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이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등의 갈등이 줄을 잇고 있는 의료계를 의식해 의원들이 심사를 미루고 있어서다.

19일 국회에 따르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지난 15~16일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 안건 목록에는 포함됐지만, 야당이 주장하는 사회적경제기본법에 밀려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올해 수차례 소위 안건 목록에는 올라갔지만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한 것이다. 12년째 법안 통과를 기다려온 서비스업계는 속이 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5일 여당 지도부와의 정책간담회에서 투자 활성화를 위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보건·의료, 관광, 콘텐츠 등 서비스업종의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고 세제 지원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2011년 12월 정부안 형태로 처음 발의됐다. 하지만 “의료 민영화를 위한 법”이라는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발로 번번이 논의가 무산됐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기획재정부가 ‘서비스 산업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 법안을 시대의 변화에 맞게 고도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당시 기재부는 서비스 신사업 중 리걸테크(법률 서비스+신기술), 프롭테크(부동산+신기술) 등 신·구 사업자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 갈등 조정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구체적인 법안 고도화 방안도 제시했다.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정부안은 발의되지 않은 상태다. 기재부 관계자는 “보건·의료 분야를 얼마나 포함하느냐를 두고 의견이 상충하는 만큼 관련 내용을 어떻게 담을지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며 “적절한 발의 시점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안 발의와 국회 논의가 미뤄지고 있는 것은 최근 보건·의료업계가 ‘갈등의 화약고’로 떠오른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고, 범죄행위를 저지른 의사를 퇴출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보건·의료 직역단체의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당정이 최근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하기로 하면서 플랫폼 사업자와 의사협회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국회도 법안 추진 동력을 잃고 있다. 현재 21대 국회에는 △추경호 의원안 △류성걸 의원안 △이원욱 의원안이 발의돼 있지만, 모두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발의된 법안이다. 이 의원안이 보건·의료 부문은 서비스 산업에서 배제한 반면 추 의원안은 ‘의료 공공성’ 관련 부문 일부만 법 적용에서 제외해 보건·의료 부문도 서비스 산업에 포함하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추경호 의원안이 정부·여당의 입장과 가장 가깝지만, 이를 정교화한 정부안이 나와야 본격적인 논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