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목적 같지만 달성방식에 서방과 근본 견해차
서방 전문가 "中, 러 실패·점령지 반환 원치 않아"
중국 역할론은 여전…식량안보·구호·핵전쟁 방지 등 소통창구
러시아 요구 대변…유럽 다녀온 中특사 우크라전 중재안에 뒷말
리후이 중국 유라시아사무특별대표가 열흘에 걸쳐 유럽 각국을 돌며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에 관한 '중국식 평화안(案)'을 설파했지만, 러시아 점령지 문제 등 전쟁을 종결하는 방식에 관해 서방과 중국의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았다고 미국 CNN방송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리후이 특별대표는 이달 16일부터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프랑스, 독일, 유럽연합(EU) 본부(벨기에 브뤼셀)를 잇달아 방문하면서 전쟁의 정치적 해결 방안을 논의했고 26일에는 최종 목적지인 러시아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만나 머리를 맞댔다.

라브로프 장관은 중국이 전쟁에 대해 "균형 잡힌 입장"을 갖고 있고, 전쟁 종식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준비가 돼있다는 점에 사의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껏 긍정적인 러시아의 태도와 달리 서방은 중국의 중재 행보를 잠정적으로 환영하면서도 의구심을 풀지 않고 있다.

CNN은 이것이 '평화를 달성하는 방법'에 근본적인 견해차가 있어서라고 진단했다.

서방 진영에 속한 유럽 각국은 러시아가 철군하고 우크라이나가 법적인 영토를 회복하는 것이 평화라고 본다.

반면 순방 기간 리 특별대표는 우선 평화 회담을 향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유럽만의 '안보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유럽이 '미국은 포함하되 러시아는 배제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같은 제도로 안전보장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중국의 관점을 은근히 드러낸 것이라고 CNN은 해석했다.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산하 중국연구소의 스티브 창 소장은 "중국은 러시아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실패한 것으로 보이기를 원치 않는다"며 "러시아가 침공으로 가져간 땅을 포기해야 하는 합의는 러시아엔 패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러시아의 점령지 반환'이라는 옵션은 애초에 중국의 협상 테이블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영토 회복이 빠진 안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고, 유럽은 러시아가 침략으로 영토를 얻어낸 채 빠져나가는 상황을 보고 싶지 않아 한다고 창 소장은 짚었다.

이해관계가 교착상태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이런 차이는 중국이 올해 2월 발표한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에 관한 중국 입장'에서도 드러난다.

12개항으로 구성된 이 문서에서 중국은 각국 주권과 독립, 영토 완전성 보장, 유엔헌장 취지 준수, 냉전사고 버리기, 각국의 합리적 안보 우려 존중 등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중국은 여기에서 "점차적으로 정세를 완화해 최종적으로 전면 휴전에 도달하는 것을 지지해야 한다"고 했는데, 서방에서는 '철군'이 아닌 '휴전'을 언급한 이런 입장이 러시아의 점령을 공고하게 만들어주자는 취지로 읽히기도 했다.

CNN은 최근 리후이 특별대표를 맞이한 유럽 국가들이 발표한 회담 내용에는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을 비판하면서 중국이 서방과 견해를 더 일치시켜야 한다는 입장이 깔려있다고 설명했다.

보이치에흐 게르벨 폴란드 외교차관은 리 특별대표에게 "이번 분쟁에서 침략자 러시아와 피해자 우크라이나를 동등한 지위에 놓으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엔리케 모라 EU 대외관계청 사무차장은 "러시아의 불법 침략전쟁을 끝내는 유의미한 길은 유엔헌장 전체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또 프레데릭 몬돌로니 프랑스 외교부 정치·안보국장은 중국이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 특히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이룩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프랑스가 확신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전쟁 발발과 지속에 관해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쿨레바 외무장관 역시 러시아군의 철수와 국제적으로 인정된 국경 회복 등 우크라이나의 '평화 공식'을 강조했다.

서방 전문가들은 평화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바라보는 관점 차이를 좁히는 데서 중국의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는 있지만, 중국이 소통창구 역할을 넓혀가는 것이 반가운 영역도 있다고 본다.

식량 안보나 인도주의적 지원, 러시아의 핵 위협에 대한 압박 등이 대표적이다.

모리츠 루돌프 미국 예일대 로스쿨 폴차이 중국센터 연구원은 "이번 리 특별대표의 방문은 유럽이 직접 중국 지도부에(잠재적으로는 러시아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며 "전달될 메시지가 어떤 것인지가 핵심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