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연구원·공연기획자 접고 보은군 회인면 낙향해 도시재생 새 삶 "잘 보존된 문화유산 눈 돌리면 모두 보물…라이더 공존 모델 모색
[※ 편집자 주 = 좁아진 취업문과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청년들의 고민이 깊습니다.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으면 낙오되기 십상이라는 위기의식도 팽배합니다.
그러나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모험을 택하는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현장서 답을 구하는 이들입니다.
연합뉴스는 열정과 아이디어로 똘똘 뭉쳐 꿈을 실현해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총 20회에 걸쳐 매주 월요일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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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수록 고향이 좋았다.
대청호와 피반령의 험준한 고갯길 사이 척박한 땅이지만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과 넉넉한 인심은 언제나 마음에 안식을 줬다.
어린 시절 변변한 추억 하나 남기지 못하고 일찍 뜬 고향이지만, 이경수(41)씨에게 충북 보은군 회인면은 볼수록 정이 붙는 곳이다.
그런 그가 3년 전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과감히 고향으로 이사했다.
대학에서 산림학을 전공한 뒤 충북도산림환경연구소 위촉연구원과 공연기획사 대표로 일하면서 꿈꾸던 시골살이 계획을 망설임 없이 실행에 옮긴 것이다.
부모님 집 근처에 아담한 살림집을 마련한 그는 낙향 뒤 본격적으로 고향의 가치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공연기획자로 일하면서 몸에 밴 '촉'과 '느낌'도 한몫했다. 그의 고향 회인은 고려∼조선시대 행정과 문화, 교육의 중심 역할을 하던 현(縣)이 있던 곳이다.
현감의 살림집인 동헌 내아(충북도 문화재자료 71호)를 비롯해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들이 머물던 인삼객사(충북도 유형문화재 116호), 하늘에 제를 올리던 사직단(충북도 유형문화재 157호), 교육기관이던 회인향교(충북도 유형문화재 96호) 등이 아직도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뿐 만아니라 이곳은 천재시인 오장환(吳章煥·1918~1951)의 고향이기도 하다.
오 시인이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생가와 문학관이 있고, 해마다 후배 문인들이 모여 문학제도 연다.
이씨는 지역을 찬찬히 돌아볼수록 숨겨둔 보물을 하나하나 들춰내는 듯한 기분이었다.
심지어 충북에서 가장 오래된 자장면집(회인반점)과 양조장(회인양조장)도 그에겐 신선한 자극이 됐다.
여기에다가 이 지역의 가치에 매료된 몇몇 마을활동가들이 이미 터를 잡고 작은도서관, 문화공작소 등을 운영하는 것도 가슴 설레게 했다.
낙향 후 얼마 안 돼 그는 마음 맞는 청년들과 의기투합해 해바라기 청년공동체를 조직하고 작은 마을축제를 기획했다.
해바라기는 오 시인의 대표 동시 작품 중 하나다.
이를 인용해 매년 10월 '해품축제'(해를 품는다)를 열면서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가 어울리는 화합무대를 3년째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는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문화재 야행' 행사도 열었다.
현감 행차가 재현되고, 지방 관료가 임금이 머무는 궁궐을 향해 예를 표하는 망궐례도 열었다.
의미 있는 점은 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전문 배우나 공연전문가가 아닌 마을 주민이라는 점이다.
몇 안 되는 30∼40대 청년들이 중심이 됐고, 어린 학생과 칠순의 어르신들도 행사의 주인공이 됐다.
이씨는 요즘 또 다른 사업 구상에 들떠 있다.
지난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에 뽑혀 3년간 6억원을 지원받아 고향 마을에 활력을 붙어넣는 도시재생을 진행중이다.
그는 이 사업을 위해 선배 마을활동가와 예비 귀촌인까지 끌어 모아 '삶은 동네'(동네 안에 삶이 있다)라는 청년단체를 만들고, 충남 공주 제민천과 부여 규암 수월옥 등을 여러 차례 벤치마킹했다.
이씨는 "청년들이 똘똘 뭉쳐 도시재생을 기안하고 전국의 이름난 성공사례를 일일이 찾아다닌 결과 전국서 12개 마을을 뽑는데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고 말했다.
그와 청년들이 꿈꾸는 사업 컨셉은 라이더를 테마로 청년마을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이 마을 피반령은 탁 트인 경관과 구불구불한 도로 환경 때문에 라이더들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수백명이 집단을 이뤄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탄다.
그러나 이들이 내는 소음과 과속, 난폭운전 등으로 동네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청년들은 이들을 마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라이더 캠프를 열고, 라이더 사랑방과 안내소 설치, 라이더 카페 운영 등을 준비 중이다.
외지에서 오는 라이더를 생활인구로 끌어들이기 위해 라이더 하우스를 만들고 이들의 취향에 맞춘 휠러스 페스티벌도 구상하고 있다.
이씨는 "음식점에서 보은 한우 브랜드인 조랑우랑 쇠고기를 팔고, 지역특산물인 대추와 마늘 등을 활용한 카페 음료도 선보일 계획"이라며 "청년뿐 아니라 지역의 어르신들도 적극 도와주고 계셔서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농촌생활이 불편하고 어려운 일 투성이지만, 모두가 힘을 합쳐 재창조한 마을에서 나와 가족이 숨 쉬고 뛰노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차다"며 "청년마을의 핵심은 라이더를 포함해 청년들이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