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동 소재 한국거래소 전경. 사진=신민경 기자
서울 여의도동 소재 한국거래소 전경. 사진=신민경 기자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은 끝났지만, 주주들의 '소수주주권 찾기'는 진행형이다. 행동주의 펀드를 필두로 주주행동주의가 탄력을 받으면서 회사 경영에 불만을 품은 주주들이 네이버 카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연대를 이루고 회사를 압박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포착되고 있다. 기업들도 주주들의 움직임이 더 큰 물결로 번지기 전에 서둘러 당근책을 내놓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 유전체 분석 기업 마크로젠의 소액주주들은 지난 3월 주주연대를 꾸렸다. 주주연대 측은 "110여명이 참여 중이고, 참여 지분도 임시 주총 소집이 가능한 3%를 넘긴 상태"라며 "사측은 우리가 주주서한을 통해 요구한 '자사주 일부 소각'과 '무상증자 실시' 등의 안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회신했다. 여전히 회사가 변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 임시주총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총 소집 권한은 이사회에 있지만, 주주들의 경우에도 임시주총 소집을 청구할 수 있다. 주주가 여러명인 때 보유주식을 합해 회사 발행주식 총수 3%(상장사는 1.5%) 이상을 보유한 경우다. 또 상법에선 이 방식으로 회사에 임시주총 소집을 청구했는데도 이사회가 응하지 않을 경우엔 법원의 허가를 받아서 총회를 소집할 수 있게끔 규정하고 있다.

회사는 침체기인 현재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자사주 소각과 무상증자로 인한 주가부양 시도는 큰 효과를 못볼 것이란 입장이다. 지난 19일 마크로젠은 주주서한 답변서를 통해 "2020년 1월부터 올 3월까지 자사주 소각과 무상증자를 실시한 다른 기업들의 사례들을 검토한 결과, 해당 기간 소각을 실시한 상장사 105곳 중 8곳이 제약·바이오사였다"며 8곳의 기업들의 주가 상태를 분석해 큰 효과가 없다고 설명했다.

마크로젠 관계자는 기자에게 "지난 2월 3년 연속 현금배당을 결정하는 등 회사로선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 회사는 고강도 긴축과 효율화를 목표로 전략적 선택과 집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주주가치를 최우선으로 두고 다양한 주주 친화정책들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코스닥 상장 호텔·리조트 기업 아난티의 일부 주주들도 최근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소액주주 연대를 출범, 주주명부 열람을 비롯한 집단행동을 예고한 상황이다. 아난티는 이중명 전 회장이 주가조작 세력에 연루됐단 의혹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기업이기도 하다. 연대 측은 "장기간 영업이익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배당정책이 없고 주가 부양책이 전무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아난티 재무 담당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주주연대 출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들로부터 아직 세부적인 활동내용을 전달 받은 바는 없다. 연대 측 주장과 달리 우리 회사는 흑자를 낸지 얼마되지 않은 상태"라며 "최근 180억 규모 CB를 소각 결정하는 등 주주가치를 높이고자 힘쓰고 있고 추후 기회가 되면 배당책 시행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주들의 의견이 반영되기 시작한 곳들도 여럿이다. 이주환 컴투스 대표는 이달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이 열린 지난 11일 주주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회사는 직전 3년 별도 기준 평균 영업현금흐름(OCF)의 33%를 재원으로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재원으로 주주 배당을 실시하고, 자사주를 매입해 그 중 50%는 소각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방안은 진정성 있는 주주환원책을 발표하라는 요구가 나온 가운데 발표됐다.

KISCO홀딩스도 주주들의 입김으로 분위기가 반전된 곳 중 하나다. 앞서 지난 3월 24일 열린 이 회사 주총에선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가 국민연금으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지 않은 채 감사위원 후보 선임 안건에 표결한 일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감사위원 당락이 바뀌었다. 자칫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이 사고를 공론화한 곳은 KISCO홀딩스 주주연대다. 주주들의 호소로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자 지난 19일과 22일 해당 운용사와 KISCO홀딩스 소액주주연대 측이 각각 법원에 주총 결의 취소의 소를 제기했고, KISCO홀딩스도 지난 26일 주주 안내문을 띄웠다.

상장사 36곳의 주주연대를 주도하고 있는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는 "한국증시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 인식이 확산하면서 소액 주주들이 주주권 행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단독 지분은 적을지라도 모이면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며 "소액주주 연대가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은 비민주적 요소를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우려의 시선도 나온다. 법무법인 한 관계자는 "주주들이 쉽게 연대할 수 있게 된 만큼 긍정적인 측면이 크겠지만, 주주들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들어주는 게 능사는 아닐 수 있다"며 "회사 입장에선 배당책에 쓸 돈을 유보해서 향후 신규 투자에 나설 수 있는데, 이 경우가 주주들에게 결국 더 큰 혜택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