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영화 등급 분류 심의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다. 하나는 영화를 개봉 전에 봐서 좋겠다고, 다른 하나는 등급 분류를 검열이라고 지적하는 경우다.

비디오 시대, 품위있던 19금 영화의 추억과 제한상영가
둘 다 약간의 오해가 섞인 반응이다. 물론 개봉 전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은 매력이다. 그런데 극장에서 관객으로 볼 때처럼 영화에 몰입할 수는 없다. 영화와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인물이 흡연하는지, 심한 욕설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폭력 장면에서 유혈 묘사가 얼마나 심각한지 등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난감한 경우는 성인영화를 심의할 때다. 나체의 남녀가 신음을 내뱉는 장면을 심의위원들이 다 함께 모여서 본다. 커다란 스크린에 살색 영상이 가득하다. 게다가 성인영화의 심의 건수는 매우 많다.

성인영화는 주제와 내용이 청소년에게 유해한 성애영화를 지칭한다. 구체적이고 노골적인 선정성과 청소년에게 왜곡된 성 의식을 심어줄 수 있기에 성인영화 대부분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는다. 영등위의 2022년 연감에 따르면, 2021년 등급 분류를 한 영화는 총 3,270편이고 그 중 성인물이 1,970편에 달한다. 약 60%가 성인영화다. 코로나 이후 일반영화의 제작과 개봉 편수는 크게 줄었는데, 성인영화의 등급 분류 신청은 오히려 증가했다. 성인물의 유통과 소비 시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게 된다.
비디오 시대, 품위있던 19금 영화의 추억과 제한상영가
나는 스무 살쯤에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생각해보니 그때도 대여점 한쪽 벽면을 빨간색 에로영화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름 그 에로영화 비디오들도 최신프로, 신프로, 구프로의 구분이 있어서 종종 비디오를 빌려 간 아저씨에게 특정 테이프는 빨리 반납하셔야 한다는 독촉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 많던 에로 비디오가 지금은 IPTV와 OTT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게다가 그 시절 에로영화는 나름의 품위가 있었다. 결정적인 장면은 물레방아와 폭포와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로 대체되곤 했으니 말이다. 그뿐인가, 유명 영화를 패러디한 에로비디오 제목들은 웃기기도 했다. 위트, 센스, 창의성이 성인물 제목 짓기에도 동원되었다.

한편 영화 등급 분류를 여전히 검열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과거 독재 시절 정치적인 이유로 영화의 특정 장면을 삭제하도록 검열했는데, 그때의 부정적 시각이 여전히 남아있어서다. 물론 최근에도 1년에 1~2편꼴로 제한상영가 등급 결정이 내려진다. 그러나 대부분이 바로 성인영화다. 성적 맥락상 성기가 구체적으로 노출된 경우, 아동 청소년을 성적 대상으로 학대하는 경우, 수간(獸姦)이나 시간(屍姦) 등 혐오스러운 성행위가 포함된 경우, 그리고 실제 성행위 장면이 있는 경우 제한상영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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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심의실에서 가장 유심히 보는 것은 블러(형체를 흐릿하게 만드는 영상 기술) 처리다. 성인영화는 블러를 해야 하는 장면이 많은데, 종종 블러의 탁도가 연해져서 특정 부위의 윤곽이 드러나거나, 아주 짧은 순간 블러가 사라져 소위 촬영용 공사 장면이 보일 때도 있다. 심지어 포르노를 블러한 예도 있다. 이 경우 제한상영가 등급이 내려진다. 이후 신청사는 해당 부분을 보완하거나 재편집해서 심의를 다시 요청하기도 한다. 그러면 심의위원들은 그 영화를 다시 봐야 한다. 지난여름, 어느 일본 성인영화 한 편을 그렇게 세 번이나 보게 되었다. 나중엔 문제가 된 장면을 외우겠다는 실소가 터졌다.

그런데 영상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성인영화의 제명이다. 성인영화는 청소년관람불가이기에 미성년자가 볼 수 없지만, 어떤 경우 제목은 노출되기도 한다. 근친 관계, 여성의 성을 비하하는 표현, 구체적인 성행위를 너무나 자극적으로 묘사한 제목이 빈번하다.

칼럼 지면에 한 글자도 쓸 수 없는 제목들이다. 영등위는 영상물을 심의하는 기관이기에 제명을 제한하는데 한계가 있다.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 보호 사이에서 관련 업계와 소통하는 영등위의 노력이 더욱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