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팀 90분간 '멍' 실력 겨뤄…배우 정성인씨 우승
"아무것도…안하고…싶다…" 한강서 단체 '멍때리기'
"생명과학 시간에 갈고닦은 멍때리기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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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이른 더위가 한풀 꺾인 21일 오후 4시 한강 잠수교. 잠옷에 뽀글머리 가발, '몸빼' 바지까지 개성 넘치는 복장을 한 남녀노소 70팀이 노곤한 강바람을 맞으며 멍한 표정으로 앉았다.

올해로 6회째인 '한강 멍때리기 대회' 참가 선수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무가치하다는 통념을 깨자는 취지로 마련된 행사로, 90분 동안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멍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대회 규칙이다.

자주포 엔지니어·사육사·응급구조사 등 다양한 직업의 참가자들이 4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본선에 진출했다.

인기 캐릭터 '벨리곰' 등 이색 참가자도 함께했다.

가수 겸 방송인 강남(36)씨는 빨간 셔츠에 노란 바지의 짱구 복장을 하고 나왔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멍을 잘 때려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며 "꼭 우승해서 1회 우승자인 크러쉬 형한테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스포츠캐스터 김민범(25)씨는 "일주일 내내 쉴 틈 없이 일하다 보니 하루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참석했다.

회사 몰래 방송 일정을 빼고 온 만큼 꼭 우승하고 돌아가겠다"며 "'웃는 상'인데 웃으면 탈락이래서 웃음을 잘 참아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직장인 김표진(33)씨는 "회사에서 매일 '멍'을 때린다고 혼이 나는 만큼 꼭 우승하겠다"며 웃었다.

"아무것도…안하고…싶다…" 한강서 단체 '멍때리기'
친구 사이인 박민지(17)·이다빈(17)양은 "중간고사 끝나고 시험공부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고 참석했다"며 "생명과학 시간마다 멍때리기를 연습했다"며 웃었다.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다는 우봉문(62)·우슬초(31) 부녀는 '아빠', '딸'이라고 적은 흰 티셔츠 위로 나란히 보호대를 차고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우슬초 씨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휴직한 상태인데 이번 대회가 '터닝 포인트'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참가자들은 빨강·파랑·노랑 등 색깔 카드를 들어 대회 동안 마사지 서비스, 음료 서비스 등을 받으며 멍때리기를 이어갔다.

1시간이 지나자 졸거나 '딴짓'을 참지 못해 탈락하는 참가자도 속속 나왔다.

한 참가자는 "사실 멍때리지 않고 있다"며 '양심 고백'과 함께 기권을 선언했다.

참가자별 심박수를 측정해 시민 투표와 합산한 결과 개인 자격으로 출전한 배우 정성인(31)씨가 우승을 차지했다.

정씨는 "상상도 못한 결과라 어안이 벙벙하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얼굴을 알리고 배우로서 유명해졌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행사를 주최한 시각예술가 '웁쓰양'은 "현대인은 아침에 눈 뜰 때부터 잠들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보고 산다.

수많은 자극에 노출되는 순간마다 피로감이 멍을 때리게 만드는 것"이라며 "'나 혼자'만 멍을 때린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느끼는데 한날한시에 다 같이 멍을 때리면 덜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아무것도…안하고…싶다…" 한강서 단체 '멍때리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