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의 커피 사랑이 식을 줄을 모른 채 더 뜨거워지고 있다. 2021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 커피 수입국 중 7위를 차지했으며, 최근 십 년간 그 성장세가 가장 가파른 나라로 기록되었다. 매장에서의 커피 소비량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에 해당하며, 커피숍의 숫자는 2위와의 압도적인 차이로 전 세계에서 1위다. 가히 커피 공화국이라고 할 만하다.

커피 시장이 양적 팽창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다. 핸드드립에서부터 캡슐 커피, 최신의 전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에 이르기까지 커피메이커의 판매도 활발해지면서 산업 자체가 확장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다양한 커피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다. 특히, 스페셜티 커피라고 불리는 고급 커피에 관한 관심과 소비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
과테말라 커피의 풍미를 더는 즐길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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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과테말라는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이 나라의 대표 브랜드인 안티구아 커피는 화산지형과 해발 천 미터 이상의 고산지대가 만들어내는 일명 스모크 커피(smoke coffee)로 유명하다. 화산폭발로 미네랄이 풍부한 화산토에서 나오는 질소를 흡수한 커피나무, 일정한 일교차, 낮은 습도의 조합으로 인해 연기가 타는 듯한 향을 가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진한 스모키향 속에서 쓴맛과 신맛, 거기에 단맛이 어우러져 나오는 독특한 고소함을 그 특징으로 한다. 묵직한 바디감으로 유명한 케냐 AA커피, 산미가 강한 에티오피아산 예가체프, 부드러운 콜롬비아 수프레모 커피와 비교되는 이러한 고소함으로 인해 과테말라 커피는 한국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과테말라 커피의 풍미를 더는 즐길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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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전 세계 커피의 생산량이 감소 추세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가장 주요한 원인이 바로 기후변화와 관련되는데, 과테말라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전반적인 지구온난화로 지표면 온도가 상승한 것은 물론이고, 아메리카 대륙 주변의 해류에서 발생하는 엘니뇨 현상으로 건기는 더 길어지며, 반대로 우기는 짧아지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단축된 우기에도 불구하고 전체 강수량에는 큰 변화가 없는데, 이 사실은 짧은 우기 동안 집중적인 폭우를 동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최근 20년간 이 지역에서는 폭우와 허리케인으로 인해 재난 상황이 속출하였고, 국가 재정 부족으로 인해 피해 복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대로, 길어진 건기 동안에는 상승한 온도로 인해 가뭄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토양이 황폐해지는 사막화가 진행되는 결과를 낳았다. 가뭄과 폭우가 반복되는 결과로 과거와 같은 질 좋은 커피콩을 생산하기가 힘들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평균 이백여 미터가 더 높은 곳으로 커피 재배의 위치를 옮겨야 한다. 하지만 이 경우 기존의 산림 파괴와 개간이라는 또 다른 생태계 파괴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더 고지대로 올라가 커피를 경작해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기후변화로 인해 과테말라산 커피를 마시지 못할 수도 있다니 아쉬울 수 있겠다. 하지만 과테말라 사람들에게는 이 상황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독립 이후인 19세기 중후반부터 커피는 이 나라의 3대 수출품목 중 하나였다. 세계시장의 요구에 따라 과테말라는 역사적으로 바나나와 커피 등 소수의 농작물을 유럽과 그 외의 지역에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따라서 그 외의 제품이나 공산품 등을 발전시키거나 산업화할 필요성이 크지 않았으며, 인구 규모와 경제적, 구조적 측면에서의 여력도 충분치 않았다.

현재 과테말라에서 약 백만 명의 인구가 커피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리고 대다수는 가족, 혹은 마을 단위로 커피를 재배하는 소농민들이다. 커피 농사는 전통적으로 노동집약적이다. 특히, 고급 커피 품종인 아라비카의 경우 건조한 고지대에서 최적화된 품종이기 때문에 기계화된 방식의 경작과 플랜테이션과 같은 농업의 대량산업화가 적합하지 않았다. 따라서 여전히 소규모로 경작, 수확하는 농업 방식에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커피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수입은 또 다른 이슈다. 우리가 커피숍에서 마시는 커피의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누구도 아주 싸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비싼 커피의 경우 우스갯소리로 밥값에 육박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커피 한 잔을 만드는 커피콩에 대해 현지의 생산자들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턱없이 적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정무역 운동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제는 과거에 비교해 소규모 커피 경작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금액이 늘긴 했지만, 수입 면에서 여전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진행되는 기후변화는 커피에 의존하는 농촌경제 몰락의 도화선이 되었고, 많은 농민이 고향인 과테말라를 떠나고 있다. 우리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서도 지난 십 년 동안 미국으로 향하는 중앙아메리카 사람들의 이민 물결이 종종 보도되곤 한다. 이 이민자들의 상당수는 소위 ‘남부의 삼각지대(Southern Triangle)’라 불리는 세 나라, 즉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그리고 온두라스 출신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지난 30여 년 동안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위기가 일상화되었다. 공식 경제의 몰락으로 인해 마약 산업과 같은 비공식 부문이 이를 대체하였고, 범죄조직들이 공권력을 무력화하고 폭력을 독점하면서 치안 상태가 심각해졌다. 이와 더불어 기후변화는 서서히, 그러나 점점 더 치명적인 이주의 원인이 되고 있다. 황폐해진 토양과 사막화 현상은 국가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커피 재배를 지속가능한 삶과 경제의 자원으로 상상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많은 커피 경작자가 나라를 등지고 미국으로 향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현재 미국 사회에서는 과테말라를 비롯한 중앙아메리카에서 들어오려는 이민자 행렬에 대한 첨예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국경 보안을 강화하고 연령과 관계없이 미등록이민자들의 추방과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인도주의 차원에서 이들을 받아들이고 포용하자는 의견이 팽팽하다. 이 문제에는 경제, 국제인권, 국가 안보, 정체성과 윤리 등 여러 시각과 이해관계가 중첩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기후변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상실하고 고향을 떠난다는 점에서 기후난민이기도 하다. 기후변화가 단순히 한 나라 내부의 문제로 인해서만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점, 그리고 역사적으로 선진국들이 현재의 환경 파괴와 생태계 시스템 균열에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점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고려해 보아야 할 지점이다.

사실 커피 한잔에 담긴 환경과 기후변화를 연관시켜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다. 자고로 커피는 출근 후 업무를 시작하기 전, 공부하면서, 혹은 지인들과 대화하며 마시는 바쁜 일상생활의 휴식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후변화가 초래한 나비효과로 질 좋은 과테말라산 커피의 풍미를 더이상은 즐길 수 없다면? 그리고 우리 삶에서 결국 커피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면? 이를 막기 위해선 이제 행동을 취해야 할 때다. 커피와 함께 오롯한 휴식을 누리는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오늘의 커피타임을 시작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