개 마을에 사는 주민 2만2000명이 홍수 위험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양측은 폭파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가 반격 실패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댐을 폭파했다고 주장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측의 고의적인 파괴 행위라는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남부군 사령부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러시아 점령군이 카호우카(댐)를 폭파했다”며 “파괴 규모, 물의 속도와 양, 그리고 침수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 명확해지고 있다”고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국가안보위원회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를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고 “카호우카 댐의 파괴는 그들(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땅 구석구석에서 추방돼야 함을 확인해줄 뿐”이라고 비난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 소집을 요청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이 문제를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댐 파괴 세력은 전후 전범 처리 과정에서 이슈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홍수로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다면 이는 적대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는 제네바협약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이사회 상임의장은 이날 “민간 기반 시설 파괴는 명백한 전쟁 범죄”라며 “러시아와 그 대리인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도 트위터를 통해 “카호우카 댐 파괴는 수천 명의 민간인을 위험에 빠뜨리고 심각한 환경 파괴를 유발한다”며 “이는 러시아가 벌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잔혹성을 다시금 보여주는 잔인무도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양측, 유리한 전투 결과만 발표

우크라이나의 동남부 공세가 이틀째 이어진 이날 양국은 전투 결과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발표하며 선전전을 벌였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도네츠크주에서 우크라이나 군의 또 다른 대규모 공격을 저지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군은 독일제 레오파르트 전차 8대를 포함한 전차 28대를 파괴했으며, 우크라이나 군의 총병력 손실은 1500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군은 “우리는 그런 정보가 없고 어떤 종류의 가짜에 대해서도 논평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한나 말랴르 우크라이나 국방부 차관은 전날 텔레그램을 통해 바흐무트 북부와 남서부에서 최대 1600m 영토를 탈환했으며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러시아 국경 지역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가짜 영상이 TV·라디오에 흘러나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가 NATO 지원을 받아 러시아 본토를 공격했으며, 조만간 총동원령을 내린다고 푸틴 대통령이 말하는 내용이다.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이 이런 연설을 한 적이 없으며 “해킹 공격의 결과”라고 진화에 나섰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